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쫓기지 않고 비교에 흔들리지 않기.. 건강한 부의 기준을 찾다
누군가는 40대를 '인생의 황금기'라 부르고, 누군가는 '가장 무거운 책임의 시기'라 말한다. 2024년 5월, 우리 부부는 그 두 가지 정의를 모두 뒤로하고 사표를 던졌다. 아내 나이 마흔둘, 내 나이 마흔일곱. 남들이 보기엔 한창 '돈을 쓸어 담아야 할' 시기에 우리는 스스로 수입의 줄기를 끊었다.
아내의 사회생활은 남들보다 훨씬 빨랐다.
고등학교 졸업 전인 열아홉 살 10월,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에 취업했다. 어린 나이에 세상 물정 모른 채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며 버틴 세월이 20년이다. 내향적인 성격에 매일 수많은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금융 업무는 매일이 소리 없는 전쟁터였다. 적성을 찾아 야간 대학 구조공학과를 졸업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결국 '높은 연봉'이라는 달콤한 족쇄에 묶인 월급쟁이의 반복이었다.
결혼 후, 아내의 가슴을 뛰게 한 것은 '전세금을 빼서 세계여행을 떠난 부부'의 기사였다. 아내는 당장 떠나자고 했지만, IT 보안 전문가로서 커리어를 쌓던 내게 그것은 철없는 소리였다.
우리는 평행선을 달렸다. 나는 "얼마까지만 모으고", "몇 살까지만 일하자"며 아내를 달랬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아내의 영혼은 조금씩 시들어갔다.
우리의 갈등이 마침표를 찍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죽음' 앞에서였다. 72세라는 이른 나이에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님. 아버님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나는 아껴 두셨던 고급 도화지와 빛바랜 미술 도구들을 마주했다. 그분의 성향을 잘 알기에 분명 아껴두셨을 그 물건들은 주인 없는 방에서 소유의 덧없음을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아내에게 약속했던 '은퇴 자금'의 목표치를 수정하고 시점을 앞당기기로. 내 커리어를 버릴 각오를 하고, 아내가 원하는 '시간의 자유'를 선물하기 위해 나는 본격적인 자금 세팅에 들어갔다.
우리의 은퇴 자금 확보는 철저하게 단계적이었다. 초기 10년은 부동산에 집중했다. 수원의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서 시작해 세 번의 이사를 거치며 실거주 중심의 자산을 불려 나갔다. 부동산은 자산 가치는 높았지만, 은퇴 후 '매달 쓸 수 있는 돈'으로는 부족했다.
건물을 뜯어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자금의 지속성'을 위해 2021년부터 주식과 ETF(상장지수펀드) 공부에 매진했다. 하루에도 수십 편의 관련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AI 기술주부터 배당 귀족주, 코스피 지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섭렵한 끝에 우리만의 ‘현금 흐름’ 지도를 그려냈다. 비록 아주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소소한 은퇴 생활을 누리기에는 부족함 없는 선택이었다.
은퇴 후 그렇게 달려온 2년,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매달 들어오던 안정적인 수입이 끊기자 우리는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외식을 즐기던 맞벌이 부부의 화려한 식탁은 사라졌지만, 그 빈자리에는 사소한 것들이 주는 소중함이 차곡차곡 들어찼다.
나는 종종 '부(富)'를 식단에 비유하곤 한다. 매일 먹는 음식이 몸을 만들듯, 우리가 돈을 대하는 방식은 삶의 체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욕심내어 과식하면 체하고, 필요 이상으로 굶으면 기운이 빠지는 법이다.
우리가 바라는 부는 수십억, 수백억이라는 거창한 숫자가 아니다. 오늘을 걱정 없이 살고, 내일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적당한 여유'다. 우리는 그 여유를 지키기 위해 생활 규모에 맞춘 현실적인 은퇴 자금의 상한선을 정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돈의 노예가 되어 영영 은퇴의 문턱을 넘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소박한 한 끼 앞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 작은 산책과 평범한 저녁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태도. 부족할 때는 기꺼이 아끼고, 넘칠 때는 무작정 움켜쥐지 않는 절제. 그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 때, 돈은 비로소 주인이 아닌 삶을 보조하는 도구(Tool)로 남는다.
오늘도 비슈닉 스포츠 센터의 거대한 트랙을 달리며 생각한다. 진짜 부는 계좌의 숫자가 아니라 '삶의 리듬' 속에 숨어 있다고. 불안에 쫓기지 않고, 타인과의 비교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상태. 그것이 우리가 정의한 가장 건강한 부의 기준이다.
현재 우리는 살던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그동안 모아둔 원금을 적절히 배합해 현금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가끔 원금을 조금씩 꺼내 써야 하는 달도 있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절약'이라는 강력한 무기와 '신뢰'라는 든든한 자산 운용의 지도가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3개월, 동남아 3개국 6개 도시 한달살기, 그리고 지금 이어지는 유럽의 여정까지. 막상 꿈꾸던 세계여행이 일상이 되고 나니 매 순간 흥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삶과 시간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쓸 수 있다'는 한없는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많이 가진 삶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평온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부유하다. 큰 계획보다 소소한 하루를 귀하게 여기며,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속도로 이동하는 오늘. 이것이야말로 20년의 전쟁 끝에 우리가 획득한 가장 값진 전리품이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