흩어져도 하나인 마음

프롤로그 흩어졌지만, 잃지 않았다

by 봄울

나는 떠나고 싶어서만 떠난 건 아니었다.

조금은 자발적이었지만, 또 조금은 밀려나듯 비자발적인 떠남이었다.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무엇인가를 새롭게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묘하게 얽혀 있었다.
그렇게 나는 요르단이라는 낯선 땅으로 갔다.


그때는 그것이 ‘부르심’이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었고, 생존이었다.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떠난 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왜 이곳이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전화 설치를 신청하고 한 달을 기다렸고,
이메일 하나 보내는데 한 시간이 걸리던 시절이었다.
티브이를 켜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고,
인터넷조차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느리고, 낯설고, 외로웠다.


그래서 더 자주, 더 깊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와 나눌 수 없던 말들을 기도로 쏟아냈다.
외로움이 깊어질수록, 그분의 존재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광야 같았던 그 땅에서 나는 하나님을 새롭게 배웠다.
그분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나와 함께 이방의 길을 걸으시는 분이었다.


요르단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공부하러 온 유학생,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모두 각자의 이유로 그 땅에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가 달라
서로에게 섬세한 눈빛 하나가 전부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람으로 이어졌다.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구나.’


그때의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온몸으로 배웠다.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머물 곳을 찾았다.
머무는 집이 있어도 마음은 늘 공중에 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알 수 없을 때면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그 모든 시간들이 허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듬고 계셨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떠남은 도망이 아니라 훈련이었고,
흩어짐은 상실이 아니라 파송이었다.

지금 있는 그 자리,
지금 하고 있는 그 일,
지금 이 순간이 모두 의미 있고 이유 있는 일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비록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흐르고 있었다.

나는 흩어졌지만, 잃지 않았다.
이방의 땅에서, 낯선 언어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내 모든 여정의 의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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