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 구조로 보는 고기 맛의 과학

고기가 부드럽거나 질긴 이유 – 근육 구조에서 찾다

by 보나스토리

고기를 알기 전에, 고기가 무엇인지부터

우리가 불판에 올리는 소고기 한 점은 살아있던 소의 근육이다. 그 근육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순간, 고기를 고르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모든 행위가 달라진다. 맛있는 고기는 운이 아닌 원리의 결과다.

국립축산과학원의 일부 연구에 따르면, 한국 소비자들은 소고기 맛을 평가할 때 부드러운 정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연도 약 55%, 향미 약 27%, 다즙성 약 18% 참고 수치). 연구마다 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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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액체의 정체 — 고기 색깔에 담긴 과학

고기의 붉은색을 핏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오해다. 피가 붉은 것은 헤모글로빈 덕분이고, 고기가 붉은 것은 미오글로빈이라는 별개의 단백질 덕분이다. 실제로 도축 직후 혈액은 모두 제거되며, 포장을 뜯은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액체는 대부분 혈액이 아닌 근육 내 수분과 미오글로빈으로 이루어진 ‘드립(drip)’이다.

미오글로빈은 근육 내에서 산소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역할을 한다. 미오글로빈의 원래 색은 어두운 적자색이지만, 공기에 노출되어 산소와 결합하면 선명한 선홍색의 옥시미오글로빈(Oxymyoglobin)이 된다. 진공 포장된 고기가 개봉 후 선홍빛으로 변하는 것이 바로 이 현상이다. 시간이 더 지나 산화가 진행되면 갈색의 메트미오글로빈(Metmyoglobin)이 형성되어 색이 탁해진다.

근섬유는 크게 적색 근섬유(지근, Type I)와 백색 근섬유(속근, Type II)로 구분된다. 적색 근섬유는 미오글로빈과 미토콘드리아가 풍부해 산소를 이용한 유산소 대사에 특화되어 있으며, 지구력이 좋고 쉽게 피로해지지 않는다. 반면 결합조직이 잘 발달해 있어 질긴 편이다. 백색 근섬유는 미오글로빈이 적어 색이 옅고, 무산소 대사로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지근보다 빨리 피로해진다. 결합조직이 적어 부드럽지만 지방도 적어 퍽퍽함이 느껴지기 쉽다.

소고기가 돼지고기나 닭고기보다 짙은 붉은색을 띠는 것은 미오글로빈 함량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같은 소라도 부위에 따라 색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운동을 많이 하는 다리 부위는 적색 근섬유 비율이 높아 색이 짙고,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적은 등심 쪽은 색이 더 연하다.


오래 움직인 근육은 왜 질긴가 — 결합조직과 콜라겐의 이야기

"국거리는 왜 질긴가?" 이 질문의 답은 소의 해부학에서 나온다. 양지, 사태, 앞다리 같은 부위는 소가 살아있는 동안 자기 체중을 지탱하고 쉼 없이 움직이는 근육이다. 큰 힘을 지속적으로 받는 근육일수록 근섬유 다발이 굵어지고, 이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결합조직, 즉 콜라겐이 두껍게 발달한다.

콜라겐은 두 개의 동일한 사슬(α1)과 화학적으로 약간 다른 추가 사슬(α2)이 삼중나선 구조를 이루는 단백질로, 근육 섬유들을 결합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동물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콜라겐 사슬 간의 교차 결합이 늘어나 강도가 높아지고 열에 의한 분해가 어려워진다. 이것이 늙은 소의 고기가 더 질긴 이유다.

콜라겐은 약 60~65℃에서 수축을 시작하며, 장시간 70℃ 이상에서 가열하면 점차 젤라틴으로 변환된다. 사태나 꼬리를 몇 시간씩 끓이면 고기가 부드럽게 흩어지고 국물이 진해지는 것은 바로 이 원리다. 반면 등심이나 안심은 결합조직이 적어 짧은 시간의 고온 가열만으로도 부드러운 스테이크가 된다. 소가 등짐을 지지 않는 한, 등 부위의 근육은 큰 힘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고기, 다른 식감 — 결의 방향과 썰기의 과학

고기를 어느 방향으로 자르느냐는 맛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고기의 결은 근섬유가 뻗어 있는 방향이다. 결과 나란하게(결 방향으로) 자르면 근섬유가 길게 살아있어 씹을 때 강한 저항감이 느껴진다. 반대로 결과 직각으로(결 반대 방향으로) 자르면 근섬유가 짧게 끊어져 훨씬 부드럽게 씹힌다.

미국 보스턴의 요리연구소 아메리카 테스트 키친(America's Test Kitchen)은 브룩필드(Brookfield) 기술팀의 지원을 받아 CT3 질감 분석기로 이 차이를 수치로 측정했다. 채끝살과 양지살을 수비드 조리법으로 54℃까지 가열한 뒤 실험한 결과, 채끝살과 양지살의 결 반대로 자를 때와 결대로 자를 때 저항력이 크게 달랐다. (예: 채끝살 약 45%, 양지살 최대 78% 차이, 단 실험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음)

이 원리는 정육점과 주방 모두에서 유용하다. 질긴 부위도 결을 직각으로 끊어 얇게 썰면 충분히 구이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문화에서 치마살(flank steak)을 고온에서 빠르게 구운 뒤 결 반대로 썰어내는 방식이나, 한국에서 업진살을 구이로 먹을 때 작게 잘라 식감을 조절하는 것이 모두 이 과학적 원리의 응용이다.


어디에서 왔느냐가 맛을 결정한다 — 부위별 식감의 지도

소 한 마리의 근육은 부위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면 식감도 다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어떤 부위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다.

등심과 채끝은 소의 등 쪽에 위치하며, 체중을 지탱하는 데 거의 관여하지 않는 근육이다. 결합조직이 적고 근섬유가 부드러워 짧은 조리만으로도 연한 식감을 낸다. 구이의 왕좌를 차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심은 척추 안쪽에 자리한 근육으로, 소의 일생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결합조직이 극히 적고 근섬유가 가늘어 소고기 부위 중 가장 부드럽다.

반면 사태는 앞 뒷다리 사골을 감싸는 부위로, 근육 다발이 조밀하게 모여 있어 쫄깃한 특성을 보이며, 장시간 가열하면 연해진다. 양지는 목 아래에서 가슴에 이르는 부위로 결합조직이 많아 기본적으로 질기지만, 장시간 가열하면 국물 맛이 탁월하다. 반면 같은 양지라도 차돌박이는 지방과 고기가 층을 이루는 구조 덕분에 얇게 썰어 고온에서 빠르게 구우면 고소하고 경쾌한 식감을 낼 수 있다.

고기는 근육이다. 그 근육이 살아있는 동안 얼마나 움직였는지, 어디에 위치했는지, 어떤 결합조직으로 이루어졌는지가 불판 위에서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마블링을 보기 전에 근육의 역할을 먼저 이해하는 것 — 그것이 고기를 진짜로 아는 첫걸음이다.



참고 서적《고기 한 점, 불과 시간을 품다》조동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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