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툭하고 마주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마치 '빛이 여기 있었다'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순간 말입니다. 카메라를 자주, 오랜 시간 들고 다니다 보면 주위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 여기 있어!' 하고 번쩍 손을 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부디 자세히 관찰해달라는,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어여쁘게 봐달라는 그 손짓을 외면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만 찰칵 담을지 아니면 정말로 셔터를 눌러서 기록으로 남길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지요. 그럴 때면 저는 대개 카메라를 들어 사진으로 담곤 합니다. 바로 이 사진처럼요.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모 카메라 회사의 광고 카피도 있었을 만큼, 기록 그 자체가 주는 강렬한 인상이 있기는 하지만 어떨 때는 기록하기보다는 온전히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여길 때도 있습니다. 맞아요. 사진으로 담아 그런 순간이 있었노라고 증언하는 입회자가 되기보다는 그 순간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저 그 상황을 만끽하고 싶을 때라는 게 있거든요. 지나고 보면 사진만 남는다고는 하지만 사진으로 남겨야겠다 생각할 시간에, 그저 그 상황에 푹 빠져드는 것이 정답인 것 같은 순간들도 분명 있는 거니까요. 흔히 '시간이 빠르게 흐르네'라고 느끼는 그런 시간들이지요. 이를테면 연인과 함께 한강을 걷는 순간이라던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누는 순간들 말이죠.
그렇지만 때로는 사진으로 담는 행위 그 자체가 힐링인 시간도 있어요.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면 온전히 그 감각을 즐기는 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마치 내 몸이 카메라의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주변의 빛과 그림자 사이를 눈여겨보거나 평소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사물들에 시선을 보내는 때이기도 하지요. 그런 순간은 계획적이고 논리적인 일에 익숙한 제가 유일하게 그 지점을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항상 가던 길을 벗어나 발길 닿는 데로 가다가 어떤 장소나 사물, 거기에 머무른 빛과 조우하곤 하는 것이지요. 무계획의 계획도 이럴 때는 참 쓸모가 있어요.
온전히 사진에 바쳐지는, 기록을 위한 시간들. 제멋대로인 발걸음. 설렘과 발견을 위한 모험의 연속. 무작위로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이렇게 뷰파인더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은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합니다. 아니, 사실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하다기보다는 뷰파인더 너머의 세상을 흥미로운 것인양 담아보겠다는 의지가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평소에 못보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기존 것을 새롭게 보려는 시도가 더 중요한거라고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저만의 시선을 담는데 집중합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건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의 기록인 셈이지요.
아무튼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잠깐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에만 꾹꾹 눌러 담아야지 싶은 날이었는데, 결국은 카메라를 꺼내 들게 되더라고요. 집중하는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요. 오늘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봅니다.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열 마디 문장보다 더 마음에 가닿을 수도 있을 거라고, 그렇게생각해보면서.
사진을 찍기 위해 꼭 어딘가를 가야만 하는 건 아니더라구요. 그냥 지나가는 길이어도 담고 싶은 순간들은 있으니까요.
길가에 피어서 이렇게 손짓을 하는데 외면할 수 있을리가요..?
빨강색으로 된 사물은 왠지 계속 쳐다보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매혹적인 색상에 고개를 돌려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은 사진으로 남기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찰칵.
사실 꽃 사진에 무엇을 더할 게 있을까요. 꽃은 바라만 봐도 그저 좋지요. 언제나 옳습니다.
이리저리 덩어리째 점토를 붙여서 만들어낸 것 같은 담벼락과 그 담벼락을 쓰다듬듯 타고 넘어가는 넝쿨의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