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관람하고 읽어주세요 :)
영화 <패터슨>은 버스 기사이자 시인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일상을 보여줬다면,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화장실 청소부이자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하루를 보여준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그의 인생은 제삼자 관점에서 바라볼 때 실패한 것 같지만, 정작 그는 자신만의 삶을 누구보다 잘 누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관람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나는 저렇게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간직한 채 떠나게 된다.
그가 삶을 누리는 방식은 철저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매일 아침 거리를 청소하는 이웃집 할머니의 빗자루 소리에 눈을 뜨고, 양치를 하고,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면도를 하면서 주어진 모닝 루틴을 착실하게 이어간다
이후 청소복으로 갈아입고 일터(공용 화장실)로 향하는 차에서는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음악을 들으며 반갑게 출근한다. 점심은 신사의 한 공원에서 간단하게 먹고, 상의 포켓에 넣어둔 필름 카메라를 꺼내 나무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을 찍는다. 저녁이 되면 단골 술집을 찾아가 가볍게 한 잔 마신 후 헌책방에서 가져온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스르르 잠든다.
그가 누리고 있는 삶을 훔쳐보고 있으면 경이롭다. '이렇게까지 청소한다고 누가 알아봐 주지 않느냐'는 동료의 물음에도 행동으로써 '나는 이렇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니까'라고 답하는 히라야마를 바라보고 있으면 남이 보니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흔히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삶은 누리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인생을 산다는 건 삶의 전체적인 과정과 그 안에서 겪는 다양한 경험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표현이지만, 삶을 누린다는 삶의 질적이고 행복한 측면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주로 말한다.
이 텍스트 외에도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누리는 삶'에는 긍정이 부각되지만, '살아가는 인생'에는 긍정과 부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히라야마는 본인의 인생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그의 삶에 조카, 여동생 등 침입자가 한 번씩 방문하면서 그림자 같았던 그의 인생이 조금씩 드리울 뿐이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며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주어진 삶은 잘 누리고 있을까. 반추하게 된다. 완벽한 순간들이 모이지 않아도 완벽한 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스크린을 통해 바라본 히라야마의 삶은 완벽해 보이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삶의 질감을 잘 음미하는 사람이었다.
아래 김영민 교수가 쓴 책 <가벼운 고백>의 문장처럼 이런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너무나 큰 행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