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엔 볼링핀처럼 가지런히 줄세워 놓은 무화과가 있다
아파트에 장이 섰다. 일주일에 한 번 서는 장이다. 이번 달부터 시작한 것이라 아직 참가하는 장사꾼들이 많지 않다.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고, 또 마침 공휴일이라 상인들도 별 기대를 안 하는지, 건어물을 파는 아저씨는 아예 자리를 깔고 누워 모자로 해를 가리고 잠을 자고 있다. 잡화를 팔러 온 아주머니랑 아저씨도 오늘은 별 재미가 없을 줄로 생각하는지, 손님이 지나가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 부부와 한 두 명 구경을 나온 사람들 대부분은 과일을 파는 천막 앞에 서 있다. 복숭아 포도 수박-
쏟아지는 햇살에 힘겨워 보이는 생선 코너와 달리 과일들은 덥고 뜨거울수록 먹음직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과즙이 말랑말랑해보이는 노란 껍질 밖으로 보이는 듯하다. 당장에 한 바구니를 담았다. 여름엔 복숭아니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한 손에 복숭아를 담은 검은 봉지를 들고도, 이 많은 여름 과일들을 그냥 두고 가기가 아쉬워 둘러보다 무화과를 담은 스티로폼 박스에서 눈이 멈췄다.
외국과자나 소스를 파는 마트가 아니라 이제 막 시작된 아파트의 장에서 무화과를 마주한 것이 여간 신기한게 아니었다.
몇 번이나 먹어봤던가? 무화과.
“무화가 나뭇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어도” 로 시작하는 찬송가를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신나게 불러왔으나, 무화과가 어떻게 생겨 먹은 과일인지는 몰랐다. 가사에 포도와 병렬로 놓여있으니 과일이겠거니 짐작하는 정도로, 가본 적 없으나 친숙한 요단강이나 갈릴리 바다 같은 이미지였다. 내게는 대추야자처럼, 저 멀리 뜨거운 기후의 예수님이 태어난 지방에서 자라나는 먹어볼 일 없을 열대과일이었던 그런 과일이 이렇게 아파트 단지의 천막 아래까지 날아와 (또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직접 재배 되어서)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겨우 만 오천원이라는 ‘어포더블’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어포더블: 감당할 수 있는, 입수 가능한, <가격이> 알맞은
그렇다. ‘접근 가능한’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박스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참 좋은 세상이구나, 라고 할머니 같이 중얼거렸다. 대형 쇼핑몰의 주차장으로 들어 갈 때 자동으로 차 번호가 인지되거나, 이사 온 당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을 때, 검색한 식당의 주소와 지도를 문자로 보낼 수 있었을 때와는 또 조금 다른 느낌으로 ‘좋은 세상이다’ 싶었다. 당연히 발전할 거라 기대한 과학기술을 접해서가 아니라, 그림책에서 보던 낙타를 실제로 타게 된 것 같은 신기함이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먼 나라에서 온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반가움보다 이상하게도 그냥 거기 그 나라에 있으면서 그리워할만한 것으로 남아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상실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박스를 들고서, 참으로 간사하다.
집으로 들어와 무화과를 냉장고에 넣었다. 상자에 담긴 수가 꽤 되었다. 모두 자주 빛이 도는 둥근 종모양을 하고 있다. 꽃이 없는 과실이라 무화과(無花果)라 부르는 것이겠지만, 사실은 꽃이 없는 것이 아니라 꽃이삭이 싸고 있어 밖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꽃이삭과 꽃을 열매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무화과를 먹을 때 잘게 씹히는 알갱이가 씨앗이다. 고것이 몽글몽글 씹히는데 달콤하다기 보다는 부드럽다는 인상이다. 만져보지 않고 겉에서 보면 아보카도처럼 딱딱할 것 같은데 말랑하다. 이렇게 무르기 쉬워 보이는 과일을 장에서! 라는 점에서 또 한번 놀랐다. 수박처럼 수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복숭아처럼 달콤한 것은 아니지만, 왠일인지 맛있다고 여긴다. 신기해서일까, 맹맹한 것 같으면서도 분명 맛이 있다.
기후가 더 뜨거운 원산지의 것들은 더 달지 않을까 싶다. 터키나 지중해 연안의 것들은 색깔이 녹색이고, 잘 익었을 때 따서 파는데 지천에 널려있는 것들이 찐득하니 설탕이 묻을 정도라고 한다. 아, 터키에서 먹는 무화과는 얼마나 맛있을까요? 멀리서 날아 온 것들에 상실감을 느낀다고 하고선, 금새 가서 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리다니-
정말 간사하네.
무화과 세 개를 꺼내서 꼭지 부분을 잘라내고 반으로 가르고 또 한번 반으로 갈라서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겉은 매끈한 듯 둥근 공 같이 평범한데 갈라놓으면 탐스런 빨간색 씨앗으로 가득차 있다. 수박처럼 경계선이 선명한 것이 아니라 안 쪽에서부터 씨앗이 퍼져나가듯 채워진 느낌이라 좀 더 다부지다는 느낌이 든다. 경계가 선명하면 채워진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줄을 그어놓으면 그 안쪽을 빼곡히 칠해야만 될 것처럼. 하지만 시키지 않았는데 안쪽부터 성실히 꽃이 피워내듯 채워 놓았다.
기특하게도 옹글게, 모자라지 않게 방사형으로 뻗어 채웠다.
복숭아는 검은 봉지에 넣은 채 야채칸에 넣었지만 무화과는 스테인레스로 된 사각형의 용기에 차곡차곡 담아서 넣었다. 줄지어 늘어선 모양이 볼링핀 같기도 하다.
마르지 않는 빨래, 지겹게 내리는 비, 조금만 걸어도 진이 빠지도록 숨막히게 하는 더위와 습기의 여름이 한 풀 꺾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저녁에는 산책을 다녀왔다. 해가 지는 구나 싶으면 순식간에 깜깜해지는 겨울과는 다르게, 여름에는 해가 사라져도 붉은 색, 주황색, 남색, 푸른색이 층층이 섞여서 신비롭고 여름스러운 하늘을 하고 있다.
노을이 사방으로 팽창하고 팽창해서 가능한 하늘을 가득, 넓게 차지하고, 동시에 사라진다. 멋지다.
하루가 끝나지 않은 채 희미해지는 과정을 바라보며 걷는 여름의 저녁은 특별하다.
냉장고엔 볼링핀처럼 가지런히 줄세워 놓은 무화과가 있다. 차갑겠지. 바람도 금새 차가워지겠지.
그토록 지겹던 여름이 그리워지겠지. 참으로 간사하다. 이 여름과 가을 사이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
저렇게 세워진 무화과 한 줄만 더 먹고 여름이 끝나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