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인류는 소를 길들였을까? — 소고기 한 점에 담긴 1만 년의 역사
소를 길들인 진짜 이유
인류가 소를 처음 길들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지금의 터키 남동부와 레반트, 자그로스 산맥에 걸쳐 있던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였다. 최근 67마리의 고대 근동 소 유전체를 분석한 연구(Verdugo et al., 2019, Science)에 따르면, 가축화는 특정 한 곳에서 일어난 단일 사건이 아니라 이 지역 여러 곳에서 서로 다른 오록스 계통을 대상으로 거의 동시에 진행된 복합적인 과정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당시 인류가 소를 가축으로 삼은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초기 단계에서는 통제 가능한 고기 자원을 확보하려는 목적이 분명 존재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동력, 우유, 제의적 상징성 등 소의 활용 방식이 확대되었고, 이것이 가축화의 의미를 더욱 복합적으로 만들었다.
소의 조상인 오록스(Bos primigenius)는 어깨 높이가 최대 185cm에 달하고 몸무게가 600~1,000kg에 이르던 거대한 야생 동물이었다. 카이사르도 『갈리아 전기』에서 오록스를 두고 "코끼리에 가까운 크기"라고 적을만큼, 이 짐승은 고대인들에게도 압도적인 존재였다. 이런 짐승을 산 채로 잡아 가두고 번식시키는 일은, 단순히 고기를 얻으려는 목적이라면 지나치게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오히려 가축화의 첫 번째 동기는 노동력과 종교적 제의였다. 소는 밭을 갈고, 무거운 짐을 날랐으며, 신에게 바치는 가장 값진 공물이었다. 고기는 그 부산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류는 깨달았다. 살아 있는 소는 걸어 다니는 단백질 창고이자, 가장 오래 저장할 수 있는 식량 자원이라는 사실을. 냉장 기술도, 염장법의 보편화도 없던 시대에 '살아 있는 채로 이동하는 소'는 그 자체로 완벽한 식량 공급 시스템이었다. 인류는 소를 길들임으로써 단지 동물 한 마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 식량 저장과 이동이라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혁명적인 도구를 손에 넣었다.
쟁기 하나가 세계를 바꿨다
신석기 혁명 이후 인류가 정착 농경으로 전환하면서, 소의 역할은 더욱 결정적으로 변했다. 쟁기를 끄는 소는 인간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의 넓이를 비약적으로 확장시켰다.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이 변화를 두고 "농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생활 방식의 근본적 재편이었다"고 도발적으로 말했지만, 그 '재편'의 중심에는 언제나 소가 있었다. 농경은 인간의 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광대한 문명으로 확장시킨 힘은 소의 어깨 위에 있었다.
농경사회에서 소의 가치는 복합적이었다. 밭을 갈 때는 노동력, 도살 후에는 고기와 가죽과 뼈, 살아 있는 동안에는 우유와 거름. 이처럼 소는 어느 단계에서도 버릴 것이 없는 '완전한 자원'으로 인식되었다. 고대 수메르의 쐐기문자 기록에는 소의 수를 세는 방식이 정교하게 기술되어 있으며, 이집트 벽화에는 소를 앞에 두고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소는 식량이기 이전에 문명의 척도였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소고기가 '일상의 음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소는 너무 소중했기 때문에 함부로 도살할 수 없었다.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사건이었다—제의, 축제, 승리의 기념, 귀빈의 접대. 소고기의 희소성은 그것을 더욱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었고, 이 오랜 결핍의 기억은 오늘날까지 소고기에 특별한 위상을 부여하는 문화적 유전자로 남아 있다.
유목민의 소는 '움직이는 은행'이었다
농경민이 소를 땅에 묶어두고 노동력으로 삼았다면, 유목민은 소를 데리고 대륙을 이동했다.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유목 문화에서 소는 재산 그 자체였다. 소의 머릿수가 곧 한 집안의 부(富)였고, 혼례에 지불하는 신부 값이었으며, 분쟁을 해결하는 배상의 단위였다. 지금도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티오피아의 무르시족이나 케냐의 마사이족—에서는 소의 수가 사회적 위계를 결정하는 핵심 지표로 작동한다.
유목 사회의 식육 문화는 농경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소를 함부로 잡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그 이유는 달랐다. 농경민에게 소는 '다음 해 농사를 위한 투자 자산'이었고, 유목민에게 소는 '이동하는 은행 계좌'였다. 그들은 소를 잡는 대신 소에서 나오는 피와 우유를 섞어 마시며 단백질을 보충했다. 소를 살려두는 것이 소를 잡아먹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이 유목 문화의 논리는 소고기 음식 문화에 중요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소고기를 먹는 문화가 발달한 곳은, 역설적으로 소를 잡는 것이 '금기'가 아닌 곳이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서 소고기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소가 노동력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즉 기계화 농업이 소의 노동력을 대체한 사회—가 도래한 이후였다.
길들인 것은 소만이 아니었다
약 1만 년의 세월을 거쳐 형성된 오늘날의 가축 소는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뉜다.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주로 기원한 타우린 소(Bos taurus)와 남아시아에서 가축화된 혹소 계통의 제부(Bos indicus)가 그것이다. 우리가 한우라고 부르는 소는 기본적으로 타우린 계통(Bos taurus coreanae)에 속하며, 한반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운반과 농경에 쓰이면서 독자적인 품종으로 정착했다.
그런데 이 길고 긴 가축화의 역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역설이 보인다. 인류는 소를 길들였다고 생각했지만, 소 역시 인류를 길들였다. 소를 키우기 위해 인류는 정착했고, 정착하면서 잉여 식량을 비축했으며, 잉여 식량은 계급을 낳고, 계급은 국가를 탄생시켰다. 작가 마이클 폴란은 『잡식동물의 딜레마』에서 이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가 농업을 '발명'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식물과 동물들이 인간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진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가축화는 일방적인 지배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진화(coevolution)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는 약 10억 마리의 소가 살고 있다. 1627년 야생에서 멸종한 오록스 대신, 인간의 보호 아래 번성한 가축 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인류가 소를 선택했을 때, 소도 인류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오랜 동반의 역사가, 오늘 우리가 불판 앞에 앉아 등심 한 점을 집어 들 때 느끼는 특별한 감각—단순한 배부름이 아닌, 무언가 근원적인 것에 닿는 듯한 그 감각—의 정체다.
소고기는 단지 음식이 아니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어온 방식 그 자체다.
참고 서적《숙성의 미학과 연육의 언어로 말하다》조동천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