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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필을 위하여

by 체리봉봉

언제부터 내 글씨가 악필이 되었을까. 삐뚤빼뚤 괴발개발의 화신으로 못난이 글씨체를 보유했지만 그렇다고 영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경지는 아니어서 꿋꿋하게 악필을 유지했다. 그러던 중 초교 5학년 때. 아직 겨울이 물러가지 않은 듯 새초롬한 봄바람이 불던 학기 초에 새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중년의 남자 선생님은 참 다정한 분이었다. 첫 수업 시간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연필을 잡아보라며 마흔 명의 아이들이 연필을 쥔 모습을 하나씩 살폈다. 나는 오른손으로 연필을 당당하게 쥐고 나 보란 듯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내 앞에 멈췄고 겹쳐졌던 엄지와 검지를 펴서 동그랗게 만들어 주셨다. 이제껏 연필을 잘못 잡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연필을 쥐고 있었으니 손에 힘이 들어가 금세 피로해지고 글씨도 점점 날아다니게 된다. 내가 아니면 알아볼 수 없는 마치 암호 같은 글씨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바르게 연필을 잡고 글씨를 써보려 했지만 이미 나쁜 습관이 손에 배어 마음만큼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의식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손에 익은 편한 방법으로 연필을 쥐고 글씨를 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무 살이 되었고 대학에 입학했다. 모든 시험이 손으로 글을 쓰는 서술형이었다. 암기한 답을 반듯하게 써야 하지만 과하게 힘이 들어간 오른손으로 긴 글을 쓰는 건 고문과도 같았다. 글자의 높낮이와 간격이 파도타기 하듯 제멋대로라 보는 사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단짝친구가 된 같은 학과 친구는 유달리 손글씨에 까다로웠다. 내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다고, 악필이라며 볼 때마다 핀잔을 주었다. 그럼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도 악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명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훗날 친구가 결혼을 해 남편의 글씨 연습을 독려하며 교정에 성공했다는 후일담을 전해 들었다. 시어머니를 앞에 두고 “우리 오빠 글씨 잘 쓰죠?”라며 자랑하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아들의 글씨가 예뻐졌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었다.

대체 얼마나 악필이었길래 천성이 되어버린 글씨체를 고친 것일까. 그리고 그 천성 같은 글씨체를 교정할 수 있었던 건 사랑 같은 절대적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도 이 훈훈한 소식에 자극을 받아 글씨체를 교정해 보겠노라 마음을 먹었다. 거의 해마다 내가 세우는 계획 중 탑 쓰리에 들어가는 목록이기도 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 어여쁜 글씨체를 찾아본다. 첫째로 반듯해서 가독성이 좋은 글씨체여야 한다. 두 번째는 심미적으로도 예쁜 글씨다. 물론 약간의 차별성을 위해 개성까지 갖춘다면 말할 것도 없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정하고 예쁜 손글씨를 찾아 집으로 데려왔다. 매일 한 페이지씩 또박또박, 천천히, 정성 들여 써 본다. 마치 여덟 살 아이가 된 것처럼.



모든 게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인데 이따금 밖에서 글씨를 써야 할 때가 왕왕 있다. 특히 내 이름 석자를 쓰고 사인해야 할 때다. 집주소 같은 개인 정보도 그렇다. 그럴 때마다 글씨체에 대한 나의 욕망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어여쁜 체리봉봉체가 완성될 때까지, 나는 계속 쓰리라. 반듯하게, 예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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