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지난 주 난생 처음 파리를 갔다.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꿈에 그려온 루브르 박물관에 갈 생각에 파리로가는 내내 마음이 설랬다. 결과적으로 파리여행은 즐거웠으나, 루브르는 파리에서 방문 한 박물관 중 최악이었다. 사람 많고, 줄은 제멋대로고, 직원들은 도움안되고, 다들 무례하고.. 이야기하자면 끝도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크 루이 다비드와 들라크루와의 작품은 상상이상이었다. 물론 19세기 프랑스 회화 방은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 중 하나였지만, 바로 옆 모나리자의 방에 비하면 굉장히 한산했다. 2008년 워싱턴D.C. 내셔널 갤러리에서 다빈치의 초상화를 처음 봤을 때 부터 나는 모나리자를 실제로 봐도 큰 임팩트가 없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2017년 거의 10년만에 드디어 보게 된 모나리자는 실제로도 그저 그랬다. 다빈치의 그림은 자세히 보면서 부드러운 텍스쳐의 표현방식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재미가 있는데, 모나리자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었고 사람들은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주말이였고 공교롭게도 그날은 프랑스 대선날 그리고 그 다음날은 휴일이라 아마 더 심했을거라고 생각된다.
모나리자에서 얼마 멀리 가지 않아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있다. 사람들은 거의 실제사이즈로 그려졌고 인물 한명 한명의 디테일이 엄청난 작업이다. 다비드가 영혼을 갈아서 그린 것 같은 느낌이 충만하다. 이렇게 눈을 땔 수 없을정도로 화려한 작품을 옆에두고 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된 것일까? 세기의 천재 다빈치의 걸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빈치의 다른 그림들 - 암굴의성모라던지 세례자 요한이라던지 - 에 비해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1911년 도난사건 때문일 것이다. 1911년 박물관의 경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했고, 그 허술한 경비를 틈타 박물관 관계자는 옷 속에 그림을 넣어가지고 나갔다. 모나리자의 도난은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까지 대서특필됐고, 1913년 모나리자가 돌아온 후 그림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도난과 관련 된 에피소드는 유명하고, 도난으로 인해 모나리자가 유명세를 탄 것도 사실이나, 이 사건에서 모나리자를 단숨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만들어 준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바로 미디어였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6년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글을 썼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생산조건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벤야민은 1931년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부터 원본성이 사라진 시대의 예술작품의 방향에 대해 묻는다. 이전의 예술작품은 단 하나라는 원본성에서 오는 아우라(aura)가 존재했는데, 사진기술의 발달은 기존의 예술이 가지고 있던 아우라를 붕괴시켰다. 시간이 갈수록 예술은 더 대중화되고, 더 빨리 생산되며, 더 빨리 복제되고 진품과 가품이 구분이 안되는 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물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진품 모나리자를 이야기하면서 예술작품의 복제를 들먹이는 것이 조금 이상해 보일 수는 있으나, 놀랍게도 모나리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예술작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알고있지만, 그중에서 루브르에 가서 모나리자를 직접 마주해 작품의 아우라에 감탄 한 사람들은 아마 극히 드물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마주한 모나리자는 대부분이 복제된 이미지이다. 그리고 모나리자라는 이미지의 복제는 1911년 도난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1911년 8월22일 화요일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가 사라졌다. 도난 사실을 알게 된 프랑스측은 박물관을 폐관하고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다. 모나리자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호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언론이 도난 사실을 다투어 보도했다. 프랑스 정부와 언론은 모나리자의 무사 귀환을 위해 포상금까지 내걸었으나 그림의 행방은 묘연했다. 급팽창하던 신문은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모나리자는 도난당했지만 사라진 모나리자는 일약 당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됐다. 모나리자의 도난사건은 20세기 초 유럽과 미국의 높아진 신문구독률과 포토저널리즘의 발달 역사에 힘입어 당대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떠올랐다. 모나리자가 사라진 지 24시간이 넘게 아무도 모를정도였던 그저 이탈리아 거장의 작은 인물화는 도난사건과 함께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그림이 됐다.
기술복제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 예술작품은 그 덕을 가장 많이 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복제된 그림이 됐다. 복제된 모나리자는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의 상실을 가장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아우라는 원본성에서 나오지만, 이 원본성은 예술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 맥락 그리고 그것에 역사에 기인한다. 복제된 수천 수만장의 모나리자는 그 이미지는 똑같을 지언정 맥락은 복제될 수 없다. 하지만 르부르 박물관에 있을 원본 모나리자의 역사에 편입하여 대중에 의해서 소비된다.
도난사건 이후로도 모나리자는 근현대미술작가들에 의해 다시 복제되고 또 소비됐다. 가장 유명한 예로 뉴욕에서 활동했던 프랑스의 다다이스트 마르셸 뒤샹의 L.H.O.O.Q는 모나리자가 이후의 미술에서 재소비된 방식을 보여준다. 뒤샹의 장난스러운 작품은 이후 모더니즘을 넘어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게 된다. 이처럼 모나리자는 지속적으로 복제되면서 대중에 인식에 다시한번 각인되고 있다.
모나리자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작품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지속적으로 모나리자라는 이미지를 접해왔고,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모나리자라는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일 수록 다시 찾길 마련이다. 이처럼 복제기술은 과거 접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예술의 정의를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이미지를 접하는 방식은 나날이 달라지지만, 역시 모든것은 클래식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