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살이를 하면서 알게 된 밥상의 의미
쌀밥 한 공기가 이렇게 고마운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계란프라이 하나에 마음이 놓이고,
된장찌개 냄새에 하루의 긴장이 풀렸다.
오늘 우리는 유럽에서 가장 호화로운 밥상을 차렸다.
쌀밥, 계란프라이, 된장찌개, 양파김치.
누군가에겐 냉장고 털이 메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참고 또 참다가 결국 간절함이 솟구쳐
한식 재료를 꺼내 들고 만든 식사였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음식은 곧 일상이 된다.
그리고 그 일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기준을 바꿔 놓는다.
동남아를 여섯 달 여행하는 동안
태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음식을 거의 매일 먹었다.
각 나라에는 그 땅을 닮은 대표 음식이 있었고
동양의 조미료와 익숙한 향 덕분에
대체로 입맛에는 잘 맞았다.
물론 미묘한 차이는 있었다.
말레이시아처럼 돼지고기를 쓰지 않는 나라에서는
같은 요리라도 분명 다른 맛이 났고,
현지식 커리는 낯설었지만 의외로 신선하고 좋았다.
맛만 놓고 보면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위생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몇 번은 탈이 났고
그때마다 음식은 즐거움이 아니라
몸으로 버텨야 하는 일이 되었다.
유럽으로 넘어오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외식비가 부담스러워
대부분의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했다.
현지 마트에서 산 재료로
가능한 모든 음식은 현지화되어야 했다.
그렇게 파스타가 우리의 주식이 되었다.
바질 파스타, 오일 파스타, 계란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크림 파스타.
스튜도 종류별로 만들어 먹었다.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치즈와 버터, 크림이 쌓일수록
속은 점점 무거워졌고
그 느끼함을 씻어낼 음식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서 가져온 소량의 소중한 양념들이 꺼내졌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김치를 담갔다.
배추가 없을 때는 양배추로,
어떤 날은 양파로 김치를 대신했다.
현지 채소를 활용해 된장찌개를 끓였고
뇨끼를 수제비 삼아 국에 넣기도 했다.
타협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우리의 방식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
유럽살이 중 가장 행복한 밥상이 완성됐다.
쌀밥.
계란프라이.
된장찌개.
양파김치.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해서
굳이 사진조차 찍지 않았을 한 끼.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식사였고
삶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맛이었다.
유럽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이 평범한 음식의 소중함을 몰랐을 것이다.
늘 곁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진다.
오늘의 밥상은 소박했다.
하지만 간절함이 녹아 있는
그 어떤 만찬보다 충만했다.
한 숟갈 입에 들어서는 순간
서로의 얼굴에 번져 있는 흐뭇한 미소를 보면서
우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박한 한 끼의 행복을 느끼면서.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