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객원 멤버와 함께 한 나 혼자 산악회

by 체리봉봉

지난 주말에는 나 혼자 산악회의 유일무이한 객원 멤버와 함께 우리 집 뒷산을 올랐다. 지난달 건강검진의 결과 운동 처방을 받았던 남편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자발적으로 등산을 하겠노라 선언했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만 죽죽 내리더니 온 우주가 남편을 응원하기라도 하는 듯 등산하기로 한 주말엔 날이 개어 편안한 마음으로 산에 갈 수 있었다.



삶은 계란 세 개와 물 한 병 그리고 사과대추를 간식으로 챙겼다. 이따금 구름이 지나는 높고 파란 하늘, 선선한 바람, 단풍이 들기 직전의 초록 이파리로 숲 속의 청량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줄곧 혼자 산을 오르내리며 고독감을 즐기기도 했으나 유독 주말에는 커플끼리 산에 오는 사람들이 많아 내심 부럽기도 했던 터였다. 산에서 건강도 챙기고 오붓하게 부부만의 다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줄곧 셔니도 함께 했던 등산에 부부 둘만 가게 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녀에 관한 이야기 말고도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마음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연애 때 마냥 소소하지만 알콩달콩한 대화를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집에서 나와 산의 초입에 이르기까지 울퉁불퉁한 언덕을 오르며 말수가 점점 사라졌다. 남편은 그리 덥지도 않은 날씨인데 얼굴엔 이미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나마 오르막 계단에서도 남편의 보폭은 느려지지 않았지만 널찍한 의자가 보일 때마다 앉아서 쉬는 통에 나의 꾸준한 걷기 속도를 흩트렸다. 나 혼자 걸을 때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중간에 쉬지 않는다. 한번 의자에 앉으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동력이 줄어들며 빠르게 걷는 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설령 속도를 늦추더라도 천천히 계속 걷는 게 나만의 스타일인데 객원 멤버의 출현으로 배려하며 걸어야 했다.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고 산의 중턱쯤 되는 정자에 다다르자 간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셔니 또래로 보이는 초등학생 아이가 엄마와 단둘이 산에 와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고 한 뼘 떨어진 자리엔 어르신이 앉아 쉬고 있었다. 남편은 얼른 정자 끄트머리에 앉아 땀을 닦았다. 출발할 때만 해도 남편이 509미터의 산 정상까지 오르자고 할까 봐 조금 긴장했는데 남편은 이제 하산하자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조금만 더 올라가자고 했다. 내가 정상이라 생각하며 가는 곳은 정상에서 1킬로 정도 남겨 놓은 지점이다. 커다란 바위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쌓여 제법 정상과 유사한 모양새를 자랑하는 데다 서울 시내와 남양주시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까지 갖춘 곳이다. 둘레길처럼 평탄하게 걷다가 긴 오르막 계단을 세 번 정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간식도 그곳에서 먹자며 남편을 일으켜 세웠고 나는 군말 없이 걷는 남편이 고마웠다. 이쯤 올라오면 바람도 공기도 확연히 달라져 상쾌한 산 공기를 제대로 맡을 수 있다. 남편과 꽁냥꽁냥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오순도순 걸을 생각이었는데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정도의 정말 필요한 말만 하고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일렬로 앞만 보며 걷는 우리는 누가 봐도 오래된 부부의 모습이었다. 목적지까지 이르러 정상인 척 사진을 찍어달라는 남편의 요청에 나는 사진사를 자처했다. 비록 땀범벅이 된 피사체는 비루했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날씨 덕에 결과물은 꽤 흡족하게 나왔다. 우리는 둘이 함께 찍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홀로 산에 온 사람처럼 서로의 모습을 사이좋게 찍어주었다.



널찍한 바위에 앉아 계란도 까먹고 아삭한 사과대추도 먹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 바깥으로 서늘한 바람이 자꾸 불어 으스스 몸이 떨렸다. 풍경을 즐길 새도 없이 후다닥 간식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산을 오를 때는 조금이라도 쉬어 가려던 남편은 발에 모터라도 달린 것처럼 냅다 뛰다시피 하산했다. 아무래도 내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할까 봐 그런 것일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단 둘이 오붓한 산행을 꿈꾸던 나의 계획과는 다르게 오로지 유산소 운동을 위한 등산이 되었다. 낮은 산을 사랑하는 나 혼자 산악회는 객원 멤버와 함께여도 고유한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게 다 객원 멤버 덕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간을 복원한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