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 잔에 담긴 관계와 시간에 대하여
병을 열면 시작되는 의식
저녁 식탁에 앉아 와인 한 병을 연다.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와인이 잔에 부어지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 잔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건배." 혹은 "Cheers." 또는 "Santé."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술을 마시기 위한 신호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잔을 맞대는 이 작은 의식 속에 담겨 있는 걸까.
건배의 역사는 놀랍도록 오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사람들은 신들에게 와인의 일부를 따라 바치는 리베이션(libation) 의식을 행했다. 신들을 기리며 음료의 일부를 땅에 쏟아내던 이 전통은, 점차 신이 아닌 사람을 위한 축배로 변화했다.
12세기 제프리 오브 몬머스의 《영국 왕들의 역사(Historia Regum Britanniae)》에 따르면, 450년경 색슨 동맹의 지도자 헹기스트의 딸 론웨인(Rowena)이 브리튼의 보티건 왕에게 향료를 넣은 와인을 건네며 "Louerd King, waes hael!"(왕이시여, 건강하소서!)이라고 말한 것이 영국에서 기록된 최초의 건배다. 비록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전설에 가깝지만, 건배 전통의 고대적 뿌리를 보여준다. 이 "waes hael"이라는 고대 영어 표현은 오늘날의 'wassail'로 이어졌다.
건배가 된 토스트
흥미롭게도 '건배(toast)'라는 단어 자체는 16세기에서 17세기의 관습에서 유래했다. 당시 와인은 오늘날처럼 정제되지 않아 신맛과 쓴맛이 강했다. 풍미를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은 향신료를 입힌 구운 빵 조각을 와인에 넣었다. 빵이 와인의 산미를 흡수하고 맛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메리엄-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빵은 와인의 나쁜 냄새를 줄이고 침전물을 흡수했으며, 때로는 그대로 먹기도 했지만 맛을 낸 후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흐르며 'toast'는 축배를 받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는데, 마치 토스트가 와인에 풍미를 더하듯 그 사람이 자리에 향을 더한다는 의미였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토스트를 바치다(drinking a toast)'는 표현이 대유행했고, 급기야 과도한 건배를 막기 위한 '토스트마스터(toastmaster)'라는 직책까지 등장했다.
함께 마신다는 것
와인을 함께 마신다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행위를 넘어, 그것은 관계의 선언이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잔을 맞대며 서로의 술을 섞는 행위가 독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 설화의 진위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다. 잔을 맞댄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믿는다"는 선언이다.
프랑스어 'Santé', 스페인어 'Salud', 독일어 'Prost', 히브리어 'L'Chaim'. 언어는 다르지만 모두 "건강을 위하여" 또는 "생명을 위하여"를 의미한다. 건배는 상대방의 안녕과 생명을 기원하는 축원이다. 나의 잔을 들어 올려 당신의 건강을 비는 그 순간, 우리는 개인에서 공동체로 전환된다. 와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 된다.
기독교 전통에서 성찬식의 와인은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고린도전서 10장 16-17절은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라고 말한다. 와인을 나눈다는 것은 같은 생명을 공유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분리된 개인들이 하나의 몸이 되는 경험이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건배를 할 때 눈을 마주쳐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프랑스, 독일, 체코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건배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7년간 불운이 따른다는 미신까지 있다. 이 미신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중요한 인간적 진실이 담겨 있다.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현존(presence)의 선언이다. 나는 지금 여기, 당신과 함께 있다. 내 몸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내 주의도 온전히 이 순간에 머문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함께 있으되 함께 있지 않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지만 각자의 스마트폰을 보고,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세계에 머문다. 그러나 잔을 들어 올리고 눈을 마주치는 그 짧은 순간만큼은, 우리는 오로지 서로에게만 집중한다. 그것이 건배가 가진 힘이다.
조지아의 타마다, 건배의 예술가
조지아(Georgia)의 전통에서는 '타마다(Tamada)'라 불리는 건배 지휘자가 있다. '식탁의 독재자'라고도 불리는 이 역할을 맡은 사람은 수프라(supra)라 불리는 연회 내내 건배를 이끈다. 타마다는 웅변가여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며, 예리한 재치와 유머 감각을 가져야 한다.
각 건배마다 타마다는 긴 연설을 하며 우정, 가족, 고향, 역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로는 한 차례 건배가 10-15분간 이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알라베르디(Alaverdi)'라 부르며 다른 참석자를 지명해 건배를 이어가게 한다. 여기서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이야기의 매개체가 된다. 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우리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념하고, 약속한다.
좋은 타마다가 되려면 술을 많이 마실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절제하며 연회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너무 취하면 속도를 늦추고, 너무 멀쩡하면 더 마시게 한다. 분위기를 읽고, 노래와 춤을 적절히 배치하며, 모든 이가 하나 되도록 이끈다. 그래서 타마다는 단순한 사회자가 아니라 거의 사제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부재를 기억하는 건배
때로 건배는 부재하는 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 군대에서는 포로와 실종자를 기리는 '미싱 맨 테이블(Missing Man Table)' 의식이 있다. 이때 건배는 물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포로 생활 중 와인을 마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의식 속에서 빈 잔은 부재를 상징하지만, 동시에 그 부재를 기억하고 그들을 현존하게 만드는 방법이 된다. 잔을 들어 올리며 우리는 멀리 있는 이들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을 다시 식탁으로 초대한다.
나눔이 만드는 유대
와인 한 병은 보통 750ml다. 표준 와인 잔으로 다섯 잔 정도 나온다. 혼자 마시기엔 많고, 둘이 마시기엔 넉넉하며, 셋이나 넷이 나누면 한 잔씩 정도 된다. 와인 한 병의 용량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나눔을 전제로 한 용량이다.
와인을 혼자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 마시는 와인과 함께 나누는 와인은 다른 음료가 된다. 함께 마실 때 우리는 같은 병에서 따른 와인을 마신다. 같은 빈티지, 같은 포도밭,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 잔을 맞대며 우리는 이 공유를 확인하고 축하한다. "우리는 같은 순간, 같은 경험을 함께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공동 식사가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연인들은 데이트할 때 함께 식사하고, 비즈니스 계약은 점심 식사와 함께 체결되며, 외교 협상은 국빈 만찬에서 마무리된다. 결혼은 피로연으로 축하받고, 가족은 명절 식탁에서 재결합한다.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사랑과 소속의 언어다.
축하라는 이름의 인정
프랑스 철학자이자 라르슈 공동체의 설립자인 장 바니에(Jean Vanier)는 《비커밍 휴먼(Becoming Human)》에서 이렇게 썼다. "모든 아이, 모든 사람은 자신이 기쁨의 원천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모든 아이, 모든 사람은 축하받을 필요가 있다." 잔을 맞댄다는 것은 바로 이 축하의 몸짓이다. 내가 당신의 건강을 비는 것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내게 기쁨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과 잔을 나누는 것은, 당신과의 이 순간이 내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의식, 새로운 순간
건배는 고대 의식이지만 매번 새롭다. 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우리는 수천 년의 역사를 반복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순간만의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 어제의 건배와 오늘의 건배는 다르다.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이야기가 다르며, 기억이 다르다.
와인잔을 맞댈 때 나는 작은 '칭' 소리. 어떤 이들은 이 소리가 'Cin-cin'이라는 건배 표현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유리가 유리와 만나는 순간의 맑은 울림. 그 소리는 한순간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함께 있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나 혼자서는 낼 수 없는 소리다. 둘이 있어야, 둘이 마주해야, 둘이 움직여야 나는 소리다.
한 잔이 만드는 세계
와인 한 병을 열면 세계가 열린다. 그 병 속에는 특정 지역의 흙과 햇살, 포도를 재배한 사람들의 손길,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그 병을 열어 누군가와 나눌 때 일어난다. 병 속의 세계가 우리 사이의 세계가 된다. 와인은 대화를 부르고, 대화는 이야기를 낳으며, 이야기는 관계를 깊게 한다.
잔을 맞댄다는 것은 작은 의식이지만, 그 안에는 큰 진실이 담겨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바란다. 우리는 이 순간을 축하한다. 이 모든 것이 잔을 들어 올리고, 눈을 마주치고, 유리를 맞대는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누군가와 함께 와인을 마실 때, 잠시 멈춰보자. 잔을 맞대기 전, 상대방의 눈을 보자.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함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보자. 그리고 잔을 가볍게 맞대며 말해보자.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혹은 "우리 함께 있음을 위하여." 그 한마디와 한 모금 속에, 우리는 오래된 의식의 일부가 되고,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순간을 창조한다.
잔을 맞댄다는 것. 그것은 결국 삶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존재를 축하하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
참고 서적 《와인, 이야기로 피어나다》조동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