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요나고 여행을 다녀오겠다고하니 한결같이 '요나고가 어디야?'라고 물었다. '독도 분쟁했던 시마네현이라고 알아? 거기랑 가까운 돗토리현에 있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략적인 위치를 파악한다. 11월의 첫 번째 화요일 요나고로 향했다. 아직까지 날이 많이 춥지 않아 얇은 코트 하나 걸치고 카메라를 들었다.
공항은 아담했고, 직원도 몇 없었다. 때문에 입국 수속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은 대부분 패키지여행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리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탑승하고 공항을 벗어날 때, 나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갈 때 자주 찾는 오사카, 후쿠오카, 삿포로 등은 인구가 100만이 훌쩍 넘는 반면 돗토리현의 요나고는 약 15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일본 도시 중에서도 굉장히 낮은 편에 속한다.
역에서 30분 정도 기다렸을까. 열차가 한 대 들어왔다. 사카이미나토↔요나고를 운행하는 사카이선의 열차에는 요괴 그림이 잔뜩 그려져 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열차 내부에도 형형색색 요괴들로 채워져 있다. 일본 만화작가 미즈키 시게루의 작품들이다. 사카이미나토역에는 그의 이름을 본뜬 '미즈키시게루 로드'가 있는데 요괴마을이라 불린다. 사카이미나토시는 인구가 2만 5천 명에 불과한데, 요괴 마을이라는 유명세로 매년 관광객들이 200만 이상 찾는다고 한다. 20분을 더 기다려 요나고행 열차를 탔다.
요나고 여행을 온 사람들이라면 인근 소도시 이즈모, 마쓰에, 야스기, 돗토리 등도 다녀와야 하기에 이 지역들을 이어주는 기차의 배차 시간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열차는 어쩌다 한 대씩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놓치면 다음 열차 타지 뭐'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면 낭패를 본다. 느긋함은 기차에 타고나서 느껴도 늦지 않다. 요나고에서 돗토리까지 일반 열차를 타면 2시간 넘게 걸리지만, 2량짜리 산인 본 특급선을 타면 1시간 만에 주파한다.
일본 교통비는 무시무시하다. 그래서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좀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패스를 제공한다. 특히 요나고에 온다면 여러 가지 패스 선택지가 있는데 나는 돗토리 마쓰에 패스를 선택했다. 3일 동안 웬만한 관광지는 모두 커버되는 패스이기도 하면서, 몇몇 관광지는 할인이 제공된다. 요나고 공항은 별도의 역무원이 없기 때문에, 내리는 역에서 패스를 제시하면 저렇게 날짜를 기입해준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모셔온 작은 노트가 이번 여행을 같이했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에 코트 속주머니에 만년필 한 자루와 함께 넣고 다녔다. 기차에서 바깥 풍경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을 수집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기를 작성했다. 지난 여행의 흔적이 이번 여행에도 남았듯, 다음 여행에서도 이번 여행의 흔적을 남긴다. 동떨어진 여행은 그렇게 서로 흔적이라는 이어달리기를 통해 연결된다.
돗토리 사구에 가기 위해 아침부터 일찌감치 움직였다. 돗토리로 향하는 기차와 사구로 향하는 버스를 놓치면 길바닥에서 몇 시간이고 시간을 허비해야 하기에 동선 체크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사람들이 작아 보일 정도로 돗토리 사구는 거대했다. 딱딱한 돌을 밟고 산을 올라가는 것보다 움푹 패이는 모래를 밟고 모래 언덕에 올라가는 것이 더 곤욕이었다. 사구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정상에 도착하고 저마다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다. 그러나 힘듦도 잠시, 앞에 놓인 바다와 옆에 펼쳐지는 모래 사구를 보고 있노라면 순간 주변이 고즈넉해진다.
사구의 여운을 남기고, 야스기역에서 가까운 아다치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 정원을 보면서 '우와' 소리만 연신 내뱉었다.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곳곳에 단풍이 물든 정원은 참으로 근사했다. 입장료는 2300엔으로 비싼 축에 속하지만, 외국인은 여권을 제시하면 50% 할인 받아 1150엔에 입장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비싼 입장료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을 구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본인들이었다.
창문이며, 문틈으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은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느낌을 선사해준다. 아다치 미술관의 정원은 마치 그림처럼 정돈이 잘 되어 있어,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거 그림 아닌가'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정원의 한 켠에는 차를 마시면서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카페가 있었다. 가격이 다소 비쌌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창가 쪽 자리에서 아다치 미술관의 정원을 감상하고 있었다. 누구든지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기에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 촬영이 되지 않은 실내에는 계절마다 형형색색 변하는 정원의 모습들이 운치 있었다. 겨울 정원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고, 여름 정원은 지금의 사진보다 좀 더 푸른빛을 뽐내고 있었다. 약 5만 평 규모의 아다치 미술관에서 정원은 어떤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힐링이 된다.
도시에 있을 때는 당연시 느껴졌던 것들이, 여행 중에는 얼마나 반갑던지.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 열차는 존재 자체만으로 일본 소도시 여행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사카이선의 기관사는 1량짜리 열차를 운행하면서, 역에 도착할 때마다 내리는 손님을 배웅하고, 계산하고, 다시 주변을 살피고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며 일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점점 설 자리가 사라지는 현대 사회에서 일본은 여전히 편의점에서, 기차역에서, 그리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넉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번 여행은 참으로 고즈넉했다.
11월 말에는 두번째 소도시 여행, 시즈오카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