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전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면 지나쳐가는 운전면허 학원이 있었다. 꽤 높은 곳에서 지하철이 지나가 학원 전경이 다 보이는 곳이었다. 조금은 다른 모습의 도로들 위에 노란색 차들이 멈춰있기도 느리게 움직이기도 했다. 이따금씩 하얀색 용달이 보이기도 했는데 급수 차이 때문이라는 걸 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알게 됐다. 처음 광경을 목격했을 땐 마냥 신기했다. 가끔씩 운전면허 학원차에 내가 타고 있는 상상을 하게도 만들었다. 맨 앞자리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짧은 시간 스쳐지나가는 풍경에 여운은 길게 남아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내게도 운전면허증을 취득해야 하는 사건이 생겼다. 이사를 가게 됐는데 지역이 멀어 반대를 주장했다. 그러자 우리집 이사 문제에 처음부터 관여했던 작은아버지가 중고차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차는 아는 사람 있으니 저렴하게 알아볼 것이고, 학원비는 대신 내주신다고 했다. 차 값이라는 거금이 들어가야 하지만 조금 싸게 구입할 수 있고 할부도 할 수 있다. 또래 친구들은 면허를 취득해도 운전을 해 볼 기회가 없었고, 차를 사야하는 명분도 없었는데 못이기는 척 어른들 말에 질 수 없다는 이유로 이사를 받아들였다.
필연이었을까. 알아보니 근처 운전면허 학원이 늘 지나갔었던 그 학원밖에 없었다. 처음 학원에 등록하고 노란색 자동차에 타게 된 날. 긴장으로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두근두근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정신줄을 붙잡고 선생님 설명에 집중해야 했다. 악셀을 밟지 않고 운전대만 움직이는데도 왜 이리 빠르게 움직여 보이는지. 조심조심 운전대를 돌리며 s자 구간을 통과하고 언덕을 오르며, 주차하는 법도 배웠다. ‘삑삑’ 소리가 울릴 때마다 표정은 일그러지고 경직되어 어깨는 움츠러들고 뒷목은 뻣뻣해졌다. 하지만 악셀을 밟는 유일한 구간에선 뭔지 모를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필기도 기능도 한번에 붙어 자신감이 올라갔지만 막상 도로주행을 하러 실제 도로에 뛰어드니 몇 배의 긴장감에 손발이 벌벌 떨려왔다. 그래도 학원에서와 달리 악셀을 밟으며 운전대를 돌리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시험 당일 날, 도로주행은 한번의 감점 없이 합격했다. 그렇게 운전면허를 딴지도 20년이 넘었다. 이래뵈도 무사고 운전 경력이다. 물론 자잘한 것들을 빼면 말이다. 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운전대를 잡았기에 겁없이 운전할 수 있었다. 작은 중고차라도 끌며 내 마음대로 다닐 수 있어 좋았다. 지금은 남편의 대리운전 역할도 거뜬히 해낸다. 장거리 운전도 문제 없다. 이 정도면 베스트 드라이버 아닌가. 은근 뿌듯하다. 내손내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