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살이를 버티게 해 준 '생존 러닝'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선택.. 유럽에서의 '생존 러닝'

by 낭만봉지 김봉석

해외살이의 낭만보다 무서운 것은 '방전'된 체력


해외에서의 장기 체류는 낭만적인 여행이라기보다 치열한 '생활'에 가깝다. 특히 은퇴 후 떠나온 길 위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현실적인 과제는 다름 아닌 '건강'이었다. 낯선 음식, 바뀌는 물, 그리고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의 고단함까지. 이 모든 변수를 버텨낼 기초 체력이 없다면, 아무리 눈부신 아드리아해의 석양도 그저 피곤한 배경화면일 뿐이다. 은퇴자의 배낭에는 꿈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그 꿈을 지탱할 '근육'이 함께 담겨야 했다.


동남아시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는 숙소 내 헬스장이 있는 곳이 많아 운동에 대한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유럽으로 넘어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다 보니 헬스장은 사치였다. 홈트를 통한 맨몸 운동이나 동네 공원의 철봉을 활용해야 했다. 그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가장 정직하고 효율적인 운동은 바로 '러닝'이었다.


러닝은 특별한 장비가 필요 없다. 오직 내 몸과 잘 길들여진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구글 지도를 켜고 마트의 위치만큼이나 공들여 찾는 것이 있었다. 바로 '러닝 코스'다.

IE003581658_STD.jpg?20260211044128019 (코토르에서 시작된 나만의 러닝 코스)


발칸의 길 위에서 나만의 트랙을 발굴하다


우리의 운동화 밑창에는 발칸반도의 지도가 새겨져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는 거대한 성 사바 성당 앞 공원을 달렸고,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호숫길을 따라 정비된 트랙 위를 뛰었다. 알바니아의 블로러와 두러스에서는 짙푸른 바다 옆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리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특히 몬테네그로 부드바에서의 러닝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IE003581660_STD.jpg?20260211044128019 (몬테네그로 부드바에서 아드리아해를 따라 달리는 아침 러닝)


깎아지른 절벽과 중세 성벽을 배경으로 달릴 때, 폐부 깊숙이 박히던 짠 내 섞인 바람은 러닝의 묘미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모든 도시가 친절한 트랙을 내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IE003581659_STD.jpg?20260211044128019 (지도에는 없던 길, 발로 만든 코토르의 트랙)


몬테네그로 코토르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처럼 지형이 험하거나 길이 좁은 곳에서는 우리가 직접 코스를 발굴해야 했다. 미로 같은 골목을 누비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름의 코스를 짜고 달릴 때면, 나는 여행객이 아니라 그 동네를 가장 잘 아는 원주민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전쟁의 상흔 위에 세워진 시민의 요람, '비슈닉 스포츠 센터'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도 우리의 '러닝 레이더'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리고 발견한 곳이 바로 '비슈닉 스포츠 센터(Športski centar Višnjik)'다. 지도로 확인한 규모부터가 압도적이었다. 약 20만 제곱미터(6만 평), 축구장 28개를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부지는 한국의 올림픽 공원과 잠실구장을 적절히 섞어놓은 듯한 웅장함을 뽐냈다.

IE003581663_STD.jpg?20260211044128019 (전쟁의 땅에서 시민의 트랙으로. 크로아티아 자다르의 비슈닉 스포츠 센터 트랙)


이곳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다. 이 드넓은 땅은 원래 구 유고슬라비아 인민군(JNA)의 병영이 있던 곳이었다. 군인들이 총을 들고 사열하던 연병장이자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군사 시설이었던 셈이다. 크로아티아 국방부로부터 부지를 양도받은 자다르시는 이 삭막한 군사 요충지를 시민들을 위한 거대한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복합 단지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단지 내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돔 형태의 '크레시미르 초시치 홀(Krešimir Ćosić Hall)'이다. 2008년, 자다르 출신의 전설적인 농구 선수이자 NBA에서도 활약했던 크레시미르 초시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독특한 돔형 건축물을 현지인들이 '페카(Peka)'라는 별명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페카는 크로아티아 전통 요리를 할 때 덮는 종 모양의 뚜껑을 뜻한다. 전쟁의 살풍경이 가득했던 군부대 자리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연상되는 이름의 시민 체육관이 들어섰다는 사실에서 자다르 사람들의 낙천성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엿볼 수 있었다.


한 바퀴 1km, 내 몸과 도시가 동기화되는 시간

우리가 방문했을 때, 센터 한편에서는 캠핑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5유로의 입장료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외부에 전시된 형형색색의 캠핑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유럽인들이 자연을 즐기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가족과 함께할 텐트를 치고, 공을 차며, 달리기를 한다.


스포츠 센터 주변을 감싸고 있는 트랙은 한 바퀴에 약 1km 정도 된다. 우리 숙소에서 이곳까지 오는 거리 1.5km를 합치면, 트랙을 네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 정확히 7km의 러닝이 완성된다. 은퇴 후 맞이하는 아침,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내 발소리는 고요한 도시의 잠을 깨우는 전령사가 된다.

IE003581661_STD.jpg?20260211044128019 (숨이 차오를수록 또렷해지는 감각 비슈닉 스포츠 센터 트랙에서 숨이 찰 정도로 페이스를 올린 러닝)


아직 잠이 덜 깬 도시의 뒷골목을 지나고, 갓 구운 빵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하는 시장통을 가로지를 때, 나는 비로소 자다르라는 도시와 조금 더 밀접한 사이가 됨을 느낀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훑는 풍경이 아니라, 거친 숨소리와 함께 땀으로 적시는 길은 그 깊이가 다르다.

IE003581662_STD.jpg?20260211044128019 (도시가 깨어나기 전, 나의 하루는 이미 시작된다. 이른 아침, 자다르의 주택가와 도로를 지나 스포츠 센터로 향하는 러닝 길)


은퇴 후의 운동은 '관리'가 아니라 '생존'이다

한국에 있을 때 운동은 '시간이 나면 하는 것' 혹은 남들에게 보기 좋기 위한 '자기관리'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곳 길 위에서의 운동은 철저한 '생존'이다. 근육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달린 거리만큼,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내 몸은 낯선 환경에 더 기민하고 건강하게 반응한다. 무릎이 조금 삐걱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기도 하지만, 그 고통조차도 내가 아직 이 광활한 세계를 직접 누비고 있는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달리기는 몸의 건강만 지켜주는 게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 문득 찾아오는 막연한 불안과 은퇴 후의 공허함은 땀과 함께 증발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머릿속의 복잡한 잡념은 비워지고, 그 빈 자리는 '오늘 하루도 내가 나를 책임지고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채워진다.


전쟁의 아픔이 서린 연병장을 시민들의 안식처로 바꾼 자다르의 지혜를 보며 한국의 도시들을 떠올린다. 우리에게도 이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순히 건물을 짓는 재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체육과 문화로 치유하는 공간 말이다.


내 호흡으로 닫는 가방의 지퍼


한국의 잘 닦인 한강 고수부지는 아니지만, 자다르의 역사와 정취가 녹아있는 비슈닉의 트랙을 달리며 나는 깨닫는다. 은퇴 후의 삶 역시 러닝과 닮았다는 것을. 한꺼번에 멀리 가려 욕심내기보다, 내 호흡에 맞춰 묵묵히 한 발씩 내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남과 속도를 경쟁할 필요도 없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 조금 더 가볍게 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자다르의 파란 하늘 아래, 여행 가방의 지퍼를 닫듯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맨다. 내일의 내가 오늘보다 조금 더 가뿐하기를, 그리고 이 길 위의 여정이 근육처럼 단단해지기를 바라며 다시 자다르의 바람 속으로 뛰어든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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