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최악의 날
그와의 이야기를 이 곳에 담아보고자 한다.
그저 쓰고싶은 에피소드대로 글을 써내려갈 예정이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진 않을 것이다.
그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P는 나와 5년째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다.
2024년을 맞아 고향에서 시간을 보낸다던 그는, 전날 밤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숙취가 심해 병원을 간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 아버지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전해왔다.
숙취가 너무 심해서 병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하고 퇴근을 했다. 결국 입원을 했다며 링거를 꽂은 팔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입원을 했다니 병문안은 가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아버지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또 혼자 일상을 보냈다.
그는 점점 연락이 느려지더니, 하루 종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근무를 하며 종종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읽지 않은 연락은 쌓여만 갔다.
그때까지도 별생각 없이 퇴근하는 길에 전화를 걸었다.
푹 쉬느라 연락을 못 했던 거라면 오는 전화는 어떻게든 받지 않을까.
의외로 P의 이모님이 전화를 대신 받았다.
P가 입원 도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어 지금 중환자실이라고 했다. 휴대폰이 잠겨 있어 연락을 먼저 하지 못했다고, 연락을 기다려 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꼭 연락 부탁드린다고 전화를 끊은 후, 청승맞게 길을 걸어가며 울었다.
뒤늦게 받은 연락으로, 그가 간 이식 수술을 해야 하며, 그 기증자를 막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싶고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였지만 차마 연락하여 물어보지 못하였다.
새삼 나와 그의 실질적인 거리가 실감이 났다.
몇 년을 사귀었든 나는 그와 법적으로 묶여 있는 관계도 아닐뿐더러, 요 근래 가장 자주 만나던 사이이든,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든 간에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한 걸음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런 이유로 그의 소식을 늦게 알았단 사실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P의 가족들이 새로운 소식을 알려주기 전까지, 나는 친구 C에게 굉장히 의지했다.
그는 2년간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경력이 있어, 내가 알고 있는 조각조각의 정보들로 직접 가족들에게 묻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을 대신 알려주었다.
간 질병과 관련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수행하는 것이 간 이식 수술이며, 의료계에 종사하였던 그의 입장에서도 대수술에 해당되기 때문에 수술 후 경과도 지켜봐야 하며, 수술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는 이제 예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하며 말 그대로 면역력을 억지로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평생 모든 병을 조심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나에게는 콜록거리다 끝나는 감기가 그에게는 고열이 나는 몸살감기가 될 수 있고, 나에게 독감이어서 며칠 몸살을 앓게 되는 감기가 그에게는 폐렴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기증자가 있어 수술을 하게 된 사실 자체가 큰 산은 넘긴 거라고, 수술을 할 수만 있다면야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맞는지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꺼이 꺼이 목 놓아 울다 잠들었다.
금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와 휴가를 쓰고 퇴근을 했다.
금요일 오후에 수술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모님께 전화가 왔다.
수술이 취소됐다고 했다. 뇌사자의 간을 받기로 하였는데 그분의 뇌파가 잠깐 흘렀다고 했다.
토, 일요일은 주말이기 때문에 월요일에 다시 뇌파가 흐르는지 확인 후, 뇌사자 판정이 확정되면 화요일에 수술을 진행한다고 했다.
기증자를 찾자마자 다음날 그 큰 수술을 진행하기로 한 거면, 많이 급박한 상황일 텐데...
이렇게 급한데 주말에는 왜 진행하지 않는 건지 궁금했다.
조바심이 났다.
친구 C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놀라지 않게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가며 천천히 얘기해 주었지만, 요지는 이번 기증자에게서 기증받는 것에 실패하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나이 27살에 벌어진 일이었다.
-0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