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에이징, 마르며 깊어지는 시간의 맛
시간이 빚어내는 정직한 향
드라이에이징 룸의 문을 열면 특유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곰팡이와 숙성된 고기가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향. 처음 맡는 사람에게는 낯설 수도 있지만, 이 향기야말로 시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직한 증거다. 섭씨 1~2도, 습도 70~85퍼센트, 그리고 끊임없는 공기의 흐름. 이 절제된 환경 속에서 고기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수분을 내어준다.
마르는 것은 단순한 손실이 아니다.
21일, 28일, 때로는 45일. 고기가 드라이에이징 룸에 매달려 있는 동안 전체 무게의 약 30퍼센트가 증발하고, 단단해진 표면까지 잘라내면 최종적으로 원래 무게의 40~50퍼센트만 남는다. 겉은 딱딱한 껍질처럼 굳어지고, 그 안에서는 효소들이 조용히 일한다. 단백질을 분해하고, 지방을 변화시키며, 새로운 풍미의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수분이 빠져나간 자리는 텅 빈 공허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농축된 맛, 깊어진 감칠맛, 치즈와 견과류를 닮은 고소함이 들어선다.
시간은 고기 밖이 아니라 안에서 흐른다.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는 시간과 변화에 대해 깊이 사유했는데, 그의 철학을 빌리자면 드라이에이징은 '시간이 물질 안에서 작용하는' 과정이다. 시간이 고기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고기 안에서 시간이 축적되며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킨다.
포기하는 것과 지키는 것
고기는 마르면서 무엇을 포기하는가?
우선 무게다. 상업적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큰 손해다. 같은 고기를 신선육으로 팔았다면 100의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을, 드라이에이징을 거치면 절반도 안 되는 무게로 줄어든다. 28일 숙성 기준으로 수분 증발로 약 30퍼센트, 표면 제거로 추가 10~20퍼센트.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버려지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정육사들은 이 손실이 실은 손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고기는 또한 '무난함'을 포기한다. 드라이에이징 된 고기는 호불호가 갈린다. 어떤 이는 그 깊고 복잡한 풍미에 매료되지만, 어떤 이는 과도하다고 느낀다. 누구에게나 좋은 맛일 수는 없다. 신선육이 보편적 호감을 얻는다면, 숙성육은 특정한 이를 위한 맛이다.
하지만 고기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진심이다.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진 그 풍미는 거짓이 없다. 급하게 만들어낼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다. 오직 기다림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정직한 맛이다.
농축이라는 이름의 깊이
물기 많은 글은 산만하다. 불필요한 수식어가 넘쳐나고, 같은 말이 반복되며, 핵심은 희석된다. 좋은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물기를 빼낸 문장은 단단하고, 명료하며, 여운이 깊다. 고기의 드라이에이징이 그렇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고기의 풍미는 집중된다. 애매했던 맛이 선명해진다. 흐릿했던 윤곽이 뚜렷해진다. 100그램의 신선육이 가진 맛을 70그램 안에 압축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100그램이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맛이 열린다. 버터 같은 고소함, 치즈를 연상시키는 발효향, 견과류의 풍부한 뉘앙스. 이런 맛들은 수분이 많을 때는 감춰져 있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젊었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품고 산다. 가능성, 욕망, 관계, 선택지.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무언가는 증발한다. 체력도, 시간도, 기회도 줄어든다. 하지만 남은 것들은 더 선명해진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마르면서 우리는 더 명확해진다.
겉을 희생하고 속을 지키다
드라이에이징에는 역설이 있다. 겉을 희생해서 속을 지킨다.
고기의 표면은 딱딱하게 마른다. 곰팡이가 자라고, 색이 어두워지며, 거의 가죽처럼 질겨진다. 이 부분은 결국 잘려나간다. 버려진다. 그러나 이 단단한 껍질이 없었다면 고기 내부는 제대로 숙성될 수 없었다. 외피는 일종의 보호막이다. 습도를 조절하고, 내부의 효소 작용을 촉진하며, 나쁜 박테리아로부터 고기를 지킨다.
우리도 삶에서 무언가를 단단하게 굳히지 않는가. 타인에게 보이는 겉모습, 사회적 역할, 때로는 감정의 표면까지. 그것들은 우리 내면을 보호하는 껍질이다. 물론 때가 되면 벗겨내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 껍질이 없었다면 내면은 상처받고 말았을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 익어가는 존재
일본의 가쓰오부시(가다랑어포)는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가다랑어를 훈연하고 말리고, 곰팡이를 입히고, 다시 말리는 과정을 수개월간 반복한다. 수분 함량이 15퍼센트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만들어진 가쓰오부시 는 세계에서 가장 단단한 식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수분 함량이 15퍼센트 이하로 낮아지면서 목재에 비견될 만큼 단단해지며, 실제로 전용 대패로 깎아야 할 정도다. 그러나 얇게 깎아내면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며 깊은 감칠맛을 남긴다.
마르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익어가는 것이다.
신선한 고기의 맛은 직접적이다. "나는 고기다"라고 말하는 맛. 반면 숙성된 고기의 맛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는 시간을 견뎠고, 변화를 받아들였으며, 이제 다른 존재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맛. 첫 번째가 명사라면 두 번째는 서사다.
기다림이 허락하는 층위
드라이에이징은 인내를 요구한다. 정육사의 인내, 투자의 인내, 그리고 먹는 이의 인내까지. 그 긴 시간을 누군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 신선한 고기 먹으면 되지 않나?"
맞는 말이다. 신선육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맛이다. 숙성육은 시간이 만든 맛이고,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층위의 맛이다.
작가 박완서는 "기다림은 열매가 아니라 뿌리다"라고 썼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숙성실 안의 고기가 그렇다. 가만히 매달려 있을 뿐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는 수천 가지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기다림도 그렇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시간들, 지루하고 답답한 날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우리 안에서는 무언가가 익어가고 있다. 마르고 있다. 깊어지고 있다.
한 점의 고기가 입안에서 녹을 때, 우리는 사실 시간을 먹는다. 21일의 기다림을, 수분이 증발한 무게를, 효소가 일한 흔적을, 곰팡이가 남긴 향을. 그 한 점은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무겁다.
마르며 깊어지는 시간. 그것은 고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참고 서적《고기 한 점, 불과 시간을 품다》조동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