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파이어족 부부의 베트남 달랏 28박 생활기
우리는 다섯 번째 여행지 달랏으로 이동하기 위해
쿠알라룸푸르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언어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눈치와 손짓으로 발권 카운터를 찾았다.
시간이 촉박해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다행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를 따로 불러 사무실로 안내했다.
“캐리어를 열어주세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어리둥절함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문제의 원인은 소형 선풍기였다.
내장 배터리가 있다는 이유였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라고 설명했고,
몇 번의 확인 끝에 겨우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탑승한 비행기 안에서
이번엔 난기류가 시작됐다.
기체가 요동쳤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반복됐다.
전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불안은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는 통로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있었다.
미리 좌석을 예약하지 못한 상황이 못내 아쉬웠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고,
아내도 내 손을 잡았다.
서로의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과 긴장을 함께 쥔 채
무사히 달랏에 도착했다.
달랏은 해발 약 1,500m에 위치한 도시다.
‘베트남의 알프스’라 불릴 만큼
서늘한 기후와 감성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조호바루와 쿠알라룸푸르가
도시적인 긴장감을 가진 곳이었다면,
달랏은 태국 치앙마이를 떠올리게 했다.
속도가 느리고,
공기가 다르고,
마음이 먼저 풀리는 도시.
미리 예약해 둔 숙소 ‘처비하우스’까지는
라도택시(Lado Taxi)를 이용했다.
공항 픽업과 장거리 이동을 정찰제로 운영하는,
현지에서 가성비로 유명한 택시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호스트가 맞이해 줬다.
친절했고 설명도 차분했다.
2층 문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아, 잘 왔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했다.
‘한달살이’의 핵심은 이동이었다.
스쿠터가 필요했는데,
호스트 남편이 직접 타던 스쿠터를 빌려주었다.
가격은 저렴했고, 상태는 훌륭했다.
반납도 자유로웠다.
베트남의 교통은 악명 높다.
빽빽한 오토바이와 차량들,
처음엔 긴장이 컸다.
하지만 2~3일이 지나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길을 읽고, 흐름을 타고,
나중에는 농담 삼아
“퀵 배달도 하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능숙해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 순간, 나에게 의지하려는 아내의 모습에
기쁨과 희열이 감돌았다.
우리가 머문 시기는 비수기였다.
큰비는 거의 없었고,
한낮엔 햇살이 강했지만
그늘에만 들어가면 금세 시원해졌다.
반면 아침과 저녁은 쌀쌀했다.
스쿠터 이동이 많아 외투는 늘 곁에 두었다.
물가는 동남아에서 가장 저렴한 편에 속했다.
반세오, 껌땀, 넴느엉, 미꽝, 베트남 가정식,
쌀국수, 반미, 껨보, 코코넛 커피까지.
가성비 좋은 식당과 카페가 많아
외식이 부담되지 않았다.
대형마트 ‘고달랏(Go! Da Lat)’도 큰 역할을 했다.
필요한 물건은 대부분 해결 가능했고,
문 앞 배송까지 되어 생활이 무척 편했다.
달랏을 대표하는 곳은 단연 쓰엉후엉 호수다.
저녁 식사 후 산책하고,
노을을 바라보고,
가끔은 러닝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쿠란마을은 꼭 언급하고 싶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입구에서 반겨주는 오리 떼.
단순한 광지(廣地)가 아니라
‘머물고 싶은 공간’에 가까웠다.
랑비앙 전망대는 걸어서 올랐다.
지프차 대신 두 발을 선택했다.
힘들었지만,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만들었다.
크레이지 하우스는 의외였다.
유치할 줄 알았는데,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꽤 큰 도전이었다.
2025년 3월부터 4월까지,
그렇게 28박은 빠르게 지나갔다.
모든 비용을 정리해 보니 총 2,123,798원.
(2인 기준 / 항공료 제외)
숙소: 935,106원
외식: 631,007원
장보기: 195,596원
카페: 167,795원
스쿠터: 139,687원
입장료: 36,216원
교통: 18,391원
순수 생활비 약 200만 원.
하루 평균 약 7만 5천 원.
은퇴 후 파이어족에게,
달랏은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달랏은
‘다녀온 여행지’가 아니라
‘살아본 도시’로 기억된다.
빠르지 않아 좋았고,
비싸지 않아 편했고,
무엇보다 마음이 조용해졌다.
난기류를 뚫고 도착한 이 도시는
어느새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싶은 이름이 되어 있었다.
— 낭만봉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