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토끼에게 홀리기 전, 앨리스의 세상은 평범했다.
모든 집들은 적당한 크기의 문을 가졌고 토끼는 차를 마시는 대신 풀을 뜯었다. 빨간 장미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도 스스로 꽃잎을 붉게 물들이는 세상에 앨리스는 살았다.
남편은 내게 시계토끼처럼 신기한 생명체였다. 서로 대화가 너무 잘 통했고, 부드러우면서도 믿음직했다. ‘와. 이런 남자도 있구나!’ 시계를 보는 토끼가 신기해 그 뒤를 졸졸 따라간 앨리스처럼 나는 신기한 생명체가 이끄는 대로 속절없이 이끌려 결혼생활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깊고 깊은 굴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Deep, deep, deep.
나의 세상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간혹 누군가는 나를 미워했지만 나 또한 그를 미워했기에 억울하지 않았고, 누군가로부터 이유 없는 친절을 받는 날이 더 많은 세상에 살았다. 크게 모나지 않고 둥근, 가까울수록 유쾌하고 기꺼운 관계가 내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허나 신비한 생명체의 굴 속은 사뭇 달랐다. 포근하리라 믿었던 그곳은 따갑고 날카로운 것들로 가득했다.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맞닥뜨린 첫 번째 난관은 “의심”이었다.
‘네 인생이니까 선택도 결과도 전부 네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는 부모님의 양육관 하에, 나는 의심과 걱정보다는 적당한 방임과 믿음 속에서 자랐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님은 거의 모든 면에서 딸을 믿고 지지했다. 세상이 말하는 도리와 관례보다는 나의 행복을 우선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었다.
시어머니께서 나를 보고 남긴 첫 감상평은 “고집이 세 보이는데.“였다. 고집이 세고, 본인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던 애를 네(남편)가 감당할 수 있겠냐는 걱정을 하셨다고 했다. 고집이 센 것도 맞고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것도 맞으니 반박할 말은 없다만, 이왕이면 좋은 말부터 해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무튼, 그 후로도 시부모님의 의심 어린 걱정은 늘 나를 따라 다닌다. 두 분은 깊은 생각 없이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허투루 흘리기가 어렵다.
“나리가 요리는 잘하니?”
평이한 이 문장에 미심쩍음이 가득한 표정까지 더해지면 듣는 나는 불편해진다. 밥을 잘 챙겨준다는 남편의 대꾸는 구멍 숭숭 뚫린 종이 방패나 다름없다. 뚫린 구멍 사이로 여과 없이 그들의 작은 한숨과 ‘퍽이나 그러겠다’는 의심이 들이치면, 나는 또 잘못한 것 없이 주눅든다. 믿지도 않을 건 왜 묻는지. 그들의 의심 위로 나의 의심이 더해지고 불쾌한 정적이 흐른다.
말은 힘을 가지고 있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건 제법 잘 맞는 예언이다. 나는 두 분의 의심과 걱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 시댁에 가면 말도 잘못하고 요리도 어설프고 무얼 해도 얼뜨기 같은 며느리가 되었다. 그 얼뜨기를 챙기느라 안절부절하는 본인의 아들을 보는 심정이 영 불편하시겠다 싶다만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인색한 입에서 칭찬 한마디 들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어떤 말이든 덜 듣는 게 내 심신에 좋다는 걸 깨우쳤다.
다음으로 다가온 난관은 “침묵”이었다.
말은 하는 것보다 참는 게 어렵다. 나 역시 귀 두 개가 아닌 입이 두 개인 사람처럼 조잘조잘 떠들고 산다. 나는 말이 많은데다 말을 제법 잘하는 편이고, 거기에 더해 넉살도 좋다. 갯벌에서 처음 만난 할머니와 미주알고주알 떠들다가 할머니 손녀가 유학 간 나라까지 다 꿰차고서 갓 캐낸 조개 한 봉지 받아올 만큼. 근데 이 모든 게 시댁만 가면 먹통이 된다.
시댁에 들어가는 순간 누가 입술을 딱풀로 딱 붙여놓은 것 같이 저절로 묵언수행을 한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가부장적이고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행여나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되는 마음이 윗입술에 풀칠하고, 무슨 말을 해도 좋은 소리 듣기 어렵다는 경험이 아랫입술에 마저 풀칠한다. 모든 게 서툰 얼뜨기가 벙어리까지 되는 건 삽시간이었다. 시댁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건 공교롭게도 귀 두 개다. 만화처럼 귀도 딱 닫고 귀머거리가 되고 싶은데 그건 도통 되질 않으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마지막 난관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경험이었다.
요즘은 ‘나’라는 존재를 찾아가는 게 하나의 큰 유행인 것 같다. 나는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갈 사람인지 등등. 가깝게 넘쳐나는 성격검사와 심리테스트만 봐도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짐작하건대, 그토록 소중한 자기를 잃어버리기 가장 쉬운 수단이 결혼이라는 걸 다들 너무 잘 알아버려서 비혼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결혼 후 내가 가장 먼저 잃어버린 것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나”였다. 좋은 말로 하면 쿨하고, 나쁘게 보자면 관심 없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독불장군이었다. 남이 내 욕을 하든 노래를 부르든 그건 그 사람의 일이라고 선을 긋고 살았고, 말을 깊게 담아두지 않으니 기분 나쁜 감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들이었다.
그랬던 내가 달라졌다. 시댁에서 들었던 말은 5년 전이든 10년 전이든 토씨 하나 빼지 않고 똑똑히 기억에 남았다. 사소한 말 한마디, 여상한 표정 하나가 틀림없이 머릿속에 박제되어있다. 남의 말은 한 번도 곱씹지 않았던 내가, 시부모님의 말은 소가 여물 씹듯 네 번, 다섯 번 꺼내 곱씹어 화를 냈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해도 이건 내 의지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었다. 무슨 일이 하나 생기면 십 년 전의 해묵은 감정까지 떠올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이런 일이 매년 몇 번씩 반복되니 기어이 나는 내가 미워졌다.
예전과 다른 내가 이상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기 의견도 제대로 말 못 하고 끙끙 앓는 사람. 문제가 생기면 돌파할 궁리를 하지 않고 주저앉아 입으로 한탄만 하는 사람. 그토록 싫어하던 인간군상이었는데 정작 내가 그렇게 되어버렸다.
몇몇이 그랬다 ”너 결혼하더니 사람 됐다“고. 그다지 기분 좋은 칭찬도 아닐뿐더러 일일이 이유를 묻고 다니지 않아서 정확하게 어떤 점에서 사람이 됐다고 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얼뜨기 같은 모습이 시댁 밖에서도 보이는 걸까 조마조마해서 되려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결혼하면 기혼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그냥 그뿐이다. 할 말 못 할 말을 구별하는 건 내가 결혼해서가 아니라 나이를 잘 먹어서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결혼한 덕분이 아니라 내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 됐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마치 악을 쓰듯, 속으로 조용히 반박문을 썼다.
케이크를 먹어 몸이 줄어들고 음료를 마셔 거인이 되어도 앨리스의 본질은 변하진 않는다. 때론 작아진 스스로가 밉고 또 어느 때는 너무 커져 버린 자신을 감당하기 어렵더라도 나는 그냥 나인데. 뒤집힌 세상 속에서 만난 나는 너무 낯설다.
여전히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