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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8세와 와인, 탐욕과 권력의 드라마

by 보나스토리

잔혹한 카리스마, 국왕 헨리 8세

영국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군주 중 한 명인 헨리 8세(Henry VIII)는 평범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섯 번의 결혼, 가톨릭과의 결별, 수도원 해체 등을 통해 영국 사회를 뒤흔들었습니다. 특히 헨리 8세는 첫 번째 부인 캐서린과의 결혼을 무효화하고, 훗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토대를 마련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가 되는 앤 볼린과의 결혼으로 유명합니다. 이로 인한 가톨릭과의 결별은 개인적 필요와 국가적 권력 강화를 위한 결과였으며, 영국 국교회의 탄생과 종교개혁의 기틀을 마련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통치는 정치적 혼란과 함께 화려한 사치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치의 중심에는 언제나 와인이 있었습니다. 헨리 8세의 생애와 통치는 탐욕과 권력욕이 녹아 있는 연회와 와인 잔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Portrait of King Henry VIII - Public domain portrait painting - PICRYL/ https://picryl.com/media/por

헨리 8세와 앤 불린 관련 영화

헨리 8세와 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이야기는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뤄졌습니다.

천일의 스캔들 (The Other Boleyn Girl, 2008)

앤 불린과 그녀의 자매 메리 불린, 그리고 헨리 8세 사이의 사랑과 권력,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필리파 그레고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역사적 사실과 극적인 상상이 결합된 작품입니다. 감독은 찰스 재럿이 맡았습니다.

천일의 앤 (Anne of the Thousand Days, 1969)

헨리 8세와 앤 불린의 만남, 결혼,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까지 앤 불린의 삶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1948년 희곡을 원작으로 하며, 앤 불린이 왕비로서 보낸 약 천일간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감독은 찰스 재럿입니다.

드라마 [튜더스] (The Tudors, 2007~2010)

헨리 8세의 전체 생애와 여섯 명의 왕비, 특히 앤 불린과의 관계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드라마 형식으로, 정치적·개인적 갈등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화면 캡처 2025-04-22 121434.jpg https://www.worldhistory.org/article/1547/The Six Wives henry-viii/ World History Encyclopedia

당시 영국과 스페인, 프랑스의 관계

영국과 스페인과의 관계

헨리 8세는 즉위 직후 스페인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은 스페인 국왕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딸로, 두 나라의 정치적 결속을 위한 정략결혼이었습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아들을 얻지 못하고, 캐서린과의 이혼을 추진하면서 로마 교황청과 갈등이 발생했고, 이는 스페인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스페인은 가톨릭 강국으로서 헨리 8세의 이혼과 영국 교회의 독립을 강하게 비판하고, 교황청과 함께 헨리 8세를 파문하는 데 동참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와의 관계

헨리 8세는 즉위 초기부터 프랑스에 대한 영국의 전통적 경쟁심과 왕위계승권 주장(살리카법 등)에 따라 프랑스와 적대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스페인, 신성로마제국과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하기도 했으며, 1544년에는 직접 프랑스를 침공해 불로뉴를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비용과 동맹 붕괴로 곧 화친을 맺고 철수해야 했습니다.


다양한 미식가 헨리 8세의 와인

헨리 8세가 가장 좋아한 와인 종류에 대한 구체적인 일차 사료는 제한적이지만, 당시 튜더 왕조의 궁정과 헨리 8세의 취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레드 와인을 특히 선호하였습니다. 헨리 8세는 유럽 대륙,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고급 레드 와인을 즐겼으며, 귀족과 왕실에서 널리 사랑받던 보르도(Bordeaux)와 부르고뉴(Bourgogne) 지역의 와인, 그리고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프레스코발디 가문 와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 중에서도 보르도산 레드 와인은 당시 잉글랜드 궁정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와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르도 와인은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 등 다양한 품종을 블렌딩하여 묵직하고 깊은 맛을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헨리 8세와 와인 에피소드

헨리 8세의 왕실에서는 프랑스 와인, 특히 보르도산 와인을 대량으로 구매하여 소비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헨리 8세의 궁정에서는 와인을 비롯한 음료를 은제나 금제 잔에 담아 제공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호화로운 식사는 사슴고기나 멧돼지 고기와 같은 요리와 와인이 조화를 이루며 유명하였습니다. 헨리 8세가 1536년부터 1541년까지 가톨릭 수도원을 해산하며 몰수한 재산에는 와인 저장고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그가 와인을 포함한 사치품을 중시하였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연회에서는 와인이 물처럼 흐를 정도로 풍성하게 제공되었으며, 외국 사절단을 맞이할 때도 가장 귀한 와인을 내놓아 영국 왕권의 위엄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영국 왕실의 연회 메뉴에는 수십 종의 고기 요리와 함께 다양한 와인이 곁들여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호사가 아니라 헨리 8세가 자신의 부와 권력을 와인을 통해 과시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수도원의 몰락과 와인의 재편

헨리 8세의 통치는 영국의 종교적 판도를 바꾼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교황청과 결별하고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였으며, 수도원 해체 정책을 단행하였습니다. 당시 수도원은 와인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수도사들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이 해체되면서 이들의 토지는 왕실과 귀족들에게 넘어갔으며, 영국 내 와인 산업도 크게 변화하였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은 수도원에서 가져온 와인 저장고와 포도밭을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와인 문화를 구축하였으며, 헨리 8세는 이를 통해 와인을 사유화하고 귀족 문화로 흡수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와인은 더 이상 수도원에서 관리하는 신성한 음료가 아니라 왕과 귀족들이 통제하는 사치품이 되었습니다.


헨리 8세의 탐욕과 와인의 소비

헨리 8세는 체격이 크고 대식가였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연회에서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함께 와인이 제공되었으며, 하루 평균 6리터 이상의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맥주가 더 많이 소비되었지만, 왕실에서는 최고급 와인이 식사의 중심을 차지하였습니다. 그의 탐욕적인 식사 습관은 단순한 과시가 아니라 그의 권력욕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헨리 8세는 왕권을 절대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모든 것을 소유하려 했으며, 이는 와인 소비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귀한 와인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위엄을 더욱 강조하였습니다.


와인의 정치적 활용

헨리 8세는 와인을 기호품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도 활용하였습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복잡하였으며, 헨리 8세는 외교적인 만남에서 와인을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그는 프랑스 왕과의 회동에서 최고급 와인을 제공하며 정치적 우위를 강조하려 하였습니다. 그는 와인 무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잉글랜드 왕실의 경제적 기반을 다졌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에서 와인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영국 왕실이 보유한 포도밭과 와이너리는 헨리 8세의 치세 동안 더욱 확대되었으며, 이는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시기의 와인 무역 발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년과 와인의 그림자

헨리 8세의 말년은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이 낳은 비극적 결과였습니다.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으며, 극심한 비만과 통풍으로 고통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와인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끝까지 최고의 와인을 마시며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그의 탐욕과 과시는 결국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는 1547년 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의 사망 이후에도 와인은 영국 왕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였습니다. 헨리 8세가 남긴 와인 저장고는 후대 왕들에게까지 이어졌으며, 영국 왕실의 와인 소비 문화는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헨리 8세와 와인의 유산

헨리 8세는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영국을 변화시킨 혁신적인 인물이었으며, 동시에 탐욕과 사치의 상징적인 존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와인에 대한 집착은 단순한 기호에 그치지 않고 권력과 정치, 그리고 사회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영국 왕실의 와인 문화는 헨리 8세 시대의 유산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음주를 벗어나 역사 속에서 왕과 귀족들이 만들어온 문화적 흐름 속에 존재하는 한 부분일지도 모릅니다. 헨리 8세의 시대에 와인은 권력과 욕망, 그리고 시대를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였으며, 오늘날에도 그의 이름과 함께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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