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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이 Nov 25. 2023

1. 우리는 소진의 시대에 산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던 나날들을 기억한다. 아침은 고요했다. 오전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학교로 향했다. 무슨 수업을 어떤 시간에 듣고, 누구와 얘기를 하고, 점심 메뉴로 무엇을 고를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맡겨졌다. '자유'라는 두 글자를 온몸으로 느끼던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자유는 여전히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대학 졸업부터 취업, 퇴사까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결정했던 수많은 선택들을 기억한다.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 ‘한계 없는 책임’이란 것을 나는 꽤 오래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는 "소진의 시대"에 산다.

 

부정성을 기반으로 한 규율 권력의 시대가 지나고 나타난 신자유주의라는 친절한 권력은 자유를 착취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개인들을 “호모 에코노미쿠스”, 즉 ”자기 자신의 기업가“(Foucualt, Birth 226)로 만든다.


오늘날에 널리 퍼져 있는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기획하는 프로젝트로서의 무한한 자기 생산이 가능”(Han 5-6) 하다고 믿는 이 환상은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아주 영리한 지배의 방식이다. 신자유주의는 폭력, 검열, 금지 등의 부정성을 바탕으로 한 규율 권력에서 벗어나 관대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한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책임진다는 것은 무척 고통스럽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자기 착취가 시작된다. 고통스러운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를 부여받은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더 나은 대학,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연봉을 위해 우리는 자기 계발에 돌입한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나오고, 미라클 모닝이 성행하고, 부업을 하고, 운동을 한다. 나를 책임지기 위해서 “자유롭게” 안간힘을 쓰며 노력해야만 한다.


자연스럽게 소셜미디어엔 열광적인 자기 계발 신도들이 가득하다. "1만 시간의 법칙", "5초의 법칙", "마음 챙김", "시크릿" 등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셀 수 없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열심히 살면 그들이 떠드는 “경제적 자유”니, “디지털노마드”니 하는 것들이 내 눈앞에 떠억 나타날 것만 같다. 새로운 종류의 자기 계발로 나를 치장하지 않으면 왠지 뒤처지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자기 계발 열풍은 그러므로, 그것에 몰두하지 않는 인간들의 죄책감을 자극한다. 자기계발할 자유를 줬는데 왜 그것에 동참하지 않는가? ”성실하지 않음“이 죄악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자기 계발 열풍은 결국 자신이 자신을 소진시키는 촉매제가 된다. 스스로를 옭아매고, 소진시키며, “휴식할 자유“를 ”자기계발할 자유“로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겨지는 시대, 이 소진의 시대는 과연 괜찮은 걸까?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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