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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02. 2018

따스했던 겨울의 후지산 시즈오카 여행

어디에서든 후지산부터 찾게 만든다.


인천공항에서 2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나니 어느새 시즈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밥을 먹고 출발했는데 가방을 메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니 금세 배가 고프다. 인기 많은 시즈오카행 버스를 뒤로한 채 한적한 시마다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즈오카 공항은 이름과 달리 시즈오카 역과 거리가 좀 있다. 오히려 시마다 역이나 후지에다 역이 조금 더 가깝다. 뒷문으로 버스를 타고, 버스 기사 왼쪽 상단의 모니터에 정류소별로 금액이 표시되니 '일본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 여행이 실감 나는 순간이 달랐다. 중국 칭다오로 떠났을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입국심사를 받을 때 삼엄한 경비가 둘러싸인 칭다오 공항의 풍경을 보고 '드디어 중국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는 조금 더 빨랐다. 피부색이 달라서 그런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지금 러시아에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시즈오카현 시마다시 라면전문집 '麺屋よかたい'

공항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하니 시마다역에 도착했다. 허기부터 채우기로 했다. 구글 지도를 켜고 근처에 맛집을 찾아 나섰다. 평점 4.0의 라면집이 레이더망에 걸렸다. 매장의 입구 사진을 첨부한 리뷰 덕분에 어렵지 않게 가게를 찾았다.


오사카와 후쿠오카 여행에서 밥을 먹을 때는 일본어를 몰라도 주문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갔던 곳의 대부분은 한국인이 있었고, 메뉴판은 영어는 기본이고 심지어 한국어 메뉴판까지 겸비한 식당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시즈오카 여행의 첫 끼니를 먹기 위해 들어갔던 시마다의 라면집에서는 당황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영어 메뉴판도 그렇다고 음식 사진이 있는 메뉴판도 없었다.



역시 다시 한번 구글 리뷰의 힘을 빌렸다. 리뷰에 있는 가장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보고 주문했다. 보통 차슈를 추가하면 1,000엔에 육박하는 일본 라멘과 달리 이 집은 달랑 라멘과 고기덮밥을 더해서 950엔이었다. 무척 저렴했다. 캐리어와 가방을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천천히 식사를 음미했다. 일본 라면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지난 요나고 여행에서 '돗토리 마쓰에 패스'는 JR 열차만 탑승이 가능했다. 하지만 '후지산 시즈오카 투어리스트 미니 패스'는 버스까지 확대되어 3박 4일의 여행 일정 중 마지막 날을 제외한 3일 내내 JR 열차와 버스를 열심히 타고 다녔다. 후지산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후지큐하이랜드역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찍은 후지 급행 버스 사진이다.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요금이 벌써 '1300엔'에 육박한다. 이번 여행에서 패스의 존재는 유독 고마웠다. 누마즈역에 위치한 호텔에서 짐을 풀고 후지산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 고덴바선을 타고 고덴바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덴바에서 버스를 탔다. 버스는 끝없이 펼쳐지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누마즈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이 넘자 후지큐하이랜드역에 도착했다.


누마즈역 근처 숙소에서 바라본 후지산의 모습

숙소에서도 후지산은 잘 보였다. 그래서 가는 길 내내 '산을 오르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가까이 가서 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산 세계문화유산 센터에 도착해서 후지산을 쳐다봤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쏙 들어갔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미호로 마츠바라, 니혼다이라 호텔에서 바라본 후지산의 풍경


3박 4일의 시즈오카 여행 중 어디에서나 후지산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눈에 띄지 않으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보이면 안심하게 된다. 어딜 가나 큰 산이 눈에 띈 덕분에 길을 찾을 때 방향을 좀 더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니혼다이라 호텔에서 투숙했던 날에는 비가 예정되어 있어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후지산은 가려지더라도, 시미즈 항구와 시즈오카 시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니혼다이라 호텔에서 맞이한 여행 마지막 날 아침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후지산은 모습을 드러냈다. 몇 시간 뒤에는 옆에 둘러싸인 구름들이 후지산을 가렸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이 풍경을 본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던지.

 


니혼다이라 호텔의 라운지는 후지산을 감상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이 곳에서 신년 해돋이를 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일정을 검색해보니 벌써 매진이었다. 나와 같은 일정으로 호텔에 묵으면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일본 노부부들이 많았다. 거동이 불편해서 호텔 직원들이 손수 음식을 가져다주는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후지산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참고로 이 호텔의 조식은 3,100엔이다.



후지노미야에서 후지산혼구센겐타이샤와 시즈오카현 후지산세계유산센터를 구경하고 나서는 길에 바라본 일본 유치원생들이 같은 색상의 모자를 쓰고 함께 줄을 잡으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선생님이 손을 들자 연거푸 손을 들고 건너는 아이들이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한적한 일본 소도시 후지노미야의 풍경


사진으로 봤을 때 스루가 만과 후지산의 조합이 멋졌던 미호노 마츠바라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해변가는 다 쓰러져가는 나무들과 온갖 쓰레기들이 방치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관리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아쉬움을 뒤로한채 허기를 채우기 위해 주변의 음식점을 찾다가 소바 전문점으로 향했다. 시마다역에 위치한 라면집과 마찬가지로 이 집 역시 음식 그림이 없는 일본 메뉴판 뿐이었다. 카레우동과 소바, 벚꽃새우튀김을 시켰는데 셋다 맛있었다.

   


시즈오카 여행의 대부분은 JR 열차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하는지라 제때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저녁은 항상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었는데, 이번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건 미시마 역에 위치한 스시 세트였다. 일본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스시집은 일본 메뉴판 조차 없었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일본어로 메뉴를 설명하는 듯 보였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구글 리뷰와 바디 랭귀지를 통해 겨우겨우 스시 세트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전 맥주부터 마셨다.



 문어초밥부터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으니 사르륵 녹는다. 세트를 내어준 할아버지는 요리를 하면서 맛있는지 계속 우리의 표정을 살폈다. 스시를 먹고 있을 때 할머니께서 미소된장국을 내어오셨는데 여태까지 먹어본 된장국에 제일 맛있었다. 다 먹고 조금 아쉬워서 참치만 2점씩 추가 주문해서 먹었다. 가게에는 우리밖에 손님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참치를 내어주고 계속 칼질을 하셨다. 알고 보니 우리에게 참치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를 서비스를 주기 위해서였다. 서비스를 받을 때 무슨 생선인지 몰라서 파파고를 통해 이건 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프레젠또'라고 귀엽게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무슨 생선인지 물으니 '마구로'라는 말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즈오카 여행을 다시 간다면 꼭 이 곳부터 들를 생각이다.



왜 하필 딱 여행 기간이랑 겹친 건가요

시즈오카현 후지산세계유산센터는 아쉽게도 우리 여행 기간 중 시설 보수 공사를 하고 있어서 내부에 들어가지 못했다. 제일 기대했던 곳이라 주위만 계속 서성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청소가 한참 진행중인 센터 앞쪽에서 찍은 후지산의 풍경. 물에 비친 후지산의 모습도 함께 보인다.



다시 한 번 시즈오카로 간다면 니혼다이라 호텔과 미시마 역에 위치한 스시집은 다시 방문할 생각이다

일본 소도시 여행은 가볼만한 곳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어서 이동 시간이 길다. 이동하는 동안 바깥 풍경을 보며 멍 때리기도 하고,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때론 같이 탑승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한다. 정말 소도시다웠던 요나고에 비해 시즈오카는 '소도시'라고 불리기엔 큰 도시 느낌이었다. 다만 후지산을 기준으로 갈 곳이 모두 떨어져 있어 충분히 '소도시 여행'이라고 불릴만했다. 운이 좋게도 나흘 내내 후지산을 바라볼 수 있는 날씨였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 동안 있었는데 단 하루도 후지산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날씨는 여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중충한 날이면 사진도 잘 안 나온다. 이번 여행은 서울의 날씨를 감안하고 패딩을 입고 갔는데 무척이나 더웠다. 서울보다 시즈오카는 기온이 10도가량 높았다. 그리고 겨울이라 4시 30분이면 태양이 퇴근한 덕분에 여행을 이어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일본 소도시 여행에서는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나서야만 원하는 풍경을 맛볼 수 있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후지산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그저 산 하나일 뿐인데, 후지산은 여행 곳곳의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훌쩍 다시 여행이 가고 싶을 때 다시 한번 시즈오카로 떠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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