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정서 근육이 약한 사람들의 성장 배경
어떤 사람은
감정이 부딪혀도 쉽게 깨지지 않는
두꺼운 도자기처럼 단단해지고,
또 어떤 사람은
불규칙한 환경 속에서 자라
작은 충격에도 금이 가는
얇고 마른 비스킷 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
정서 근육이 약한 사람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이 유형은 대부분
감정보다 생존·체면·성적·생활이 더 중요한 집에서 자랐다.
그래서 감정에 대한 질문을
어릴 때부터 이렇게 들었다.
“그게 왜 중요한데?”
“감정은 사치야.”
“그냥 참아.”
“말이 많아.”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울면 지는 거야.”
이런 환경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를 억압한다.
감정을 이해하기 전에
감정을 숨겨야 하는 아이가 된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이 올라오면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
그저 “참아야 한다”는 낡은 생존법만 남아 있다.
정서 근육이 약한 사람들의 주변에는
대개 이런 어른이 있었다.
쉽게 화내는 부모
칭찬과 인정이 적은 아버지
눈치를 보게 만드는 어머니
감정 표현을 피하는 집안 분위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기본적으로 이런 믿음을 갖는다.
“나는 조심해야 살아남는다.”
“감정은 위험하다.”
이 조심성은
나쁘게만 보면 예민함으로 보이지만
실은 감정적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한 생존 기술이다.
감정도 연습이 필요하다.
슬픔을 표현해보고,
화를 건강하게 풀어보고,
실수를 경험해보고,
용서를 배우고,
위로받는 경험을 해야
감정 근육이 생긴다.
하지만 비스킷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연습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울지 마.”
“왜 그 정도도 못 버티니?”
“말대꾸 하지 마.”
이런 말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다 지워버린다.
결국 감정은
자라지도 못하고, 다루지도 못하는 영역이 되어버린다.
정서 근육이 약한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신은 약한데
어릴 때부터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짊어진 경험이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갈등을 중간에서 받아줬던 아이
부모의 눈치를 보며 감정을 조절했던 아이
가족의 기대를 감당했던 아이
동생을 대신 돌봐야 했던 아이
어른의 기분을 먼저 살폈던 아이
이런 아이는
정서적 책임이 너무 무거워서
자신의 감정은 처리할 여력이 없다.
감정의 기반이 튼튼해지기 전에
이미 감정이 과부하된 상태에서 성장해버린다.
성인이 되어도
이들은 대부분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지금 나한테 감정 얘기를 하라고?”
“이런 건 사치야.”
“그냥 버티면 돼.”
감정을 억압하는 방식은
성인이 된 지금도
그들을 붙잡고 있다.
감정을 다루는 힘은
배우지 않으면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도
감정의 근육이 여전히 약하다.
이 말은 정서적 약함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감정을 다루는 기술은
어릴 때 그 상태로 멈춰 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도
감정이 흔들릴 때
아이처럼 반응한다.
크게 상처받고
갑자기 울컥하고
금방 불안해지고
관계에서 쉽게 무너지고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소리치고, 후회하고, 다시 침묵한다
이 구조는
어른이 되어서 생긴 게 아니다.
감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비스킷 같은 사람들은
감정이 약한 게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약함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의 산물이다.
그들의 감정은
자존감이 낮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