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그냥 내가 가지면 안될까?

욕심과 완벽주의로부터 오는 에고를 경계하라.

by jess

어릴적부터 나는 욕심이 정말 많았다.

부모님은 욕심이 없는 편이셨고, 오빠와 동생도 욕심이 없는 편인데 나만 욕심이 많은 성격이라면

이건 바로 내가 선천적으로 욕심이 많게 태어났다는 거일거다.


아직도 기억난다. 9살 무렵 겨울. 가족끼리 집 앞 문구점을 들렸다. 당시 티비에서 방영하는 일본 만화인 웨딩피치, 세일러문이 인기였는데 문구점 문 앞에서 웨딩피치 인형을 발견하였다. 너무 갖고싶어서 부모님께 사달라고 졸랐다. 하지만 부모님은 사주시지 않으셨고, 떼를 쓰다가 통하지 않자 화가난 나머지 그 인형을 가지고 도망을 가서 부모님이 결국 인형을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게, 그 인형이 비싸서 동생에게는 작은 인형 한 개를 오빠에게도 작은 장난감을 어쩔 수 없이 사주셨던 기억이 난다. 어릴적부터 내가 갖고싶었던건 무조건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욕심많은 성격이었다.


이 성격은 커서 물건욕에서 완벽주의로 변하게 되었다.

대학생때는 내가 정말 예쁜줄 알았다. 학창시절에는 사실 외모에 자신이 없었는데, 대학생되고나서 몇가지 시술을 한 뒤로 외모에 자신이 생겼고 남자들이 관심을 보이면 내가 연예인처럼 뺨치게 예쁘다고 생각하며 나 혼자 착각 속에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동생과 함께 사진을 찍는데 동생이 나보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얼굴도 작고 예쁘게 찍힌걸 보게되었다. 동생이 나랑 동급 혹은 나보다 더 별로일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진을 보고 현실과 착각의 괴리 때문에 충격을 먹고 한없이 우울하고 비통했다. 사실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었는데 나 혼자만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이다. 어쨋든 그 사실에 충격을 먹어서 성형수술을 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고 내 뜻대로 되지 않자 그 스트레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했다. 그래서 예쁘지 않게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에게 화살이 먼저 돌아갔다. 엄마 닮아서 광대뼈가 크고 머리가 큰거다. 아빠 닮아서 코도 낮고 키도 작은거라는 등 내 주변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예쁘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과 책임을 누군가에게 표출하고 싶었다. 이 못난가면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의 얼굴을 내가 생각한대로 바꾸고 싶었다. 내 마음 속에 생각해둔 나의 얼굴은 이렇게 못생기진 않았는데, 이게 나라니? 라며 괴로워했다.

그때 당시 동생이 나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서운해했다. 하지만 동생의 감정보다 내 감정이 더 우선이었다.그래서 동생에게도 화풀이를 했다. 동생이 나보다 더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저 사람보다 더 가져야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저 사람에게 뺏어와야해. 그로인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 애정을 받아야해! 라는 생각이 강했다. 이런 질투심 때문에 심리상담을 많이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감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질투심을 느끼면 질투난다고 솔직하게 장난으로 이야기 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 조차 할 수 없었다. 질투난다고 인정하는 것은 내가 졌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번의 심리상담에도 불구하고 나의 질투심은 꺼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년 후 올케언니가 사촌동생에게 남자를 소개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나서 예전 같았다면 아니, 나도 남자친구가 없는데 왜 나한테는 안해주고 쟤한테는 소개해주지? 라고 화가나거나 질투심이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없진 않았지만 결국 나의 이런 질투심이 더 커지진 않았다. 왜일까?



일단 첫번째. 사람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한다고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나와 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다르다. 내가 예쁜 얼굴을 갖고 있다면 저 사람이 갖고있는 것은 풍족한 돈일 수도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넓은 인맥이라면 저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은 풍부한 지식일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들은 절대 겹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갖고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남이 봤을 때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졌다고 부러워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아무리봐도 저 사람은 나보다 예쁘고 돈도 많고 친구도 많고 성격도 좋아. 라고 할 수 있지만 나처럼 마음의 차고 넘치는 여유를 갖진 못했을 수 있다. 여유라는 것도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이다. 이처럼 내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닌 나에게 있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해야한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한없이 기뻐하자.


두번째. 내 주변 사람이 잘되면 나 자신도 잘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얽히고 섥힌 복잡한 관계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간다.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단절된 사람들은 그래서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다. 나 혼자 잘되고 성공하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적으로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있는데 내 주변 사람들이 잘되면 배가 아프고 질투심이 날 수 있다. 아까도 얘기했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남이 갖고있는 것에 대해 갖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질투심은 접어두고 오히려 그 사람이 잘된 것에 대해 축복해줘야한다. 그 사람이 잘되면 나에게 부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단 한가지도 없다. 내가 두려움을 갖고 그 사람을 피해 단절해버리지 않은 이상 해를 끼치는 것은 없다. 그 사람이 잘되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꼭 그것이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 어떤 방식이든 긍정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 사람의 행복을 내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말고 저 사람의 행복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넓은 그릇을 가져야한다. 우리는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세번째. 무의식을 통한 이해

질투심이 든다면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나의 상상력을 차단해야한다. 저 사람이 잘되서 내 처지와 비교되서 결국 나는 별거 아닌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겠지? 라는 상상의 날개를 펼쳐서는 안된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인간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맺는다. 저 사람이 잘됨으로써 내가 갖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자. 인간의 두려움의 근원은 결국 나의 소멸에 있다고 한다. 그 사람이 잘되서 내가 죽는 일은 없다. 비교를 당하거나 괄시를 당하진 않는다. 혹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과거를 추적해보자. 그리고 과거에서 나에게 영향을 행사한 그 대상을 이해해보자. 엄마가 어릴 때 남들과 늘 비교했다면 엄마도 그때 나를 비교한 것은 내가 정말 미워서가 아니라 내가 잘되라고 한 것이니까, 엄마를 이해해보자. 라고 생각해보자.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 과거에 대한 용서는 현재를 조금 더 집중하게 하고 과거를 뜀틀로 삼아 미래를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나는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질투심을 누를 수 있었다. 질투심은 사람을 마비시킨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두려움에 성장하지 못하고 사람을 가두게된다. 나 자신을 절대 가두면 안된다. 사업은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사업을 하면 꼭 버려야하는 1순위가 바로 질투심이다. 물론 질투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질투심으로 나를 가둬선 절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