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 3시.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 책상을 뒤흔드는 핸드폰 진동소리에 놀라 핸드폰을 열어본다.
아이들 학교종이 공지 알람이다. 이상하게도 학교 종이에서 보내는 알람은 그 기운이 남다른 건지 바로 확인하게 된다. 엄마의 촉발동.
공지글을 확인하기도 전에 뭔가 불안한 기운이 든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학교 급식종사원분들의 파업으로 급식이 하루 중단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대체급식으로 빵과 음료가 제공된다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개인 도시락을 준비해도 된단다.
고민이다. 도시락 준비는 참 번거롭다. 워킹맘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수포자에게 수학 숙제 한 바닥이 더 생긴 느낌이랄까?
내 안의 자아가 대립한다.
‘도시락 싸? 말아? 하루정도 빵 먹어도 되잖아? 그런데 우리 애만 도시락 안 싸오면 어떻게 하지?’ ‘그래 결정했어. 고작 하루인데, 점심에 빵 먹고 저녁에 든든하게 먹으면 되지. 그래 나만 도시락 안 싸주는 건 아닐 거야.’ 이제 고민 끝.
마음속으로 땅땅땅. 이제 그만 고민하자 결론지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주방 마감. 오늘 나의 일과 끝이다 하고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 순간.
입 짧고 식욕 없는 소식좌 딸이 말한다.
“엄마 내일 도시락 싸 줄 수 있어?”
띠~로리. 당황스러웠지만 대놓고 그냥 빵 먹으라고 할 수가 없다.
난 좋은 엄마이고 싶으니까.
'그래 어쩌다 한 번이다. 소식좌 딸이 원하니 도시락 준비하자’ 마음을 고쳐먹고,
다 늦은 저녁 부랴부랴 쿠팡 로켓***의 힘을 빌려서 김밥 재료를 주문하고 다음날 새벽 배송으로 받았다.
평소보다 분주하게 일어나 눈곱도 떼지 못하고 종종걸음 치면서 김밥을 준비했다.
재료를 다듬고 김밥을 말아서 적당한 도시락통을 골라서 예쁘게 옮겨 담았다.
요알못, 요 똥이지만 사랑과 정성을 가득 담은 도시락을 완성하고 나니 좀 좋은 엄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꽤 뿌듯했다. 부지런한 엄마로 인정받을 만한 도시락 인증샷도 찍었다.
갑작스러운 급식 중단 소식에 투덜거리던 나는 그 순간 없어지고 준비한 도시락에 좋아할 아이들 모습을 상상하며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기대감을 갖고 짠 하고 아이들 앞에 내놓았다.
그런데 웬걸.
“엄마 이거 너무 많은데 다못먹을 것 같아. 왜 이렇게 많이 쌌어?”
소식좌 딸이 말한다.
“엄마 나 그냥 빵 먹으면 안 돼? 도시락 안 가져가도 되는데.”
눈치 없는 아들이 말한다.
생각지 못한 아이들의 2 연타 콤보 공격에 오늘 아침에도 여지없이 이성을 잃고
“이노무시키들 해준 정성도 모르고 고마움도 모르고 그렇게 이야기해? 먹지 마 그럼”
씩씩거리며 라떼는 말이야 식의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결국 사랑의 도시락은 아이들의 눈물 한 바가지와 나의 분노가 담긴 도시락으로 변질되어버렸다.
바쁜 아침 그렇게 화를 내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정신없이 출근을 했다.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침부터 화를 낸 것이 후회도 됐다가 내 마음도 몰라주는 아이들이 야속했다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갑자기 떠올랐따.
그 시절엔 급식제도가 없었다. 그래서 초·중·고 총 12년을 엄마가 직접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 시절 나에겐 너무나 당연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라 느껴서였을까?
“엄마 반찬이 이게 뭐야? 콩나물 시금치 이런 거 말고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불고기, 햄, 맛살 이런 맛있는 것 좀 싸줘.”
“계란말이도 이렇게 말고 좀 예쁘게 할 수 없어?”
“엄마 내가 이거 먹고 싶다고 했다고 계속 그것만 반찬으로 싸주는 거야? 좀 맛있는 것 좀 해줘. 다른 엄마들처럼!”
이러면 이랬다고, 저러면 재랬다고 반찬투정을 부렸었다.
한 번은 소풍을 갔는데 나는 일반 김밥이었고 친구는 유부초밥이었다.
나의 도시락은 일반 김밥이었는데 내 옆 짝꿍은 유부초밥을 싸온 것이 아닌가.
세모 낳게 예쁘게 잘 접힌 유부에 알록달록 소고기 볶음밥이 담긴 친구의 도시락이 좋아 보였고 부럽기까지 했다.
그날 나는 집에 와서 동그란 일반 김밥만 싸주냐고, 왜 은박지에 대충 싸서 주냐고, 예쁜 도시락 통에 넣어달라고 투정 부렸다.
그땐 몰랐다. 먹기에 간편한 그 동그란 일반 김밥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
한 번은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늦잠을 잤다고 도시락을 못 쌌으니 매점 가서 점심을 사 먹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무슨 엄마가 도시락도 안 챙겨주고, 너무하네 속으로 씩씩거리고 학교에 갔다.
2교시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이거 너네 엄마가 전해주래.” 하고 옆반 친구가 건네주는 도시락을 받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엄마가 서성이다가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고 2학년 4반 아무개에게 전해달라고 했단다.
이제 막 싼 도시락이라 그런지 도시락통 안에 든 밥과 반찬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도시락을 열어보니 메모지가 보였다.
“아침에 도시락 못싸줘서 미안해. 맛있게 먹어. 사랑해 딸.”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서 정성 들여 쓰신 메모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눈물 젖은 도시락이다.
왜 오늘 갑자기 이 날의 도시락이 생각났을까?
철없던 17세의 내가 지금의 43세의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싶었던 걸까?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오늘 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해야겠다.
오늘 아이들을 좀 더 꽉 껴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