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의 기원이 된 오물.. 유럽 화장실의 배설 잔혹사
중세의 돌길을 걷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진다.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 그 사이를 수놓은 고풍스러운 건물들. 하지만 올드타운의 좁은 골목길 깊숙이 발을 들이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찌릿한 '오줌 지린내'다.
화려한 성당과 유적지 뒤편에서 풍겨오는 이 냄새는 유럽의 화장실 문화가 가진 해묵은 숙제를 대변한다. 한국인에게 화장실이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무료이며, 대개는 깨끗한 '기본권'에 가깝다. 하지만 이곳 유럽에서 화장실은 철저한 '유료 서비스'이자, 때로는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희귀 자원'이다. 돈이 없으면, 혹은 동전이 없으면 생리현상조차 해결할 수 없는 이 가혹한 현실이 골목길의 노상방뇨라는 슬픈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유럽의 이런 '배설 잔혹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4세기 무렵의 유럽을 떠올려보자. 당시 도시에는 변변한 하수 처리 시설이 없었다. 사람들은 집안에서 해결한 오물을 요강에 담아 두었다가 창밖으로 냅다 던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물 조심하세요!(Gare de l'eau!)"라는 외침은 곧 머리 위로 똥오줌이 쏟아질 것이라는 경고였다.
길바닥은 오물로 넘쳐났고, 이를 피하기 위해 신발 굽을 높인 것이 '하이힐'의 시초가 되었다는 설은 유명하다. 우아함의 상징인 '양산' 역시 위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막기 위한 방패였다니, 우리가 찬양하는 유럽의 패션 아이템들이 실은 '오물과의 사투'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하수도는 정비되었을지언정 화장실에 대한 인색함은 여전하다. 올드타운의 옛 건물 안에 자리 잡은 화장실에 가려면 입구에서부터 1유로짜리 동전을 준비해야 한다. 지하철 개찰구 같은 기계에 동전을 넣고 '딸깍' 소리와 함께 바를 밀고 들어가는 순간, '볼일 볼 권리'를 돈으로 샀다는 묘한 자괴감과 안도감이 교차한다.
여행자들은 흔히 유럽의 화장실 부족을 그들의 ‘무심함’ 탓으로 돌리곤 하지만,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 노후화된 하수 처리 시스템의 한계다. 크로아티아나 몬테네그로 같은 나라의 올드타운은 수백 년 된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고대 로마나 중세 시대에 설계된 좁은 하수관로에 현대적인 대형 공중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도시 전체를 들어내야 하는 대공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다 보니 땅 한 뼘 파는 것도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결국 인프라의 확충보다 기존 시설을 ‘유료화’하여 이용객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것이다.
둘째, 화장실을 ‘공공재’가 아닌 ‘수익자 부담 원칙’의 서비스로 보기 때문이다.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 청소 인력을 상주시키고 청결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이를 세금이 아닌 이용객의 주머니에서 직접 충당하는 구조다. "돈을 낸 만큼 깨끗하게 관리하겠다"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논리가 화장실 문앞에 개찰구를 세운 셈이다.
셋째, 치안과 범죄 예방의 목적도 크다. 무료 공중화장실은 자칫 부랑자의 거처가 되거나 마약 투약 등 범죄의 온상이 될 위험이 크다. 유료화는 불특정 다수의 진입을 막아 내부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필터링’ 장치인 셈이다.
유럽 살이 중 가장 잊지 못할 시트콤은 북마케도니아의 보석, 오흐리드(Ohrid)에서 벌어졌다. 그날따라 운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갑작스럽게 '그분'이 찾아오셨다. 장 속에 폭풍이 휘몰아치는 긴박한 신호. 이른바 '대변의 역습'이었다.
주변을 미친 듯이 둘러보았다. 하지만 오흐리드의 거리는 비정하리만큼 평온했다. 한국 같으면 근처 카페나 상가, 혹은 지하철역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겠지만, 이곳에선 어림없는 소리였다. 카페에 들어가 화장실만 쓸라치면 "주문부터 하라"는 싸늘한 시선이 돌아오거나, 굳게 닫힌 화장실 문엔 어김없이 열쇠 번호가 걸려 있었다.
집까지 남은 거리는 약 1km. 장바구니의 무게가 평소보다 열 배는 무겁게 느껴졌다. 항문 괄약근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경보하듯 걷는 나의 모습은 흡사 고장 난 로봇 같았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머릿속엔 '여기서 무너지면 은퇴 여행의 품격은 끝이다'라는 절박한 문구가 명조체로 떠올랐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 문을 열고 변기에 앉는 순간, 나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문명은 예술도, 거창한 철학도 아닌 '개인용 변기'임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자다르의 쇼핑몰처럼 무료 화장실이 구비된 곳은 그야말로 천국임을, 오흐리드나 몬테네그로의 척박한 화장실 환경을 견디며 알게 되었다.
유럽의 이 척박한 환경을 경험하고 나면, 한국의 화장실 문화가 얼마나 경이로운 수준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만큼 공중화장실이 잘 정비된 곳은 드물다. 지하철역마다 깨끗한 화장실이 있고, 산속 등산로 입구에도 화장실이 있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가히 '문화 충격' 수준이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비데가 설치되어 있으며, 빈 칸을 알려주는 전광판까지 있는 화장실을 유럽인들이 본다면 아마 그곳을 박물관으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무료'라는 사실은 유럽의 1유로 개찰구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다.
공동체의 편의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화장실을 관리한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그 사회가 개인의 '존엄'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급할 때 언제든 뛰어 들어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었다.
자다르에서의 삶은 다행히 화장실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현대적으로 정비된 도시답게 대형 쇼핑몰이나 공공장소의 화장실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흐리드에서의 그 처절했던 기억은 여전히 내 운동화 끈을 꽉 조이게 만든다. 이제 나는 낯선 거리를 나설 때 가장 먼저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하고, 호주머니엔 늘 1유로짜리 동전 몇 개를 비상금처럼 챙긴다.
화장실은 우리에게 말한다. 아무리 고결한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도 결국 먹고 배설하는 '육체'를 벗어날 수 없음을. 그리고 그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의 배려(인프라)나 대가(동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은퇴 후 떠나온 길 위에서 나는 오늘도 배운다. 아드리아해의 찬란한 석양을 온전히 품으려면, 먼저 내 안의 폭풍을 다스릴 '화장실 지도'부터 손에 넣어야 한다는 이 엄중한 생존의 법칙을. 평화로운 노후란 결국, 내 몸의 신호에 겸허히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됨을 나는 매 순간 실감하고 있다.
- 낭만봉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