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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by 체리봉봉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였다. 달리 말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국어책을 읽고 지은이의 마음을 헤아려 정답을 찾아내는 일이 꽤 흥미로웠다. 고전과 현대 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이 등장해 갖가지 상황에 처하는 것도 나의 호기심을 꾸준히 불러일으키기 좋았다. 게다가 초등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곧잘 상을 받았던 경험도 국어 과목에 대한 자신감과 긍정적인 정서에 한몫했다.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에 치여 다독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언어 영역에 등장하는 수많은 지문들이 독서의 연장 같았다. 시는 시대로 아름다웠고 비문학 지문은 그 성격대로 지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독서 수준을 올려주었다.



국어 시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제 중 하나는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맞히는 것이다. 시점을 달리하며 쓰인 소설에서 나는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한다. 이른바 역지사지.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주인공이라면 무엇을 느꼈을까. 타인에 대해 어떤 공감이나 연민도 느낄 수 없다면 내가 사는 곳은 지옥이 될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는 타인과 갈등과 고통만 낳을 뿐 단 한 걸음도 성장할 수 없으니까.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뛰어넘어 책 속에서 주인공과 만나는 일은 늘 설레고 새로웠다. 간접 경험이 주는 인생의 교훈을 목격하며 어떻게 생각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해 본다.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한 수 앞서 내다보는 지혜를 배우며 그렇게 어른의 길을 걷는다.



얼마 전 셔니네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셔니네 반은 내가 좋아하는 국어 수업을 했다. 5학년 2학기 4단원 <겪은 일을 써요>에서 글감을 떠올리고 글을 계획하며 표현하고 고쳐 쓰는 글쓰기 단원이었다. 특히 공개수업에서 함께 한 학습은 문장의 성분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호응 관계를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전자칠판에는 평소에도 내가 자주 쓰는 부사가 차례로 소개됐다. 그다지, 결코, 전혀, 여간 같은 부사어와 잘 어울리는 서술어를 써 보는 것이다. 단문의 그리 어렵지 않은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하는 퇴고 작업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어와 서술어, 부사와 서술어의 호응 관계를 점검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는지 낭독을 거듭하며 찾아보고 새로운 표현으로 고쳐 써보는 과정이 그러했다. 장난기 많은 어린이들은 참신하고 우스꽝스러운 문장으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수업 시간에 활기를 더해 주었다.



성인이 되어 보니 국어 시간에 배운 것들이 참 많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들른 초등학교 교실에도 여전히 내가 배우고 익히는 것들을 어린이들이 처음 배우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팔을 번쩍 들며 신나게 발표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국어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을 떠올려 본다. 어린이들도 분명 알게 될 것이다. 국어 수업을 통해 우리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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