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두려운. 그 들과 나의 시간
방학입니다
2023년 1월 13일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그 들의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작년 여름, 학교 증축 공사로 인해 여름방학이 길어서 겨울은 방학을 짧게 한다고 했다. 아닌가. 혼자 그렇게 기대를 했던 것인가.
아싸. 가오리. 재수. 그렇게 방학일수를 부엉이 셈 치기 한듯한 나의 생각을 비웃는 듯,
늦게 겨울방학을 시작하는 대신 봄방학 없이 3월 2일 개학이란다.
일수 계산을 해보면 큰 차이가 아닐 테지만,
왠지 1월에 방학해서 3월에 개학이라고 하니 2달 동안 주야장천 방학인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
뭔가 난감해지는 이 기분. 뭐지? 왜 때문이지?
아이들의 방학이 되면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맞벌이의 숙명을 타고 난 워킹맘으로서 제일 신경 쓰이는 건 단연 아이들의 끼니 해결이다.
그들의 방학시즌이 되어 예민해진 건 엄마인 나뿐인 것만 같다.
아빠는 그냥 보통의 일상을 살뿐.
그도 아이들 방학으로 변경될 학원 스케줄도 급식을 대체할 집밥도 신경 쓰인 다한다.
그러나 나에게 전적으로 그 모든 수고로움을 위임한다.
내가 엄마라서.
아이들은 평소처럼 일어난다
출근시간에 맞춰 일어나주면 난 아침을 챙겨준다
"점심은 냉장고에 반찬이랑 밥통에 밥 퍼서 이렇게 챙겨 먹어."
"간식도 좀 챙겨 먹고 숙제도 좀 하고 놀다가 학원 다녀와. 알겠지?"
" 응 알겠어"
그렇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다. 우리 집엔 없는 이야기이고 나의 허황된 바람일 뿐이다.
아이들은 늦잠을 자고 10시쯤 기상을 해서 아침출근할 때 아침으로 먹으라고 챙겨둔 다 식은 밥을 아침과 점심 그 어느 시점에 먹기 시작해서 아침을 점심까지 먹는 기이한 현상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침 점심 두 끼를 챙겨두고 나갈 수도 없거니와 그나마 준비해 둔 거라도 다 먹어주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나의 그런 애타는 마음을 알리 없다.
배가 고프다는 것, 그래서 어떤 음식을 강렬히 원하는 마음 같은 것은 애초에 없이 태어난 아이들 같으니까.
그리고 미디어 무한시청시즌이 시작된다. 학교를 안 가는 비시즌엔 그들은 진심을 다해 온 힘을 다 바쳐 열정적으로 집중한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두 아이들은 하루종일 텔레비전과 핸드폰에 노출되어 있다.
애당초 일찌감치 미디어 노출이 시작된 그들이라서 미디어 시청시간을 줄일 거란 희망 따위는 없었지만 점점 더 깊이 그곳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제 학령기에 접어들어 최소한의 학습은 필요한 나이가 되었는데 점점 공부와 담을 쌓고 문해력 향상을 위해 욕심껏 사들인 책은 먼지만 쌓여가는 골동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보호자 없이 방학 동안 둘이서 잘 있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싶어 기특하고 고맙고,
방학이라고 해서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재미있는 추억도 그다지 못 만들어 주는 것 같고
그렇게 괜스레 또 짠하고 미안하고
또 그렇게 그렇게 아이들의 미디어 시청을 눈감고 못 본 척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또 걱정하다가 화내고 후회하길 반복한다.
요즘. 가끔 아니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주변에 엄마들을 보면서,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자기 관리도 열심히 잘하고
직장생활도 잘하면서
아이들도 잘 키우는
그런 멋지고 활기찬 여성들 사이에서
왠지 난 좀 못난이 루저 같은 느낌.
그렇다고 육아방식, 삶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게 있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닌 없는 것도 아닌
미지근하고 어중간한 상태.
이리저리 왔다 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나 자신을 마주하노라면
때때로 이유 없이 마음이 서글퍼진다.
그러다가도
그래도 결국
나 자신을 칭찬해 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지
아니야 나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너무 애쓰지 말자
셀프 토닥토닥하며 힘겹게 힘겹게 또 그렇게 오늘하루를 살아냈다.
오늘 밤 내 옆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오늘 하루 파도처럼 출렁이던 감정의 포물선은
느슨해지고
부정적이고 위태로운 감정은 빗물에 눈 녹듯 사그라들고
내 옆에서 세상 제일 편안한 얼굴로 두 팔 번쩍하고 잠들어 있는 이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는데도 사무치도록 그립고 소중하고 고맙다.
나를 일깨우고 또 일어나게 나는 힘.
결국 아이들.
그리고 내 안에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무수하게 일어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몰하지 않고
나답게 살 수 있도록 안전하게 바닷속 깊은 곳에 단단히 고정된 배의 닻 같은 그들에게 감사한다
새벽 2시. 모든 것이 고요해진 시각.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