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큰아빠랑 있겠다고 해서 시댁에 보냈다.
막내가 없으니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어 은근 기대가 되는 주말이었다. 큰 아이들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들었으니 밥만 잘 챙겨 주면 될 노릇이다. 남편도 예정된 약속이 있었기에 '반나절 정도는 내 시간을 갖겠구나, 어쩌면 하루정도도 가능하겠는데?' 김칫국을 혼자 한 사발 마셨다.
그런데 김칫국물은 김치국물이다. 막상 주말이 되어보니 막내도 없고 아이들도 예정대로 일정을 소화하는데 남편이 변수로 작용했다. 출근할 줄 알았고 약속이 있었는데 쉬게 되었다는 것과 약속이 늦은 시간으로 미뤄졌다는 거다. 말로는 내 볼일 있으면 보라는데 그 말이 더 신경 쓰였다. 갑자기 쉬게 되어 며칠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거기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거리도 멀고 왜 가고 싶은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어 혼자 선뜻 다녀오라고 하기가 맘이 편치 않았다. 내가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저 내 시간을 갖겠다고 남편 혼자 먼 길을 다녀오라고 하는 것, 그리고 그리 좋은 일이 아닐 거라는 예감에 나도 가겠다고 같이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게 예정에도 없는 지방을 남편과 다녀왔다. 여행길이면 즐겁고 신나는 일일 텐데 남편은 운전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나도 그저 음악을 틀어놓고 듣는 게 다였다. 눈으로는 창밖을 응시하며 차분해진 공기가 흐트러지지 않게 또 너무 조용해서 따분하거나 졸리지 않게 이따금씩 운전하기 힘들면 말하라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왕복 800km의 거리를 남편은 혼자 운전했다. 도착해서 돌아다닐 때도 조차 나에게 운전대를 넘겨주지 않았다.
틀어놓은 성시경 노래가 진지하지 않게 무게를 잡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너무 소란스럽지도 않으며 딱 적당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좋았다. 남편이 요 며칠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는데, 먼곳임에도 이곳을 가고 싶어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겠지 싶어 굳이 왜 그러는지 묻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있어주는 게 그리고 코치코치 캐묻지 않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나름 맛있는 것도 먹고 조곤조곤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짜 궁금한 이야기는 서로 묻지도 않고 선뜻 말하지 않았지만 그냥 이렇게 흐르는 대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때가 되면 말하겠지. 말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스스로 정리가 되면 얘기해주겠지 싶은 마음이다. 그때까지 남편과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지내야겠다. 때로는 침묵을 지켜주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 그리고 그 자체로 힘이 될 때가 있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