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부르심과 흩어짐 1장. 자발적이면서 비자발적인 떠남
하지만 그 이유를 우리는 나중에야 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살아야 했기 때문에 떠났다.
학비를 낼 돈이 없어서, 대학에서 1년을 남겨두고 제적이 되었다.
그 일은 내게 오랫동안 상처였다.
나는 고졸이었고, 그 한 줄의 학력 차이가 내 마음을 오래 묶어두었다.
2002년에 멈춰버린 수업은 13년이 지난 2015년에야 다시 이어졌다.
온라인으로 대학을 마치기까지, 긴 시간 동안
나는 ‘멈춤’ 속에서 버텼다.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질문이 매일 아침, 내 마음의 벽에 새겨지곤 했다.
요르단에서의 삶은 더 단단한 생존이었다.
세탁기와 냉장고 없이 8개월을 살았다.
청바지를 손으로 빨아 널고, 마른 뒤엔 다시 손으로 털어 입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외국인 여자가 혼자 산다는 걸 알리면 위험하다고 해서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햇빛 한 줄기가 그리웠다.
집주인은 크리스천이었고,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텅 빈 공간은 내 외로움을 모두 담기엔 너무 넓었다.
소파 하나, 작은 철제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옷장 하나.
그게 전부였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버티는 게 전부였다.
돌아갈 곳이 없었고,
내 입에 풀칠은 스스로 해야 했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냉정했고, 나는 어떻게 스스로 서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참 서글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조금씩 눈이 밝아졌다.
비교할 수 없는 고통 속을 지나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감사할 수 있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나았고,
살던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나았으며,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보다,
36년 동안 나라를 잃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들보다 나았다.
그런데도 나는 내 문제만 보았다.
삶의 고달픔은 시선을 좁히는 법이니까.
누군가를 돌아볼 수 있다는 건,
먹고살만해야 가능한 일이니까.
지금은 안다.
그 시절의 눈물과 외로움, 결핍과 불안이
결국 내 믿음의 밑바닥을 단단하게 다졌다는 것을.
나는 그 광야에서 신앙의 근육을 얻었다.
하나님은 그때도 나와 함께 계셨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그 시절의 모든 버팀을, 의미 있는 버팀으로 바꾸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