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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과 와인, 전쟁 속에서 빚어진 한 잔의 역사

by 보나스토리

백년 전쟁과 와인, 전쟁이 만든 경제와 외교

역사는 전쟁과 함께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와인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전쟁 속에서 중요한 경제적, 문화적, 외교적 도구가 되었습니다. 백년 전쟁(Hundred Years’ War, 1337-1453)은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에서 장기간 이어진 분쟁으로,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경제, 정치, 문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의 배경에는 플랑드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과 함께,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공유하던 ‘와인’이라는 중요한 무역품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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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과 잉글랜드의 경제적 이해관계

백년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보르도(Bordeaux) 와인은 잉글랜드 왕실과 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12세기, 엘레오노르 드 아키텐(Eleanor of Aquitaine)이 잉글랜드의 헨리 2세(Henry II)와 결혼하면서,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 공국은 잉글랜드 왕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는 보르도 와인이 잉글랜드로 대량 수출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잉글랜드 왕실과 귀족들은 보르도 와인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13세기 말까지 보르도 와인은 잉글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품 중 하나가 되었으며, 연간 수천 톤의 와인이 런던과 주요 항구로 수송되었습니다. 보르도 와인은 잉글랜드의 맥주 중심적인 음주 문화를 변화시켰고, 귀족층과 상류층에서 필수적인 소비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잉글랜드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백년 전쟁이 발발한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였습니다.

map of French wine .png File:Vignobles France.svg - Wikimedia Commons

백년 전쟁의 시작과 와인 무역의 변동

1337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Edward III)는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를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백년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관계가 깊게 얽힌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보르도 지역은 전쟁의 핵심 무대 중 하나였으며, 잉글랜드가 이를 지배할 경우 안정적인 와인 공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 초기, 잉글랜드는 프랑스 내에서 강력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며 보르도 지역을 포함한 아키텐을 효과적으로 지배했습니다. 이로 인해 잉글랜드로의 와인 수출이 지속되었으며, 런던의 항구에는 여전히 보르도 와인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14세기 후반부터 프랑스가 전쟁의 주도권을 되찾아가면서 보르도 와인의 흐름도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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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외교, 동맹과 전쟁을 넘나들다

백년 전쟁 기간 동안 와인은 단순한 교역품을 넘어 외교적인 도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양측 모두 와인을 무역 협정과 동맹의 일부로 활용하였으며, 특히 프랑스 내의 특정 영주들은 와인을 통해 잉글랜드와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부르고뉴 공국(Burgundy Duchy)은 와인 생산지로 유명했으며, 전략적으로 잉글랜드와 협력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려 했습니다.

프랑스 왕실 역시 와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국내 귀족과 동맹국의 충성을 얻으려 하였습니다. 전쟁 중에도 프랑스 귀족들은 연회를 열어 와인을 소비하며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였고, 이는 군사적 사기와도 연결되었습니다.

httpspicryl.commediafrancais-5054-fol-229v-bataille-de-castillon-1453-7c21f0 .jpg Français 5054, fol. 229v, Bataille de Castillon (1453) - PICRYL - Public Domain Media Search Engine

전쟁의 후반기, 보르도의 함락과 와인의 귀결

1453년, 백년 전쟁은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카스티용 전투(Battle of Castillon)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면서, 잉글랜드는 아키텐과 보르도를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전쟁의 마지막 주요 전투로 평가되며, 잉글랜드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존 탈봇(John Talbot) 장군이 전사한 전투로도 유명합니다. 탈봇 장군의 죽음은 잉글랜드군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켰고, 이후 잉글랜드는 보르도를 포함한 프랑스 내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였습니다.

보르도 와인의 잉글랜드 수출이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이는 잉글랜드 경제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 왕실과 귀족들은 보르도 와인의 대안으로 포르투갈 와인을 찾기 시작하였고, 이는 이후 1703년 메투엔 조약(Methuen Treaty)을 통해 영국-포르투갈 와인 무역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보르도 와인은 프랑스 국내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루이 14세(Louis XIV)의 치세 동안 프랑스 왕실과 유럽 귀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음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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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쟁이 남긴 와인의 유산

백년 전쟁은 단순한 영토 전쟁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 그리고 와인 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 거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전쟁을 통해 와인은 단순한 음료에서 정치와 외교, 그리고 경제적 영향력을 가진 상품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잉글랜드는 보르도 와인을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다지려 했으며, 프랑스는 이를 지키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르도 와인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으며, 백년 전쟁을 통해 그 가치를 더욱 확고히 다졌습니다. 한 잔의 보르도 와인은 유럽의 전쟁과 외교, 그리고 경제적 변화 속에서 탄생한 역사의 산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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