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메이드 쪽파김치
허리와 손목이 예전 같지 않아 김장만큼은 손사래를 치시는 엄마를 겨우겨우 꼬드겨서, 양념을 때려 넣고 한꺼번에 몽땅 버무리면 되어 그나마 조금은 수월(?)해 보이는 파김치부터 담가 보자고 했다. 따지고 보면 아빠의 철두철미하게 준비된 계획을 바탕으로 한 꾐에 내가 홀까닥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파김치를 좋아한다는 건 까맣게 잊은 채, 그저 "그렇게 김치를 담가보고 싶으면, 그나마 난이도가 높지 않은 파김치부터 한번 담가보든가. 근데 김치 담그기 그거 네 생각보다 훨씬 힘들 거다~? 그냥 사 먹는 게 여러모로 편해~"라고 스치듯 말씀하신 아빠의 말속에 숨어있던 형태 없는 화살촉에 옆구리를 제대로 찔려버린 것이다. 그 순간, 아빠의 그 말 한마디는 숨은 의도의 여부에 관계없이 나의 자존심을 쿡쿡 찔러 순식간에 나를 도전의식으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결국은 파김치부터 담가보겠다는 철도 없고 눈치도 없는 딸내미의 해맑은 말 한마디에 엄마 역시 결심을 굳히신 듯 말씀하셨다. "그래 네가 '직접, 주도해서' 만든다면 찬성! 한번 도전해봐, 우리가 옆에서 자잘한 일은 도와줄게." 별다른 기대 없이, 어쩌면 무모할지 모를 그 도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 가족 여론조사를 마치고 며칠 뒤 주말, 곧바로 시작된 파김치 담그기 프로젝트. 분명 빨간 건 고춧가루고 초록색은 쪽 파인건 알겠는데 말이지.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덤빈 김치 담그기 그 자체였다. 파김치 뒷조사하기 (*별건 아니고, 파김치를 주로 먹고 만드는 지역과, 유래, 주 재료들을 사전 조사하는 과정이라 모든 요리에 앞서 꼭 필요한 나만의 신성한 의식이자 필수 과정이다!), 쪽파 다듬기, 세척하기, 절이기, 김치 양념 만들기, 김치 버무리기 과정이 차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호! 신난다~(?). 직접 담근 김치를 먹어보기 위한 여정의 첫발을 그렇게 겁도 없이 내디뎠다.
* 재료: 쪽파 (손질 전: 1kg/손질 후: 800g), 찹쌀 풀 (찹쌀가루 2T 가득 + 물 250ml), 액젓(*참치 1/2 + 멸치 1/2) 1 종이컵, 고춧가루 1 종이컵, 커다란 (大) 홍고추 2개, 다진 마늘 2T, 생강가루 1/2T, 새우젓 1T, 설탕 1.5T, 물엿 1T, 매실청 1T, 통깨 2T.
1. 손질한 쪽파를 넓은 대야에 담고, 액젓 1 종이컵을 부어 절여둔다 (*숨이 살짝만 죽을 정도면 충분). 단, 파가 잠길 정도로 액젓을 잔뜩 넣기보단 1컵-1.5컵 정도만 넣고, 네댓 번 위아래 위치를 바꿔 뒤적여주면서 고루 절여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다 (*흰 부분이 특히 잘 절여지도록).
2. 찹쌀가루 2T + 물 250ml를 넣고 졸여 찹쌀풀을 만들어 충분히 식혀준다 (*찹쌀가루가 없다면, 식은 밥 조금 + 물을 넣어 믹서에 갈아 써도 좋다).
3. 파김치 양념을 만들어준다.
: 고춧가루 1 종이컵, 커다란 (大) 홍고추 2개, 새우젓 1T, 다진 마늘 2T, 생강가루 1/2T, 설탕 1.5T, 물엿 1T, 매실청 1T, 통깨 2T, 액젓(*참치 1/2 + 멸치 1/2) 1 종이컵 (아까 쪽파 절여둔 것 따라내서 재사용).
(*홍고추는 쪽파를 절여두었던 액젓 1컵에서 조금 덜어내, 새우젓 1T랑 같이 넣고 믹서에 갈아서 넣어준다.)
4. 쪽파가 액젓에 절여져 숨이 살짝 죽으면, 액젓을 모두 따라내고 준비한 김치 양념을 모두 넣어 고루 섞어준다. (*쪽파의 하얀 부분 -> 초록 부분 순으로 양념을 고루 발라준다.) 완성된 파김치는 조금씩 손에 쥐어 반을 접고 초록 부분을 모아 파 몸통을 돌돌 말아, 통에 차곡차곡 담아준다.
가족 평가단의 엄중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모름지기 김장의 참맛은 담그고 있는 바로 그때, 그 순간에 양념이 묻은 손으로 집어 올린 새빨간 김치를 바로 맛보는 것이라 했으렷다. 양념을 고루 바른 쪽파 한줄기를 아빠 입에 쏙 집어넣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아리송한 표정과 함께 "음." 외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방으로 들어가셨다. 모두 돌아가며 한입씩 맛보았지만 솔직하게 내 마음속으로는 제법 파김치 맛이 나서 신기해하며 살짝 들뜨기도 했던 찰나였다. 뭐지? 왜일까? 간이 생각보다 싱겁나? 너무 짠 걸까? 아님 맛이 없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을 뒤로한 채 그렇게 파김치 담그기를 마무리하고 곧이은 점심식사 시간. 막 버무린 파김치 서너 뭉텅이를 집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내어놓고, 나의 김장을 부추긴 장본인(?) 이자 손수 쪽파 다듬기를 담당해주신 아빠의 반응을 긴장 속에서 다시금 지켜봤다. 아빠는 하얀 햅쌀밥 한 숟갈을 떠 파김치 한줄기를 정갈히 접어 올려 한입에 쏙 넣었다. 몇 초나 흘렀을까, 고요한 정적을 깨고 아빠는 짧고 굵게 말씀하셨다. "이야, 맛있다. 정말 잘했다." 나의 인생 첫 김장 경험 치고는 가족 모두 호평 일색이었다. 아빠는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좋겠다며, 한술 더 떠 알타리무를 사서 손질도 해줄테니 총각김치도 담가보라 하신다. 엄마는 "그럼, 나는 갓김치~", 남편은 "나도 나도, 배추김치~", 모두들 이때다 싶어 한 마디씩 더해본다. 처음엔 기대도 하지 않던 가족들이 이제는 나를 믿고(?), 물심양면으로 적극 지원할 태세로 내게 김치를 담가보라 한다.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다음 김장이 심히 걱정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파김치가 주는 매력은 바로 파에 있다. 쪽파의 알싸한 매운맛. 파김치가 익으면 익을수록 그 매움의 강도는 줄어들지만, 맛은 한층 더 깊어진다. 하지만 갓 담근 파김치도, 다음날, 그다음 날의 파김치도 모두 각기 다른 매력으로 입맛을 돋워준다. 김치를 담근 첫날은 액젓의 강렬한 향과 파의 매운맛이 강하게 매력 발산을 하는 한편, 다음 날부터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액젓이 파에 스며들고 양념들과 함께 익어가면서 내는 맛과 향이 더욱 풍성해진다. 김치 하나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이란 말은 직접 담근 파김치와 마주했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