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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11. 2022

당신은 누구지? 영화 <큐어>

영화 <큐어> (1997), 구로사와 기요시

당신은 누구지?


현대인에게는 귀신보다 무서운 질문일 거다. 귀신은 누구나 무섭지만 존재를 묻는 질문은 나 혼자만 무서우니까. 


당신이 누구냐는 질문이 무서운 이유는 질문하는 자는 존재를 묻는데 답하는 자는 '잠시' 소유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한다. 답하는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에둘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를 묻는 질문에 항상 회피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다른 답을 급하게 내놓는 것이다.



영화 <큐어>에서 본인의 존재를 잊어버린 쿠니오(하기와라 마사토)에게 당신은 누구냐는 질문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이내 이상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부끄러워서, 못나서, 좀 그래서 미뤄둔 생각을 실행에 옮긴다. 쿠니오는 당장 화염이 번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들에게  살짝 스파크를 냈을 뿐이다.


영화 <큐어>를 보면서 무서움을 느꼈던 건 잔인한 장면 때문이 아니었다. 되려 섬뜩한 음악도 비명 소리도 없었던 무미건조한 영화였다. 무서웠던 건 오직 존재를 묻는 질문 하나였다. 1997년에 개봉해서 25년이 지난 2022년까지 유효한 질문이다. 



연달아 발생하는 비슷한 수법의 살인 사건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분명했지만, 가해자는 살인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괴물이 되지 않도록 감정을 억압하면서 살아왔던 자들이 쿠니오의 도움(?)을 통해 심연 속에 있는 존재를 들여다볼 때 잠시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좋은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처음 한 번은 극장에서, 그다음 한 번은 극장 밖에서. 


영화 속 쿠니오를 보면서 '쟤는 뭐지?'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극장 밖에 나오니 어느새 '나는 누구지?'라며 스스로를 묻고 있었다. 


이제 내가 심연을 들여다볼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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