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속 아이 성별 공방전
임신부의 배가 앞으로 볼록하게 나오면 딸, 옆으로 퍼지면서 나오면 아들이라는 속설이 있다.
남편과 정육점에 간 날이었다. 우리가 주문한 고기를 준비하던 사장님이 만삭이었던 내 배를 보더니 말한다.
“딸이죠? 배를 보니 딱 딸이네.”
임신 당시 나는 앞으로 볼록하게 배만 나온 소위 딸 배였다.
“병원에서는 아들이라네요.”
우리 부부는 평소 의심 많은 성격이었고, 첫 아이였기에 아이 성별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초음파 사진은 매번 봐도 어디가 팔이고 다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개월 수가 꽉 차 담당 선생님이 대놓고 아들이라고 말해 주었을 때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상하다... 배 보면 분명 딸인데...”
우린 웃으며 더 이상의 논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가 점점 더 불러올수록 비슷한 상황은 계속 생겼다.
딸과 아들을 구별하는 속설 중에 임신하고 피부가 고우면 딸이고 트러블이 나면 아들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나는 트러블 하나 없는 고운 피부에 속했다. 난 여드름이 자랄 수 없는 극건성 피부다. 덕분에 평생 여드름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래저래 모든 속설을 피해 가는 나에게 주변의 의심은 커져만 갔다. 성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들이라는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집안 어른들은 아무리 그래도 낳아봐야 안다며 고기가 먹고 싶은지를 물으셨다. (고기가 먹고 싶으면 아들이라는 또 다른 속설이 있다) 이쯤 되니 배 속의 아이가 아들에서 딸로 바뀔까 걱정이라도 해야 하나 싶어진다.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니 모두 개인차라며 특히 배 모양은 자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그걸 또 물어보는 내가 민망했지만 이제 반박할 의학적 근거가 생겼다.
아이의 성별은 정말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목소리에 자신을 되돌아본다. 딸 배라는 둥, 딸을 낳게 생겼다는 둥, 내가 아들을 키우는 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들에 은근히 마음이 흔들리는 걸 보면 아들을 바랬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엔 남모를 죄책감에 시달린다.
임신 중 기형아 검사는 공포 그 자체다. 랑이는 위험수치나 재검사 판정을 받은 적 없이 다 잘 넘어갔지만, 매번 두려웠다.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셀 때는 1부터 10까지가 어찌나 길던지 선생님 목소리가 슬로우모션처럼 들렸다. 그럴 땐 성별 따윈 문제가 아니었다.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라며 기도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확실히 깨달은건 성별은 정말 상관 없다는 거다. 내 새끼는 어쨌든 너무너무 이쁘다.
그런데 랑이를 낳고 들은 말 중 하나.
아, 아직 안 끝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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