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위에 핀 '오늘', 크로아티아 자다르.

[자다르의 숨결] '정리되지 않는 무덤' 같은 포룸의 잔해에서 만난 역사

by 낭만봉지 김봉석

두브로브니크가 아드리아해에 떠 있는 박제된 중세의 보석 같았다면, 버스를 타고 서북쪽으로 달려 도착한 자다르는 훨씬 더 '도시'다운 활기로 가득했다. 성벽 안에 갇힌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 숨 쉬는 오늘의 공기가 느껴졌다.

(아드리아해 위에서 시작되는 '도시' 자다르. 현대적인 도심과 올드타운을 잇는 보행자 다리)

숙소에서 올드타운을 향해 걷는 길은 낯설지 않았다. 매끄럽게 잘 닦인 아스팔트 도로, 세련된 외관의 신식 건물들, 그리고 익숙한 브랜드들이 입점한 대형 쇼핑몰까지. 강풍과 비바람을 뚫고 도착한 우리에게 자다르의 현대적인 인프라는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번듯한 풍경 뒤에는 짙은 상흔이 숨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무차별 폭격과 90년대 독립 전쟁의 포화를 견뎌낸 자다르는, 폐허가 된 자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건하며 지금의 '도시'를 일궈 낸 것이다.

(유적과 아파트가 나란히 서 있는 도시, 자다르 올드타운)


다리 하나를 건너 마주한 '신구(新舊)의 변주곡'

(육지의 문을 통과하며 바뀌는 공기. 현대적인 도심에서 다리를 건너 도착한 올드타운 성문 앞)

현대적인 도심과 올드타운을 잇는 보행자 다리를 건너 육지의 문(Land Gate)을 통과하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그런데 이곳의 올드타운은 우리가 앞서 거쳐온 부드바, 코토르, 두브로브니크와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두브로브니크가 완벽하게 복원된 '중세의 세트장' 같았다면, 자다르의 성벽 안은 '신구가 뒤섞인 캔버스' 같았다. 2,000년 전 로마 시대의 돌무더기가 나뒹구는 유적 옆으로 세련된 카페의 테라스가 펼쳐져 있고, 비잔틴 양식의 성 도나투스 성당 뒤편으로는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고풍스러운 대리석 바닥 위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상점의 간판은 지극히 현대적이다.

(자다르 올드타운 바닷가 산책로. 복원이 아닌 공존을 택했다)

과거를 통째로 복원하는 대신, 무너진 자리에 현재를 덧씌운 자다르의 방식은 이 도시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래된 것이 주는 품위와 새것이 주는 편리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풍경. 그것은 '보존'이 아니라 '공존'의 미학이었다.


포룸의 잔해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자다르 올드타운, 포룸 기둥과 석재 잔해들이 질서 없이 흩어진 로마 유적)

올드타운의 중심부에 들어서면 기원전 1세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부터 조성된 광장 '포룸(Forum)'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는 로마의 위엄을 상징하는 공공의 장이자 신전이 서 있던 이곳은, 수천 년의 세월과 20세기 전쟁의 포화 속에서 뼈대만 남은 채 흩어져 있다.


그 잔해 사이를 걷다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은 박물관의 유리창 너머로 잘 닦여진 유물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기둥 조각 위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2,000년 전의 대리석 위를 뛰어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포룸의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삭막하고 서늘했다.


그것은 마치 '정리되지 않은 무덤' 같았다. 찬란했던 역사가 어떤 질서도 없이 툭툭 던져진 채 방치된 느낌, 그 거친 질감의 돌덩이들 사이로 흐르는 공기는 아드리아해의 바람보다 훨씬 차갑게 느껴졌다. 삭막한 돌무더기 아래 눌려 있는 역사의 한 장면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잘 정돈된 복원보다, 이렇게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폐허가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리'하려 든다. 하지만 자다르의 포룸은 죽음과 삶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한 공간에 엉켜 있었다. 그 삭막함이야말로 역사가 가진 진짜 민낯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재건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겼는가


자다르의 거리를 걸으며 자꾸만 한국의 도시들이 겹쳐 보였다. 한국 역시 전쟁이라는 거대한 참혹함을 겪었고, 그 폐허 위에 '재건'이라는 이름의 기적을 일궈냈다. 하지만 우리의 재건은 대개 '효율'과 '속도'에 치중되어 있었다. 옛것은 '낡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되어 불도저 앞에 허물어졌고, 그 자리엔 똑같은 모양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들어섰다.

(올드타운 골목길을 걷는 사람들. 오래된 석조 건물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일상)

자다르가 로마 시대의 기둥 하나, 중세 성당의 벽돌 한 장을 소중히 남겨두고 그 틈 사이에 현대의 삶을 녹여낸 것을 보며 묘한 부러움이 일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기억'을 지우고 그 위에 '편리'를 세운 것은 아닐까. 포룸의 삭막한 잔해들조차 시민들의 의자로, 아이들의 놀이터로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과거를 지우지 않고도 충분히 현대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자다르의 올드타운은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다시 길 위에서 묻다


발밑에 닿는 차가운 대리석의 질감이 은퇴 후 길 위를 걷는 나의 삶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네 인생도 화려한 전성기가 지나면 포룸처럼 삭막한 잔해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 잔해 위에서도 새로운 삶의 꽃은 피어난다.


내일은 이 도시가 전쟁의 아픔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켰는지, 바다 오르간과 태양의 인사를 찾아가 보려 한다.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를 듣기 전, 나는 이 신비로운 신구의 조합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도시의 시간'과 '인생의 무게'에 대해 다시금 생각에 잠겼다.

(도시의 시간을 바라보다. 아드리아해를 마주한 채 서 있는 나)

과거의 상처를 미래의 자산으로 만든 이들의 지혜가 담긴 자다르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