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분석
스니커즈 테마 뉴스레터 슈톡(Shoetalk)에 기고한 글입니다.
"러닝화 주가 왜 빠지나 봤더니… 아저씨들이 신기 시작했다." 한 애널리스트의 포스팅이 영포티 이슈와 맞물려 아주 어그로를 제대로 끌었다.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았지만 결국 이야기하는 건 러닝화를 살 사람은 다 샀다는 것.
그럼 이 브랜드들은 몰락만을 앞두고 있는 것일까?
거의 모든 유통 산업에서 트렌드를 만드는 계층과 돈을 만드는 계층은 다르다. 스니커즈 시장 역시 예외일 수 없다.
2030 세대는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하고 트렌드를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 구매력이 있는 건 4050 세대다. 가처분소득이 높고, 건강에 투자할 여력이 있으며, 가격에 덜 민감하다.
온과 호카가 초기에 2030 러너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성장했다면, 이제는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더 넓은 소비층으로 확장하고 있는 단계다. 강남역 출근길에 온을 신은 40대 직장인, 주말 등산로에서 살로몬을 신은 50대를 보는 건 이제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주가에는 부정적 신호로 읽힌다. "얼리어답터들이 떠났다"는 식으로.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장이 확대된 거다.
사실 호카는 원래 마라토너들을 위한 기능성 신발로 시작했다. 두툼한 밑창의 대디슈즈 스타일은 호카의 정체성이었다. 그게 어느 순간 2030에게 트렌디한 아이템이 됐을 뿐이다. 러닝화는 1970년대 조깅 붐부터 중년 남성들의 주말 운동화였다. 갑자기 젊은 층이 발견하고 트렌드가 된 것뿐이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러닝화 시장은 2021년 150억 달러에서 2030년 190억 달러로 연평균 4%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4%는 결코 높은 수치가 아니다. 국내 데이터를 봐도 마라톤 대회 참가자 수는 여전히 늘고 있고, 러닝 크루 가입 대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그 증가율은 확실히 둔화됐다.
하지만 이건 시장이 죽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큰 시장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뜻이다.
요가를 떠올려보자. 2010년대 초중반 한국에 요가 붐이 일었을 때, 요가복 브랜드 룰루레몬의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하지만 지금 요가복 시장이 그때만큼의 성장률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요가하는 사람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요가는 특별한 '트렌드'에서 일상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러닝도 비슷한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러닝화를 한 켤레씩 사던 사람들이 이제 2-3켤레를 보유하고 있다. 신규 러너는 여전히 유입되지만, 기존 러너들이 추가로 구매하는 속도는 둔화됐다. 시장이 성숙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러닝을 주력으로 하는 브랜드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이키의 역사가 힌트를 준다. 나이키는 러닝화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농구, 축구, 라이프스타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며 성장했다. 호카나 온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호카는 이미 하이킹, 트레일러닝으로 확장했고, 온은 테니스화를 출시했다.
하지만 카테고리 확장만이 답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리테일 전략도 중요해진다. 호카의 성장률 둔화 원인 중 하나로 DTC(Direct To Consumer) 판매 감소가 지목됐다. 폭발적 성장기에는 자체 온라인몰과 직영 매장을 통한 직접 판매가 효과적이었지만, 시장이 성숙하면서 더 많은 접점이 필요해졌다. 백화점, 멀티 브랜드 숍, 스포츠 전문점. 더 많은 곳에서 고객을 만나야 한다.
호카와 온의 주가가 조정을 받는 건 그들이 더 이상 트렌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장이 그들에게 '이제 진짜 브랜드의 가치를 증명하라'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리어답터들의 호기심으로 성장하는 단계는 끝났다. 이제는 일반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선택받아야 하는 단계다.
시장에서 하이프를 만드는 것에 비해 신뢰를 쌓는 건 매우 지루하고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그게 브랜드가 오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러닝화 시장이 성숙한다는 건 결국 이런 의미다. 더 이상 공짜 점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