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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와 부르고뉴 와인의 권위

by 보나스토리 Mar 16. 2025


루이 14세와 부르고뉴 와인, 태양왕의 궁정 와인

17세기 프랑스는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그 중심에는 ‘태양왕’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가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를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으며, 화려한 궁정 문화와 예술, 그리고 미식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 가운데,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은 루이 14세의 시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왕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와인의 위상이 높아졌고, 부르고뉴 와인은 왕의 건강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와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루이 14세와 부르고뉴 와인의 관계를 조명하며, 그 시대에 와인이 어떻게 정치, 문화, 그리고 의료적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Louis XIV of France - Public domain portrait painting - PICRYL - Public Domain Media Searc itoldya tLouis XIV of France - Public domain portrait painting - PICRYL - Public Domain Media Searc itoldya t

부르고뉴 와인의 개요

부르고뉴(Bourgogne) 와인은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명성이 높은 와인 중 하나입니다. 이 지역은 피노 누아(Pinot Noir)와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으로 유명하며, 특정 지역의 토양과 기후를 반영하는 ‘테루아(Terroir)’ 개념이 확립된 곳입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세부적으로 코트 드 뉘(Côte de Nuits),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샤블리(Chablis), 보졸레(Beaujolais) 등으로 나뉘며, 각 지역은 독특한 특성을 지닌 와인을 생산합니다.

이 지역의 와인은 중세 수도원에서 처음 체계적으로 생산되었으며, 이후 왕실과 귀족들에게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특히 루이 14세 시대에 이 와인은 왕의 건강을 위해 권장되었고, 프랑스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더욱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루이 14세의 궁정과 와인의 역할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며 프랑스 왕권의 절대성을 과시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유럽 최고의 궁정 문화를 조성하였습니다. 당시 베르사유에서는 매일 성대한 연회가 열렸으며, 프랑스 요리와 와인은 궁정 생활에서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왕실에서는 보르도, 샹파뉴, 론 등 다양한 지역의 와인을 소비하였지만, 루이 14세가 특히 애정을 가진 것은 부르고뉴 와인이었습니다.

부르고뉴 와인은 섬세하고 우아한 맛으로 유명했으며, 특히 디종(Dijon)과 본(Beaune) 지역의 와인이 왕의 식탁을 장식했습니다. 루이 14세의 주치의였던 ‘앙투안 다킨(Antoine d’Aquin)’은 왕의 건강을 위해 보르도 와인보다 부드럽고 가벼운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도록 권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왕이 노화와 위장 질환을 겪으면서, 부드럽고 부담이 적은 와인을 선호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File:Vignobles bourgogne.png - Wikimedia Commons 방문File:Vignobles bourgogne.png - Wikimedia Commons 방문

부르고뉴 와인의 궁정 내 위상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와인이 기호품을 넘어서, 정치적 상징과 외교적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와인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자국의 와인 산업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왕실 전용 와인으로의 부상

루이 14세는 특정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부르고뉴 와인을 선호했으며, 이로 인해 일부 생산지는 ‘왕실 전용 와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코트 드 뉘(Côte de Nuits)와 코트 드 본(Côte de Beaune) 지역의 와인들은 특히 왕실에서 인기가 많았으며, 이들 와이너리는 왕실의 후원을 받으며 더욱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와 수도원의 와인 생산 역할

당시 부르고뉴 지역에서는 수도원들이 와인 생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클뤼니 수도원(Cluny Abbey)과 시토 수도원(Cîteaux Abbey)에서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여 왕실과 귀족들에게 공급하였습니다.

수도원에서 만들어진 와인은 ‘신의 축복을 받은 술’로 여겨졌으며, 루이 14세는 이러한 와인을 선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외교적 도구로서의 와인

루이 14세의 치세 동안 프랑스는 유럽 각국과 외교적 갈등과 동맹을 반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와인은 중요한 선물로 활용되었습니다.

프랑스 대사들은 외국 왕실과 귀족들에게 부르고뉴 와인을 선물하며 프랑스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였고, 이는 프랑스 와인의 국제적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이 14세 이후 부르고뉴 와인의 발전

루이 14세 사후에도 부르고뉴 와인은 프랑스 와인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부르고뉴 와인은 더욱 정교한 생산 방식과 마케팅 전략을 도입하였으며, 나폴레옹 시대에도 여전히 프랑스 와인의 대표적인 명성을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1855년 보르도 와인 등급이 공식적으로 정해졌을 때, 부르고뉴는 자체적인 와인 등급 체계를 개발하여 지역별 와인의 차별성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고뉴 와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럽고 가치 있는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는 루이 14세 시대부터 시작된 왕실의 후원과 인기가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File:Vignoble Beaune.jpg - Wikimedia CommonsFile:Vignoble Beaune.jpg - Wikimedia Commons

태양왕이 남긴 와인의 유산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와인 산업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궁정에서 부르고뉴 와인은 건강, 정치, 외교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도원의 전통과 왕실의 후원을 바탕으로 성장한 부르고뉴 와인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기원은 바로 루이 14세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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