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나무와 새

삶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위한 동화

상처 나무와 새

-1-

멀리서 시끌벅적하다.

또 진수가 누이들과 소리 높여 싸우는 소리가 난다. 곧장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나는 소리도 들린다.

이럴 때면 숲에 있는 어린나무는 잔뜩 긴장하고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나 진수가 또 씩씩대며 걸어왔다.

진수는 늘 화가 나 있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마룻바닥에 시무룩이 앉아 있다가 아무 이유 없이 근처 숲에 있는 어린나무에게 발길질을 해대며 온갖 화풀이를 했다. 어떤 날엔 사람들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다 갑자기 진수가 뛰어나와 모종삽으로 나무를 마구 찌르며 울기도 하였다.

나무는 진수가 왜 화를 내며 자신을 괴롭히는지 알 수 없었다.

언젠가 진수가 고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전동 드릴 사용법을 배웠다며 집에 있는 드릴로 나무의 앞뒤 가슴을 뚫었는데, 그게 재미있었는지, 며칠 동안 드릴로 나무의 가슴에 구멍을 점점 넓혀냈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다들 건강하고 튼튼한 것 같은데, 어릴 적부터 상처받았던 나무의 가슴에는 어느새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구멍이 나 버렸다. 더구나 진수는 구멍을 낸 것도 모자라 종종 그곳에 온갖 쓰레기를 구겨 넣고 히죽 웃곤 했다.

나무는 진수에게 상처받을 때마다 생각했다.

‘내가 왜 미움받아야 하지? 내가 못생겨서 그런가? 내가 뭘 잘못했지? 너무 슬퍼. 애초에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게 아니었어. 그런데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잖아? 너무 억울하고 아파. 다시는 진수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진수는 어른이 되어 떠났지만, 나무는 진수가 다시 돌아오면 어쩌지? 인제 그만 미움받고 싶은데, 상처는 언제쯤 아물지 계속 걱정하고 우울했다.

나무를 더 힘들게 했던 건, 곁에 있는 다른 나무들도 가슴에 구멍 난 나무를 놀려댔다는 것이었다.

“넌 우리와 같은 종류의 떡갈나무 같은데 모습이 왜 그 모양이냐? 가지도 엉성하게 뻗어 있고 이파리는 우리들보다 작고. 그 가슴에 난 구멍은 또 뭐냐? 넌 우리와 어울리기엔 너무 창피해. 네가 다른 곳으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어. 넌 이곳에 어울리지 않아.”

다행히 진수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무는 그렇게 몇 년이 지나도록 다른 나무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2-

나무는 늘 침묵했다.

아니, 대화를 나눌 친구가 없었다.

이렇게 볼품없고 상처 많은 나무에게 누가 먼저 손을 내밀겠는가?

튼튼하고 잘생긴 나무들은 저희끼리 이야기하며 온갖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 중에서 내 키가 제일 크지?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보다 해와 달도 제일 먼저 보고 인사한다고. 하하하. 또 노을 지는 풍경은 얼마나 멋있는지. 노을 질 때 그림자로 보는 내 키가 세 배는 더 커진다니까? 하하하.”

“이봐, 그래도 난 너보다 키는 조금 작지만, 가지와 이파리가 이렇게 무성한걸? 그래서 난 노래도 잘해. 춤도 멋있게 출 수 있지. 보여줄까?”

바람이 불어와 나무의 풍성한 잎을 마구 흔들어 주었다.

그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시원하게 서로 사하악 거리는 소리가 제법 신비롭고 한쪽으로 가지들을 기울였다 다시 반대쪽으로 가지를 움직이며 수많은 이파리를 일렁이는 것이, 지나가는 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마치 파도의 움직임이 저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든 나무가 감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들도 해보겠다며 서로 이파리를 부딪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가슴에 구멍이 난 나무도 용기를 내어 함께 어울려 보려고 바람에 따라, 가지를 흔들고 이파리를 힘껏 흔들었다.

하지만 곧 쓰레기가 잔뜩 박힌 구멍 난 가슴 쪽이 뻐근하게 아파지기 시작하다,

“으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다른 나무들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으며 구멍 난 나무의 볼품없는 모습을 놀려댔다.

그리고 나무는 곧 풀이 죽어 하늘로 뻗은 가지를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3-


몇 해가 지났을까?

나무들의 삶엔 변화가 없었다.

그저 계절에 따라 벌거벗은 가지를 드러내거나 다시 푸른 잎이 갈색으로. 다시 푸른 잎을 피워 더 아름다워지길 반복할 뿐이었다.

함께 구멍 난 나무도 세월에 따라 점점 몸에 이상한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래전 진수가 상처를 줬던 곳곳이 점점 아물며 두꺼운 옹이라는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나무에는 없는 이상하고 뭉뚝한 못생긴 무늬가 생기니 구멍 난 나무는 자신의 처지가 매우 서글펐다.

‘가슴에 난 구멍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이젠 옹이까지 생기면서 난 나무로써 아무런 매력이 없어. 빨리 시들어 사라졌으면 좋겠어. 도대체 왜 하필 나여야만 했지? 저렇게 다른 나무들도 많은데 왜 나만….’

구멍 난 나무는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진수가 무척 원망스러웠다.

잠을 자다가도 어릴 적 몸을 파고들던 드릴의 고통과 발로 걷어차일 때, 삽으로 몸을 찍힐 때가 꿈으로 나타나 온전히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다른 나무들이 건강히 자라날수록 구멍 난 나무는 조금씩 피폐해졌다. 여기에 마음마저,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차 모든 것이 화가 나고 우울했다. 어떤 날은 자신의 몸을 타고 다니는 다람쥐와 청설모들에게도 화를 냈다.

어쩌다 둥지를 트려는 산비둘기들에게 화를 내며 쫓아낸 적도 여러 번이다.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 둬! 모두 나한테서 사라지란 말이야!”

그렇게 구멍 난 나무는 오랜 시간 동안 철저히 혼자가 되어갔다.


-4-


그해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춥고 바람도 많이 불어 숲에 있는 모든 것이 얼어붙을 만큼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온몸으로 겨울을 견디고 봄이 찾아온 5월 무렵 구멍 난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듬성듬성 일뿐 이파리를 풍성히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겨울 동안 그냥 이대로 얼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않길 바랐고 후회하곤 했다.

더 이상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의 위로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저 바라는 건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이대로 시들어 가는 것뿐이었다.

다른 나무들엔 어느새 새들이 둥지도 여럿 틀고 다람쥐 가족도 많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구멍 난 나무는 그런 나무들이 부럽기는커녕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고 혼자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자존심 상하고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자주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꿈에 나타나 잠을 설치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은 온종일 풀이 죽은 채 땅만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히며 마냥 서러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

6월의 어느 오후.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구멍 난 나무는 계속되는 악몽에 밤을 설쳐 낮부터 꾸벅 졸고 있었다.

그런데 먹먹했던 가슴 가운데가 점점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잠에서 깨어 보니 웬 새 한 마리가 구멍에 있는 쓰레기들을 쪼아 내고 있었다.

왜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답답했던 가슴이 점점 시원해지는 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 누구니? 왜 내 가슴에 있는 구멍을 다시 파내는 거야?”

“난 옆에 있는 산에서 왔어. 많은 나무에 이미 다른 새들이 둥지를 틀어서 네 몸에 둥지를 만들려고 너를 쭉 둘러봤는데, 마땅히 집을 만들만한 곳이 없었어. 너무 상처가 많아 보이길래 너의 멀쩡한 몸에 내 둥지를 틀겠다고 구멍을 내는 건 미안하고 염치없더라. 그래서 옹이 진 곳에 둥지를 만들려고 부리를 계속 쪼았는데 너무 단단해서 내 부리가 더 아팠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다시 빙 둘러봤더니 아주 쉽게 둥지를 만들 수 있는 구멍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지금 네 구멍에 있는 쓰레기들을 치우는 중이야.”

구멍 난 나무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부터 냈다.

“나한테서 떨어져. 난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 좀 제발 내버려 둬. 네가 구멍을 뚫어버리면 난 가슴이 매일 시릴 거야. 겨울이면 더 춥겠지. 그리고 내 꼴은 더 우스워 보여서 다른 나무들이 놀릴 게 뻔해. 그러니 제발 그냥 다른 곳으로 가!”

무안함에 얼굴이 발개진 새가 말했다.

“미안해. 그런데 말이야…. 나 사실 부리가 조금 부러졌거든. 날개랑 다리도 불편해서 더 이상 어디 멀리 갈 수가 없어. 나 너하고 살면 안 될까? 귀찮게 안 할게. 대신 가슴 시리지 않도록 내가 네 구멍 난 가슴에 앉아서 매일 내 온기를 채워줄게. 그래도 될까?”

구멍 난 나무는 새가 자신을 괴롭히려고 온 줄 알고 화가 났지만,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한 번도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준 적도 없고, 부탁해 본 적도 없었다.

가뜩이나 아픈 내 상처 속에 들어와 살겠다니 가슴이 더 아프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부리가 닳고 절뚝거리며 날갯짓하는 새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했다.


-6-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구멍 난 가슴에 살고 있는 새에 대해 나무는 궁금해졌다.

왜 살던 곳에서 떠났는지. 어쩌다 여기로 오게 된 건지.

한참 망설이다,

“그런데 넌 어쩌다 날개와 다리를 다친 거야? 부리는 또 왜 그렇고?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거니?”

새는 구멍 안에 앉아 뜸 들이다 말했다.

“모든 새는 알에서 깨어나고 시간이 지나면 비행 연습을 해. 내 동생들도 친구들도 모두 똑같이. 그게 자연스러운 거래. 그러던 어느 날, 다 같이 비행 연습을 하기로 했어. 그런데 나는 왠지 무섭고 날개에 힘이 잘 안 붙는 느낌이 드는 거야. 그래서 다음에 하고 싶다고 아빠한테 말씀드렸는데 동생들도 다 하는 걸 왜 너만 유난스럽게 구냐고 아빠가 화를 내셔서 그게 더 무섭더라고. 엄마 아빠가 실망하실지 걱정했고 주변으로부터 무시당할지 걱정도 됐고. 그래서 억지로 나무에서 뛰어내렸어. 그렇게 죽기 살기로 날개를 퍼덕였는데 나만 바닥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날개랑 다리를 다쳤어.”

구멍 난 나무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뒤로 몇 번 더 도전했는데 처음 다친 날개와 다리 때문인지 오랫동안 비행하기는 힘들더라. 괜찮아질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벌써 3년이나 지났는걸? 하루는 내가 나한테 너무 화가 나서 큰 바위에다가 부리를 쾅 쪼았어. 그랬더니 내 부리 끝이 부서지더라. 그 이후로 어떤 딱따구리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 혼자 둥지 만들기도 어려워졌고. 고민 많이 했는데 외톨이 신세가 되어 다른 새들에게 놀림당하며 미움받는 게 싫어서 이곳으로 오게 됐어.”

구멍 난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프고 초라한 존재는 자신밖에 없는 줄 알고 살았다.

위로를 받아 본 적도, 해본 적도 없기에 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너 노래 잘하더라? 다른 나무들이 부르는 노래들은 많이 들어 봤지만, 너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나무는 처음 봐.”

구멍 난 나무는 의아해했다.

“내가 노래를 잘한다고?”

“응. 네가 노래하면 다른 나무들이랑 동물들 모두 조용히 듣고 있잖아. 모르고 있었어?”

구멍 난 나무는 그저 울적할 때나 쓸쓸할 때 딱따구리가 앉아 있는 가슴에 난 구멍으로 바람을 들여 마시고, 마음에 떠다니는 멜로디를 흥얼거릴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무의 가슴에 박힌 쓰레기가 치워지고 딱따구리와 함께 있는 뒤로 자신을 향한 다른 잘생긴 나무들의 다정한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떤 나무는 구멍 난 나무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쳐다보면 이내 입을 닫곤 했는데 그저 또 자신을 놀리려고 하는 줄 알았다.

“다들 네 노래가 듣고 싶어서 그래. 노래 듣고 싶다고 부탁하려 해도 넌 항상 얼굴이 일그러져 있잖아. 다른 나무들은 바람에 따라 이파리를 부딪치며 수우수 노래하는 게 전부이지만 넌 꼭 사람이 노래하는 것 같아. 어떤 땐 피리 소리 같기도 하고. 나무가 이렇게 맑고 티 없는 소리를 내는 건 나도 처음 봐.”

구멍 난 나무의 노래가 좋다고 한 새도, 다른 나무들과 동물의 관심을 받은 적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렇게 처음 관심을 받고 첫 설렘을 느낀 시간이 불쑥 찾아와 구멍 난 나무의 삶은 전과 다르게 흘렀다.


-7-

어느새 구멍 난 나무는 나무와 동물들 사이에서 유명한 노래하는 나무. 바로‘가수 나무’가 되어있었다.

시원하게 바람이 부는 날이나 달이 동그랗고 맑게 뜬 날이면 숲의 나무들과 동물들은 가수 나무 앞에 모이거나 귀를 기울여 오랜 시간 노래를 감상하곤 했다.

어떤 때는 다람쥐가 도토리 알을 가져와 가수 나무 구멍에서 치면‘통~’하는 맑은 소리가 울리기까지 해서, 나무는 노래하고 다람쥐는 박자를 맞추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음악이 연주되곤 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예전의 상처를 통해 가수 나무는 노래했고 많은 식물과 동물들은 아름다운 꿈을 꾸며 잠들었다. 가수 나무는 이제 상처 속 구멍 난 곳에서 좋은 노래를 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나무가 되었다.

그동안 일그러졌던 얼굴은 활짝 웃거나 편안히 미소 짓는 얼굴로 바뀌어 있었고, 숲의 모든 동식물은 가수 나무를 좋은 친구로 여겼다. 그렇게 행복한 몇 해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가수 나무 구멍에 있던 딱따구리가 말했다.

“있잖아. 나 이제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가수 나무는 딱따구리의 갑작스러운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곧 슬퍼졌다.

“왜 가려고? 네가 있어서 난 참 좋은데. 너 부리도 안 좋아서 다른 둥지 만들 곳도 없잖아. 그냥 나와 함께 있으면 안 되겠니?”

딱따구리는 잠시 생각했다.

“가수 나무야. 이제 아프지 않지? 다른 나무들처럼 가지와 잎도 풍성해졌으니 이젠 불행할 필요도 없어. 가수 나무야.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네 구멍이 점점 메워져 가는 거 아니?”

그런 줄도 모르고, 가수 나무는 처음 맞은 행복한 감정으로 숲에서의 삶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네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증거야. 슬퍼할 필요 없어. 오히려 내가 네 가슴에 계속 산다면 넌 구멍 난 그대로 살아야 할 거야.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난 네가 다른 나무들처럼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가수 나무는 딱따구리가 오고 몇 해를 모르며 지냈다.

구멍 난 가슴의 상처가 아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생각했다.

‘예전엔, 이 상처 때문에 너무 괴로웠어. 죽고 싶었지. 늘 무기력했지. 그런데 난 지금 참 좋아. 상처 따위 있으면 어때? 지금의 내게 어떤 나쁜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지금을 살고 싶어. 하루하루 웃으며. 못난 나였지만 지금 웃을 수 있는 건 전부 딱따구리 덕분이야.’

“딱따구리야. 난 내 상처가 아물고 있는 줄 몰랐어. 진작 행복했거든. 언제부터인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제 괜찮아. 가슴에 난 구멍 따윈 중요하지 않아. 난 네가 내 가슴에 살면서 계속 이렇게 지냈으면 좋겠어. 내 상처가 아물며 구멍이 좁아지면 딱 네가 살기에 괜찮을 만큼 파내도 괜찮아. 넌 부리가 약하니까 나의 속살을 조금씩 파내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난 그게 상처가 아니라 기쁨이야. 네가 이대로 떠나버린다면 내 가슴의 구멍이 아물고 메워져도 가슴은 계속 시릴 거야. 네가 없으니까. 네 온기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그냥 내 상처 속에서 네가 나를 다듬어 주고 계속 노래할 수 있게 해 주면 안 될까?”

가수 나무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목이 멘 듯 말을 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망설여지지만, 우리 가족 하자. 꼭 나를 닮고 나와 같은 뿌리여야 가족인가? 서로 함께하며 같이 웃고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별도 보고 비가 오면 같이 비도 맞고 그러다 잠도 들고 하면 그게 가족이지 뭐. 우리 가족 하자.”

딱따구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가족들은 내가 다른 새들처럼 잘 날고 겁이 없길 바랐다. 그래서 부모님과 동생들,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무서워도 나무에서 뛰어내리다 날개와 다리를 다쳤는데 가수 나무는 나를 품고 싶다고 한다. 항상 외톨이였던 내게 가족이 되자고 했어. 내가 살 수 있을 만큼 구멍을 내도 괜찮대. 그렇게 가족이 되자고 한다.’

딱따구리는 고마웠지만 가수 나무에게 말했다.

“그래도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내가 귀찮아지고 내가 네 속살을 너무 세게 파서 우리 다툴지도 몰라. 상상도 못 한 사소한 어떤 것으로도. 그러면 난 너무 미안하고 무안해서 정말 멀리 떠나버릴지도 몰라.”

가수 나무는 그런 딱따구리를 보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게 가족이래. 우리가 다른 모습에 다른 꿈을 꾸고 가끔 다툴지도 모르지만, 서로 사랑하고 위해주며 함께 있고 싶은 마음만 변하지 않으면 그게 가족이래.

사실 네가 내 구멍 난 가슴에 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먹이를 구하러 나갔을 때, 넓은 바다를 건너고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여행하는 할아버지 바람이 말씀해 주신 거야. 그 할아버지는 세상 어디든 안 다녀본 곳이 없대. 그래서 숲에서는 그 할아버지 바람을 아는 것도 많으셔서 ‘지혜 바람 할아버지’라고 불러. 사실 나 그때 우울하기도 하고 계속 너와 함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 하지만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갖고 산대. 그 상처 때문에 누군가는 좌절하고 누구는 다시 일어서며 아픔도 안고 씩씩하게 살아간대. 중요한 건 오늘을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라셨어.”

말을 마치고 딱따구리의 온기를 가만히 느끼던 가수 나무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마음속에 떠올랐던 멜로디가 아니었다. 가수 나무도 처음 겪어보는 벅찬 감정이었다.

그 노래는 오직 딱따구리와 가수 나무를 위한 노래였다.

가수 나무의 말에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진 딱따구리는 나무의 몸에 얼굴을 비비며 함께 노래했다.

숲 전체에 은은한 노래가 흐르고 어느새 숲의 모든 나무는 서로의 잎을 쓰다듬으며 동물들도 행복한 꿈에 젖어 잠이 들었다.

내일이 되어도 숲은 그대로일 것이다.

다만 어느 볼품없던 가슴에 구멍 난 나무와 몸이 조금 불편한 딱따구리는 가족이 되어, 날이 좋을 때나 모진 계절의 심술 겨운 시간도 함께 견뎌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자주, 사람의 마을에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고요한 숲의 아름다운 노래가 비밀처럼 울려 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