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시 반에 눈이 떠져 몸을 좌우로 뒤척인다. 머릿속을 뒤적거려 보지만 텅 하니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다. 침대옆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열었다. 어제 쓰다만 글이 밝은 불빛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한 번 더 읽어본다. 남의 글 보듯 낯설다.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다시 뒤집어 놓고 몸을 일으켰다. 고민이 깊어진다.
삼 일 전까지만 해도 눈을 뜨면 머릿속이 시끌벅적했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글감들을 주체할 수 없어 메모를 하는 일이 하루의 첫 번째 일이었다. '단어의 향연', '소재의 홍수' 그런 말들이 잘 어울렸다. 하루 중 잠을 깨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지금 나는 정적 속에 묻혔다.
탈고하다
'탈고'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원고 쓰기를 마침이고 또 하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남이다. 한자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이지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제출할 짧은 책 두 권을 마쳤을 때 내겐 두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진 듯하다.
책 한 권은 처음 완성한 브런치북으로 수정하고 또 수정했던 글이었다. 수정한 만큼 글이 눈에 띄게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첫'이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생애 첫 응모작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 권은 매거진에 올리고 있는 "나를 담는 일러스트"에서 발췌한 글로 엮인 책이었다. 일상의 사색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을 주로 실었는데 독자가 부담 없이 읽으면서 나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시간에 쫓겨 두 권의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탈고'라는 말이 떠올라 사전을 찾아봤다. 나는 아무래도 많이 괴로웠던 것 같다.
글은 글로 치료한다.
과거에 힘들었던 관계나 사건과 비슷한 경우가 현재에 생기면 과거의 기억이 소환되어 괴롭다. 그럴 때, 회피하고 부정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나의 상황은 그것과 비슷하다. 내가 쓰고 싶은 날에 쓰고 싶은 글을 음미하며 즐길 수 없다는 것은 감옥에 갇힌 것과 같았다. 가슴을 짓눌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한에 맞게 글을 마치는 일은 내게 너무나 억지스러웠다. 부족함을 깨닫는 경험이었다. 오늘 유난히 부러운 작가가 있다. 그는 입금과 노트북, 아이패드만 같이 넣어준다면 가둬 놓고 글만 쓰라고 해도 좋겠다고 썼다. '좋겠다'라니 지금의 나는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 경험이 내가 딛고 가야 할 첫 번째 난관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시 글을 붙들고 있다. 연재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얼마나 손을 놓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도망쳐서 더 행복해진다면 나는 언제든 미련 없이 밖으로 뛸 테지만 진한 성장통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글 한 덩어리를 마칠 때마다 원고 쓰기를 마치는 탈고의 뜻에 더 가까워지는 그날이 오면 나를 한 번은 힘주어 꼬옥 안아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