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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이 있다

by 체리봉봉

얼마 전 강남의 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12시간이 넘은 공복 상태에 지하철 대신 광역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정류장에서 빨간 버스 가니를 기다렸다. 평일 한낮이라 버스엔 승객도 적었고 맨 앞자리에 기사님 한 분이 더 타고 있었다는 것 말고는 새로울 게 없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리기 쉽도록 앞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즐겼다.



두 정거장을 지나 강남역에 이르자 갑자기 기사님 두 분이 서로 자리를 바꾸었다. “이쯤에서 해도 되겠지요?” 한가한 한낮 시간에 버스에서 교대를 하는 게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 안 될 일도 아니었다. 나는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이내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창 밖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버스가 드르륵거리며 요란하게 출발을 했다. 버스가 고장이라도 난 걸까 봐 걱정이 들었다.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달리는 게 아니라 자꾸 바닥을 긁듯이 버벅거리는 통에 자연히 운전석으로 눈이 쏠렸다. 좌석에 앉아 있던 기사님이 한쪽 손으로 창문 커튼을 잡아주는 스테인리스 봉을 잡고 있는 걸 보고 금세 알아차렸다. 지금 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사님이 초보 기사라는 것을.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고 출발을 할 때마다 자꾸 달달거리는 버스가 신경 쓰일 무렵 선배 기사는 초보 기사에게 호통을 쳤다. “자꾸 3단 기어를 넣으면 어떻게 해!” 나이가 조금 더 많아 보이는 선배 기사는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야단을 쳤고 나이 많은 신입 기사는 그 기세에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이전에 했던 거랑 기어가 반대여서…” 신입 기사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실수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를 말했다. 그의 억울함에도 선배 기사는 신입 기사의 얘기를 귓등으로 듣는 눈치였다. 버스는 신호등이 없는 한남대교를 지나 강변북로에 이르러 씽씽 달리기 시작했다. 동부간선도로까지 무사히 달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얼른 하차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버스는 천천히 속도를 줄여 정류장을 스쳐 지나갔고 또 한 번 선배 기사는 호통을 쳤다. “정류장을 지나쳤잖아!” 머리가 희끗한 나이에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야단맞는 기분이 어떨지 절로 짐작이 갔다. 하차할 때 힘내라는 말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응원의 말조차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초보 기사님은 나보다 앞서 내리는 첫 번째 하차 승객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꾸벅 숙였고 나는 차마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얼른 카드를 태그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었지만 기사님이 그 위치에 버스를 세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버스 뒤를 따라 또 다른 버스들이 연이어 정차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뒤이어 도착하는 버스를 생각해 최대한 앞쪽으로 정차를 한 것이 정류장을 조금 지나치게 된 이유일 것이리라.



갓 운전면허를 따고 도로를 주행했을 때가 생각났다. 차선 한가운데를 지켜서 주행하는 게 어려워 한쪽으로 자꾸 차가 쏠리고, 최대 속도 30킬로의 마법에 빠져 그 이상 달리지 못하고 차선 변경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초보 운전자 시절이. 뒤에서 자꾸만 빵빵 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벌렁거려서 결국 핸들을 손에서 놓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초보 운전자에 대한 그 어떤 공감도 하지 못했을 테다. 자꾸 버벅거리는 초보 기사님을 보며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안타까운 마음에 응원을 하게 되는 것도 역지사지가 가능한 같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어느 분야에서나 초보였던 시절이 있다. 우리에겐 그들이 실수를 딛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빨간 버스 가니가 붕붕붕 씽씽씽 언제나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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