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기에 완전한 구조와 맛
"건축은 빛 안에서 덩어리들이 함께 펼치는 훌륭하고 위대하며 올바른 연극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말이다. 하지만 그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덩어리가 아니라 그 안의 공간이었다. 공간. 비어 있는 곳. 그 비어 있음이 모든 것을 담는다. 펜네 파스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묻는다. "왜 가운데가 비어 있나요?" 비어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의 트라토리아 주방. 셰프 마르코는 펜네 한 개를 집어 들고 빛에 비춰본다. 반대편이 훤히 보인다. 완벽한 원통. 가운데가 뚫려 있다. "이 빈 공간이 펜네의 전부야." 그가 말한다. "이 비어 있음이 펜네를 펜네로 만들어."
비어 있기에 채워진다
펜네는 이탈리아어로 '펜촉'이라는 뜻이다. 양 끝이 사선으로 잘려 있어 마치 만년필 끝처럼 생겼다. 하지만 펜네의 본질은 모양이 아니라 구조다. 속이 비어 있는 원통 구조. 이것이 펜네를 다른 파스타와 구별하는 결정적 특징이다.
스파게티는 속이 꽉 차 있다. 소스는 면의 표면에만 달라붙는다. 포크로 한 입 먹으면, 소스의 맛이 먼저 오고, 그다음에 면의 맛이 온다. 맛이 분리되어 있다. 반면 펜네는 다르다. 100도 물에 10~12분간 삶은 펜네를 소스와 섞으면, 소스가 펜네 안으로 들어간다. 빈 공간 속으로. 포크로 한 입 먹으면, 면과 소스가 동시에 입 안에 들어온다. 밖에서도 소스, 안에서도 소스. 맛이 통합되어 있다.
펜네 알 아라비아타를 만들 때, 셰프는 반드시 한 가지를 확인한다. 소스가 펜네 속으로 제대로 들어갔는가. 팬을 흔들어 펜네를 뒤집으며 소스와 섞는다. 나무 스푼으로 펜네를 들어 빛에 비춰본다. 펜네 구멍 안쪽에 토마토소스의 붉은빛이 보이면, 그때 불을 끈다. 소스가 밖에만 있으면 미완성이다. 안까지 들어가야 완성이다.
비어 있기 때문에 채워진다. 이것이 펜네의 철학이다.
구조가 경험을 결정한다
같은 토마토소스로 스파게티와 펜네를 만들면 맛이 다르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레시피. 하지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은 완전히 다르다. 왜?
스파게티는 면과 소스가 분리되어 있다. 첫 입에 소스의 산미가 강하게 온다. 씹을수록 면의 밀가루 맛이 올라온다. 맛의 레이어가 순차적이다. 반면 펜네는 면과 소스가 통합되어 있다. 첫 입부터 면과 소스가 동시에 느껴진다. 씹을 때마다 펜네 안의 소스가 터져 나온다. 맛의 레이어가 동시적이다.
이것은 물리적 구조의 차이다. 스파게티는 1차원이다. 표면만 있다. 펜네는 2차원이다. 표면과 내부가 있다. 이 내부, 즉 빈 공간이 맛의 깊이를 만든다.
펜네 리가테는 펜네의 표면에 세로 홈이 파여 있는 버전이다. 이 홈 때문에 소스가 더 잘 달라붙는다. 하지만 진짜 차이는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홈이 있든 없든, 펜네의 핵심은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이다. 그 빈 공간이 소스를 담고, 맛을 담고, 경험을 담는다.
피렌체의 한 레스토랑에서 셰프는 이렇게 설명한다. "펜네는 작은 그릇이야. 각 펜네가 소스를 담는 작은 그릇. 그래서 펜네 요리는 수백 개의 작은 그릇에 소스를 담아내는 거지. 스파게티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야."
속이 비어야 고르게 익는다
펜네를 100도 물에 넣으면, 겉부터 익기 시작한다. 바깥쪽 표면이 먼저 전분이 호화되며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안쪽은 아직 딱딱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열이 안쪽으로 전달된다. 10~12분쯤 지나면, 겉과 속의 익음 정도가 비슷해진다. 이것이 알덴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있다. 빈 공간 덕분에 펜네는 안과 밖이 동시에 물과 접촉한다. 스파게티는 겉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익는다. 중심부는 가장 나중에 익는다. 반면 펜네는 겉과 속이 동시에 익는다. 바깥쪽 표면도 100도의 물과 만나고, 안쪽 표면도 100도의 물과 만난다. 균일하게 익는 것이다.
이것이 펜네의 식감을 결정한다. 스파게티는 겉은 부드럽고 속은 약간 단단한 그러데이션이 있다. 펜네는 겉과 속이 비슷한 균일함이 있다. 씹을 때 저항감이 일정하다. 이 균일함이 펜네의 매력이다.
그리고 이 균일함 때문에, 펜네는 두꺼운 소스와 잘 어울린다. 볼로네제 소스처럼 고기가 듬뿍 들어간 라구 소스. 고르곤졸라 크림소스처럼 치즈가 진하게 녹아든 소스. 이런 걸쭉한 소스는 스파게티에는 너무 무겁다. 면이 소스에 눌려버린다. 하지만 펜네는 다르다. 두꺼운 소스를 담아낼 수 있다. 안쪽 공간에 소스를 넣고, 바깥쪽에도 묻히고. 소스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비움은 약함이 아니다
"공간과 빛과 질서. 이것들은 빵이나 잘 곳만큼이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렇게 말했다. 공간을 창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말했다. "자연에는 쓸데없는 것이 없다. 모든 구조에는 이유가 있다." 나무의 속이 비어 있는 것도, 대나무가 마디마디 빈 공간을 가진 것도, 뼈가 속이 비어 있는 것도 이유가 있다. 가볍게 하기 위해서. 그러면서도 강하게 하기 위해서.
펜네도 마찬가지다. 만약 펜네가 속이 꽉 차 있었다면? 더 무거웠을 것이다. 100도 물에 더 오래 삶아야 했을 것이다. 소스를 더 많이 써야 했을 것이다. 먹을 때 더 무거웠을 것이다. 하지만 속을 비웠다. 그래서 가벼워졌다. 빨리 익는다. 소스를 효율적으로 담는다. 먹을 때 가볍다.
비움은 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강함이다.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펜네는 잘 부러지지 않는다. 속이 꽉 찬 파스타는 비틀면 쉽게 부러진다. 하지만 펜네는 탄력이 있다. 원통 구조가 압력을 분산시킨다. 안쪽과 바깥쪽이 함께 힘을 받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란 무엇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빼는 것이다. 펜네의 디자이너는(정확히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것을 알았다. 빼야 한다는 것을. 가운데를 비워야 한다는 것을. 그 비움이 펜네를 완성한다는 것을.
우리는 왜 채우려 하는가
한국의 펜네 요리는 왜 그렇게 무거울까? 펜네 로제 파스타를 주문하면, 접시가 소스로 넘친다. 펜네가 소스에 잠겨 있다. 위에는 파르메산 치즈, 파슬리, 베이컨, 방울토마토가 수북이 쌓여 있다. "푸짐하다"는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펜네 본연의 맛은 사라진다.
이탈리아에서 펜네 알 아라비아타를 주문하면, 접시에 소스가 거의 안 보인다. 펜네에 딱 필요한 만큼만 있다. 펜네 안에, 펜네 겉에. 위에 파르메산 치즈를 살짝 갈아서 뿌린다. 끝이다. 심플하다. 하지만 한 입 먹으면 안다. 펜네 안에서 터지는 토마토소스의 맛을. 마늘의 향을. 고추의 열을.
한국은 비움을 불안해한다. "이것만으로 충분할까?" "더 넣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더 넣는다. 크림을 넣고, 치즈를 더하고, 베이컨을 올리고, 야채를 더한다. 펜네의 빈 공간을 믿지 못한다. 그 빈 공간이 충분히 맛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펜네는 이미 완전하다. 빈 공간이 있기 때문에 완전하다. 더 채울 필요가 없다. 필요한 만큼만 채우면 된다.
침묵이 들리는 순간
로마의 어느 트라토리아에서 주인 할머니는 손님에게 말한다. "천천히 먹어봐. 한 입 먹고, 씹고, 삼키고. 그리고 다음 입을 먹어. 펜네 안에 뭐가 들었는지 느껴봐."
손님이 천천히 먹는다. 첫 입. 겉에 묻은 토마토소스의 맛. 씹는다. 펜네가 터지며 안쪽에서 소스가 나온다. 두 번째 입. 또 다른 맛. 펜네마다 소스가 다르게 들어 있다. 어떤 것은 가득, 어떤 것은 적게. 세 번째 입. 펜네 자체의 맛. 밀가루의 단맛, 쫄깃한 식감.
"어때?" 할머니가 묻는다. "각 펜네가 다르게 느껴지지?" 손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펜네야. 펜네는 각자가 작은 세계야. 각 펜네 안에 다른 맛이 있어. 그래서 먹을 때마다 다른 경험을 하는 거지."
이것은 철학이다. 비워야 채워진다. 비워야 담긴다. 비워야 들린다. 펜네의 빈 공간은 침묵이 아니다. 오히려 대화의 시작이다. 소스와 면의 대화. 겉과 속의 대화. 요리사와 손님의 대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말했다. "공간은 건축의 본질이다." 그리고 펜네에서 빈 공간은 파스타의 본질이다.
여백이 만드는 가능성
동양 수묵화에는 여백이 있다. 그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 하지만 그 비어 있음이 그림을 완성한다. 산은 여백 속에서 더 높아 보이고, 강은 여백 속에서 더 넓어 보인다. 여백은 빈 곳이 아니라, 상상의 공간이다.
펜네의 빈 공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토마토소스인가, 크림소스인가, 라구 소스인가. 펜네는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시칠리아의 파스타 알라 노르마는 펜네로 만든다. 토마토소스, 튀긴 가지, 리코타 살라타 치즈. 세 가지 재료지만, 펜네 안에서 복잡한 하모니를 만든다. 토마토소스가 펜네 속으로 들어가고, 가지의 기름이 섞이고, 치즈가 녹아들어 간다. 한 입에 모든 것이 담긴다. 펜네의 빈 공간이 세 가지 맛을 하나로 통합한다.
밀라노의 펜네 알 고르곤졸라는 펜네로 가능한 요리다. 진한 고르곤졸라 치즈 소스. 너무 진해서 스파게티로는 만들 수 없다. 면이 소스에 질식한다. 하지만 펜네는 다르다. 소스를 안에 담고, 밖에 묻히고, 그러면서도 면 자체의 식감을 유지한다. 빈 공간이 균형을 만든다.
자유는 비움에서 온다
펜네를 만든 사람은 천재였다. 단순히 파스타를 원통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운데를 비운 것이 천재적이었다. 그 비움이 펜네에게 자유를 주었다. 어떤 소스와도 어울릴 수 있는 자유. 오븐에 구워도 좋고, 볶아도 좋고, 샐러드로 만들어도 좋은 자유.
펜네 티발로는 파스타를 층층이 쌓아 케이크처럼 만든 요리다. 이것은 펜네로만 가능하다. 스파게티는 층을 만들 수 없다. 엉켜버린다. 하지만 펜네는 각자가 독립적이다. 빈 공간 덕분에 서로 붙지 않는다. 쌓아도 형태가 유지된다.
펜네 샐러드는 차갑게 먹는 파스타다. 참치, 올리브, 방울토마토, 바질을 섞는다. 이것도 펜네의 빈 공간 덕분이다. 드레싱이 펜네 안으로 들어가 면 전체에 고루 맛이 밴다. 스파게티 샐러드는 드레싱이 바닥에 고인다. 면과 분리된다. 하지만 펜네 샐러드는 면과 드레싱이 하나다.
비움은 제약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펜네가 증명한다.
시간이 공간을 채운다
펜네 알 아라비아타를 만든다. 토마토소스를 80도에서 30분간 졸인다. 펜네를 100도 물에 10~12분간 삶는다. 팬에 소스를 넣고 펜네를 넣는다. 약 140도의 중 약불에서 2~3분간 섞는다. 이 시간이 중요하다. 소스가 펜네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
팬을 흔들면서, 펜네가 뒤집히고, 소스와 섞이고, 조금씩 소스가 펜네 구멍 속으로 스며든다. 2분이 지나면 펜네를 하나 집어 든다. 빛에 비춰본다. 펜네 안쪽이 붉게 물들어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다. 30초 더 섞는다. 다시 확인한다. 이제 펜네 구멍 안쪽 깊숙이까지 소스가 스며들어 있다. 완성이다.
이 과정을 서두르면 안 된다. 소스를 펜네에 그냥 부으면, 펜네 겉에만 묻고 안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반드시 시간을 주어야 한다. 팬을 흔들며, 펜네를 뒤집으며, 소스가 스스로 펜네 안으로 들어갈 시간을 주어야 한다.
비움을 채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급하게 채우면 겉만 채워진다. 천천히, 정성껏 채워야 속까지 채워진다.
빈 공간이 말하는 것
펜네 한 개를 손에 들고 관찰한다. 작은 원통. 양 끝이 비스듬히 잘려 있다. 가운데가 뚫려 있다.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함 속에 모든 지혜가 담겨 있다.
비워야 채워진다. 덜어야 더해진다. 단순해야 완전해진다. 펜네는 파스타가 아니라 철학이다. 삶의 은유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채우려 한다. 빈 공간을 두려워한다. 여백을 불안해한다. 하지만 펜네는 말한다. 비워도 괜찮다고. 비움이 오히려 강함이라고.
르 코르뷔지에는 말했다.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 하지만 진짜 건축은 기계가 아니라 그 안의 공간이다. 펜네도 마찬가지다. 진짜 펜네는 면이 아니라 그 안의 빈 공간이다.
그 빈 공간이 소스를 담고, 맛을 담고, 이야기를 담는다.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다. 이것이 펜네의 비밀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펜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비워라. 그러면 채워질 것이다.
� 참고 서적 《파스타, 이야기로 피어나다》 조동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