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여정 속에 있다
여행은 과정의 즐거움이다.
준비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먼저 떠난다.
지도 앱을 열어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를 확대해 보고,
블로그와 유튜브를 오가며
사진 몇 장으로 그곳의 공기를 상상한다.
어디에서 아침을 먹을지,
어느 골목을 걷게 될지.
그 상상만으로도 하루는 조금 가벼워진다.
그때 이미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은 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이 아니라,
마음이 설레는 그 첫 장면에서부터.
여행지에 도착하면 계획은 금세 느슨해진다.
생각보다 길이 멀어 돌아가기도 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 손짓으로 주문을 하기도 한다.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웃기도 하고,
이유 없이 하루 종일 피곤한 날도 있다.
기쁨만 있는 여행은 없다.
당황함과 불편함, 지침이 함께 섞여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모든 감정이 모여 하나의 '기억'이 된다.
완벽하게 준비된 하루보다
예상에서 조금 어긋난 하루가 더 오래 남는다.
여행의 끝은 늘 조용히 다가온다.
굳이 마지막 날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짐이 다시 가방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엔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를 갔어야 했는데...'
'이 식당을 안가본 것이 너무 아쉽네...'
그 아쉬움들은 늘 뒤늦게 말을 건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 아쉬움 속에는
다시 삶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하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삶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한 번의 여행은
다음 여행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이어지고,
그 준비의 설렘은 다시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 준다.
여행은 우리를 잠시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내지만,
돌아온 우리는 이전과 같지 않다.
조금 더 느긋해지고,
조금 더 넓어지고,
조금 더 아쉬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나는 그 변화가 좋다.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본다.
인생이 여행과 같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여정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