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과 한 집에서 살아가는 법
기도 #1. 주말 아침
"피곤하다더니 좀 더 자지, 일어났어? 세수하고 나와. 이제막애들 아침 챙겨 먹였어. 너도 나와서 아침 먹어. 아침 차린다."
"아냐. 괜찮은데. 나 아침 안 먹는 거 알잖아."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어. 간단하게라도 아침 먹는 게 건강에 좋잖아"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게. "
"아냐 아냐 평일 엔 내가 많이 못하잖아. 주말이라도 좀 푹 쉬어. 애들 밥도 내가 벌써 다 먹였어."
감동의 물결. 모든 것이 완벽한 주말 아침. 설렌다.
그때. 저 멀리 들리는 소리.
"이제 그만 좀 일어나 주말이라고 늦잠만 자냐"
어? 어? 이게 뭐지. 황급히 눈을 떴다.
꿈이었어? 꿈이구나! 이런. 어쩐지. 현실감 없는 낯선 남편의 모습이었다.
눈을 비비며 거실로 갔다. 시계를 보니 10시다.
남편은 소파에 누워 있다. 남편의 지정석이다.
"밥 줘! 나 배고파앙. 아침 언제 줄 거야?"
"나 8시에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기다렸어."
웃으며 건네는 해맑은 남편의 아침 첫인사.
고오맙군. 기다려줘서.
아이들은 아빠 옆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너네 핸드폰 하는 거야?"
날 선 표현이 아이들에게 향한다.
"네가 자고 있어서 엄마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라고 했어. 아침 먹기 전까지만."
"나 안 일어나면 밥도 못 먹어? 자기가 해줄 수도 있잖아?"
"나 요리 못하는 거 알잖아. 니가 해주는 게 맛있어서 그래. 애들 아침부터 라면 먹이는 거 니가 싫어할것 같아서. 얘들아 이제 핸드폰 그만하고 밥 먹자." "나 잘했지?"
잘했냐고? 그.으.래. 아주 자알하셨습니다. 아유 그냥 말을 말자.
"대충 먹자. 너 힘들게 뭐하지 말고 간단하게 하자"
간단? 간단하게 본인이 하심 되잖아요. 말은 참 쉽죠이. 아효 지잉짜.
절로 한숨이 나온다.
마음의 소리를 들은 건가
"밥 먹고 커피는 내가 타 줄게. 이런 남편 없지?"
어.헝. 그래 그런 남편 없다 없어. 그러면서 어금니를 꽉 깨문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할 거야. 놔둬. 조금만 소화시키고 내가 할게."
식탁 위에서 한참 설거지 감들이 널브러져 있다. 어제저녁의 흔적들도 함께 있다.
"언제 할 거야? 지금 좀 했으면 좋겠는데!"
"아, 근데 나 지금 아침 루틴! 내가 할게 놔둬. 진짜 내가 할 거야. 식탁 정리만 해줘. 설거지는 내가 할게."
여기서 남편의 루틴은 오전에 한번, 집을 나서기 전 한번, 식사 후 한번
화장실에 가서 비워내는 것이다. 뭔 놈의 똥을 그리도 많이 자주 싸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참자. 그래 한다고 하니 할 때까지 내버려 두면 되지.
식탁 정리만 하고 싱크대에만 옮겨둬야지. 꼭 그렇게 해야지.
내가 하나 봐라. 하는데 자꾸 싱크대 안의 그릇들에 시선이 간다.
설거지거리들로 싱크대가 곧 터질 것만 같다.
오늘도 남편 win. 내가 졌다. 남편이 오전 루틴을 마치고 나오길 기다려야 했지만 난 기다리질 못했다.
결국 고무장갑을 끼고 분노의 폭풍 설거지를 시작했다.
핸드폰을 하고 있는 두 녀석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거슬린다.
"야 너네 아직도 하고 있어 그만해라 진짜."
앗 이게 아닌데. 엄한데 화풀이를 하는 나를 발견했다. 정신 차리자.
기도 타임이 된 것이다. 얼른 기도를 시작한다. 마음속으로 외친다.
제에발 남편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난 남편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으로 이런 설거지 따위에 무너지지 않게 해 주세요.
평화로운 주말 일상을 이어가도록 해주시고 앞으론 남편의 속도를 조금 더 기다리는 인내를 주시옵서서.
루틴을 마치고 나온 남편이 나를 향해 웃어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건 틀린 속담이다.
남의 편과 함께 살면서는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있을 것 같은 부정적인 마음이 종종 일어난다.
그렇지만 기도의 힘으로 이겨내 본다.
그래 웃자. 오늘도 웃자. 해맑게 웃는 남편에게 썩소라도 날려보자.
이것이 내가 남의 편과 함께 살아가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