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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26. 2024

이제는 말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졌는데

영화 <애프터 썬>, 샬롯 웰스

어떤 영화는 꿈을 좌절시킨다. 

내가 만약 영화 감독이 꿈이고 꽤 오랜 시간 방황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애프터썬과 같은 영화를 마주한다면 '이제 그만 방황해도 될 것 같다'라는 개운한 마음과 함께 아주 깔끔하게 그 길을 포기할 것 같다. 이 영화는 샬롯 웰스라는 1987년생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다.


어떤 영화는 현실보다 더 처절하다.

이 영화는 극초반이 아니라,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오고 나서야 '이 이야기는 모두 허구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감독은 자신이 아버지와 실제로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소설가 혹은 영화 감독의 데뷔작은 픽션을 다루더라도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투영될 수 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첫 데뷔작에서 반짝이는 작품들이 많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게 저주이기도 하다. 두 번째 작품부터는 자기 복제의 딜레마를 초월해야하니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다면, 혹은 이런 류의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다면 굉장히 지루한 영화다. 그저 이혼한 서른 살 아빠와 열 한 살 딸의 한 여름의 휴가 이야기를 다룬 것으만 받아들일테니까. 그러나 이 영화의 진면목은 보여주지 않음에 있다. 


아빠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음에도, 딸 소피에게만큼은 밝은 부분만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덕분에 소피는 아빠라는 태양 아래서 구김없이 성장한다. 

 

같은 눈높이가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이 영화는 이제는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되어버린 소피가 아빠와 함께 떠났던 튀르키에 여행을 '캠코더'로 회상하면서 진행되는 플래시백 형태로 흘러간다. 나이가 어릴수록 자기 초점(Self-Focus) 경향성이 뚜렷한데, 열 한 살의 소피 또한 아직은 너무 어려 아빠의 어두운 부분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더 재밌게 보낼 수 있을까만 궁리한다.


20년이 지나 이제 아빠의 나이가 되어버린 소피는 '그때의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라는 마음에 캠코더 속 튀르키에 여름 휴가의 추억을 떠올려보려고 노력하지만, 오직 밝은 부분만 유산으로 물려준 아빠의 어두운 부분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러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저 눈물이 나게 하는 영화가 있다면, 어떤 영화는 그걸 넘어서 열손가락 마디마디를 아프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후자였다. 좋은 작품이라 또 보고 싶은데 처음 볼 때 놓친 많은 부분이 발견될까봐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평점 : 5/5점.

한줄평 : 이제는 말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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