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잘 산다고 했잖아요

by 김보나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곡이 있다. 그렇게 완성된 남(男)이라는 글자에 편(便)자를 더하면 내 편도 아닌데 함께 살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남편이라는 희한한 종이 탄생한다.

남편이라는 단어는 별달리 헤집어 볼 것 없이 의미가 간략하다. 남성 쪽. 결혼한 부부 관계에서 남성을 이르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편(便)이라는 단어가 방향을 지칭하는 뜻과 동시에 편안하다는 의미도 된다는 것이 묘하다. 남편이라 하면 ‘남의 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먼저 떠오르는데 편안하다는 의미가 숨어있다는 게 퍽 재밌다. 여기에 대응해 여편(女便)을 낮잡아 부르는 ‘여편네’가 일상적으로 쓰이는 비속어가 되었으니 서로 간에 공평하게 주고 받았구나 싶다.


이견이 있겠으나, 단언컨대 결혼생활에 가장 큰 고비가 닥칠 때는 “배우자가 남의 편일 때”라고 말하겠다. 때문에 많은 미혼 남녀-특히 여편에게- 결혼 전부터 ‘저 자가 내 편이 될 관상인가’를 유심히 지켜보라 권하겠다.

내 편이 될 자는 너무 착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모진 성품이어도 안된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도 안 되지만 친구가 없어서도 안 되며, 제때 월급봉투를 가져올 만큼 융통성 있는 사회생활을 해야 하지만 아내를 위해서는 꿋꿋하게 비난의 화살을 맞을 뚝심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조건을 다 만족하는 사람은 애석하게도 없다. 나부터도 저렇게 살 수 없으니까. 여기에 더 많은 조건을 붙이면 그것에 부합하는 이는 아마도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아닌 네발에 뿔까지 달린 유니콘쯤 되어야 할 테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완벽한 내 편”이 되어줄 남편을 만날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 수줍은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예전에 사주카페 갔을 때 들었어요.”라고 말하기엔 용기가 조금 필요하니까 말이다.


스물여섯인가 일곱 때의 일이다. 함께 팔짱 끼고 홍대로 향했던 A가 미혼일 때였으니-그녀는 나보다 2년쯤 일찍 결혼했다- 그 무렵이 맞을 것이다. 한낮의 홍대는 한산했다. 한파가 들이치는 연초에 왜 친구와 홍대에서 만났는지는 잊어버렸으나, 추위를 피해 어디든 들어가자고 팔짱 꼭 끼고 돌아다녔던 것은 기억난다.

1월이라 남들 다 본다는 신수라도 보고 싶었던 건지 우리는 어느 건물 2층에 있는 사주카페에 들어갔다. 나쁜 짓을 하러 간 것도 아닌데 A와 나의 발걸음은 부쩍 조심스러웠고 말소리도 은밀해졌다. 막상 카페 내부는 홍대의 여느 카페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다른 곳보다 인테리어에 소홀하고 메뉴가 맛이 없었을 뿐. 맨 뒷장에 사주 메뉴가 있다는 게 그나마 특이했다.


대충 음료를 시키고 사주 봐주시는 분을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콩콩 뛰었다. 사주라기에 나이 지긋한 분이 낡은 책과 굵은 사인펜을 들고 오실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화려한 무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무언가 현란한 도구를 챙겨 들고 우리 앞에 앉았다. 이런 퍼포먼스까지 원한 건 아니었는데, 나와 A는 멋쩍은 눈짓을 주고 받았지만 이미 결제까지 해버려 돌이킬 수 없었다.


어물어물 생일을 말하자 본격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잘게 흔들리던 진분홍색 부채와 쨍알쨍알 강렬하던 방울 소리가 무색하게도 그날 사주 본 내용 중 그다지 기억에 남는 말은 없다. “너는 남편이 네 편이라 살아.”라는 단 한마디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들은 것을 사실대로 써 보자면 “시부모 복은 없는데 남편이 네 편이라 잘 살아.”였다. 이로써 나는 이 글이 출간되더라도 절대 시댁에 공개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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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차 간에, 카페에서 나서며 잊어버렸던 그 말은 결혼을 결심했을 때 한번, 그리고 결혼하고 몇 년 지난 뒤에 또 한 번 떠올랐다.


애석하게도 남편은 위에 나열한 첫 번째 조건부터 탈락이었다. 나에게 착하지만 남에게도 착했으며, 더더욱이 착한 아들이셨다. 순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앞날이 걱정돼 살짝 심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의 믿을 구석, 남편이 내 편이란 말이 반짝 떠올랐다. 그리고 결혼 1년 차를 지날 무렵 ‘그 무당 아줌마 반편이 구라쟁이야’라는 분노가 치밀었다. 시부모님과 사이가 서먹한 것은 맞췄으나 남편도 내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덩이 같은 화가 꺼지질 않았다.


그 분노는 주기적으로 활활 타올랐다가 5~6년 차에 고점을 찍고 지금까지 꾸준히 하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프가 안정적인 하향 곡선을 그리며 그녀에 대한 나의 평가도 바뀌었다. ‘아 그 아줌마 용하네’라고. 다만 조금 수정을 하자면 “남편이 네 편이 ’되도록 만들 거니까’ 너는 잘 살아.” 정도. 그리고 남의 편을 내 편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깨나 지난하고 힘들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이 되는대로 살고 있는 형편인데, 거기에 잘 모르는 남을 끼워 삶이라는 팀플레이를 함께 한다는 것은 제 발로 지옥에 걸어가는 것과 다름없다. 온갖 귀동냥으로 결혼이라는 행위의 무서움은 익히 들었고, 부모의 선례를 보며 체감까지 했는데도 첫 번째 자격요건 탈락자와 답싹 결혼을 하다니! 이쯤 되면 기혼자를 ‘어디가 모자라 결혼까지 한 사람’이라 치부하는 일부의 생각이 아예 틀린 말은 아니구나 싶다.


무릇 모자란 사람은 인생의 확신을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답을 구하러 다닌다. 가족, 친구, 스승을 비롯해 목사님과 무당까지 두루두루 말이다. 모자란 나 역시 그랬다. ‘왜? 왜 그런 거야? 원래 그런 게 뭔데? 왜 그래야만 하는데? 이거 못 물러? 못 바꿔? 어떻게 해?’.


수없이 묻고 또 물었지만 명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쳤다. 지칠대로 지쳐 답을 찾고야 말겠다는 오기를 버리자 이해와 포기의 물줄기가 불길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나이가 들며 체력이 떨어져 내 안에 불씨를 활활 태울 기력도 쇠해버렸다. 그 덕에 드디어 무거운 눈꺼풀로 흐린 눈을 뜨게 되었고 예민함이 누그러져 가는 귀가 조금 먹었다. 입술을 여닫는데도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가히 멍청이 같은 상태임에도, 결혼이란 것을 수년 경험해봤다는 죄로 난감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결혼하면 좋으냐는 질문. 남편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냐는 것과 한층 더 심란한 경우 ‘기혼자가 보기에 이 사람 어때 보여?’라는 그 속 터지는 질문 말이다.


그저 앞서 겪어 봤을 뿐인 멍청이가 굳이 한마디 보태자면, “어리석은 사람에게 먼저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가 이르노니, 확신이 없어 여기저기 물으러 다닐 체력이 있으면 그거 아껴서 너 자신에게 집중하시라” 하겠다.


상대가 적당히 마음에 차는 조건을 갖췄다면, 다음부터는 내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지고 살 수 있는지, 불합리한 일이 생겨도 감내할 수 있는지, 불운한 상황이 닥쳤을 때 남을 탓하는 대신 상대를 이끌어 앞으로 나아갈 마음가짐이 되었는지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그런 소양이 부족해 지난 몇 년이 지독스레 힘들었다.


인생사 원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라 한다만 결혼생활은 네 배쯤 더 마음대로 안 된다. 주변 환경도 남(의 편)도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팔자만 한탄하고 있기엔 살아야 할 현실이 너무 빡빡하지 않은가. 억울하고 분해도 내가 생각을 고쳐먹고 사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냥 힘없이 현실에 순응한 거 아니냐고 반박한다면 그 말도 맞다. 보다 속 시원하고 진취적인 답을 기대했다면 미안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유니콘 같은 남편을 가진 오애순도 상 한번 엎어버린 게 고작이었다. 내 남편은 땅에 두 발을 딛고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 내가 상을 뒤엎고 잠시간 속이 시원해지면 남편의 속은 더 깊게 어두워진다. 내 인생도 16부작으로 끝나는 단편 드라마였다면,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실없는 상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혼이라는 과감한 선택지는 최최최최최종의 수단으로 남겨두자. 어쨌거나 우리는 잘 살자고 모인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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