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가움'과 유럽의 '그리움' 사이

8개월 만의 귀국, 미세먼지와 고물가 사이에서 시작된 양평 한옥 안착기

by 낭만봉지 김봉석

정겨운 '우리말'이 귓가를 때리던 인천공항의 오후


8개월간의 긴 유럽 살이를 뒤로하고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인천공항 입국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화려한 면세점도, 세련된 시설도 아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소리, 바로 '한국어'였다. 8개월 전 유럽행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당연하게 여겼던 이 정겨운 언어가 이토록 가슴 벅차게 다가올 줄이야.


입국 심사를 마치고 묵직한 캐리어를 끌며 곧장 처가로 향했다. 8개월이라는 긴 여정 동안 우리를 대신해 차를 맡아주신 장인어른 댁에 도착하자, 익숙한 자태로 주인을 기다리던 우리의 애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먼지 속에 가려진 시간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모습으로 서 있는 차를 보니, 비로소 자유로운 '기동력'을 되찾았다는 깊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유럽에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기차와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뚜벅이 은퇴자'의 삶이 종료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우리는 이 차를 타고 어디든 갈 수 있고, 몸이 아프면 즉시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다. 낯선 문화권에서 타인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무엇보다 그리웠던 건 한국의 음식들이었다. 짭조름하면서도 달달한, 혀끝을 자극하는 그 감칠맛.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부터 진한 국물의 순대국, 그리고 짜장면과 짬뽕까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의 목록을 읊조리며, 우리는 새로운 거처인 경기도 양평을 향해 차를 몰았다.


북한강을 따라 흐르는 그리움, 그리고 '미세먼지'의 습격


송파를 지나 양평 숙소까지 향하는 약 1시간 30분의 드라이브. 창밖으로 펼쳐지는 익숙하고도 그리웠던 풍경들에 마음이 설렜다. 그런데 묘한 일이다. 한국 땅에 발을 붙인지 불과 몇 시간 만에 가슴 한구석에서 유럽의 잔상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우리가 동남아와 유럽을 유랑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은 딱 두 가지였다. 바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투명했던 청정한 하늘, 그리고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도 부담 없던 저렴한 물가였다. 해외 살이가 길어지면서 그 쾌적함은 일상이 되었고, 우리는 어느덧 한국의 편리함과 음식만을 그리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북한강 줄기를 따라 올라가는 길, 창밖 풍경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탁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오자 몸이 먼저 반응하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올드타운 뒤로 펼쳐졌던 파란 하늘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공기만이라도 좀 맑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렌지의 배신, 한국 물가에 '동그라진 눈’


짐을 풀기 전, 간단한 생활용품과 식재료를 사기 위해 양평읍의 대형 마트에 들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귀국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채소와 과일 코너를 돌던 아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여보, 이거 봐.. 오렌지가 왜 이렇게 비싸?"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까지 크로아티아와 동유럽에서는 단돈 3,000원이면 오렌지 10개를 너끈히 사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세일 가격임에도 만원에 고작 7개뿐이었다. 돼지고기 가격은 체감상 6배 정도 비쌌고, 채소들은 종류에 따라 2~3배의 가격 차이를 보였다. 유럽에서 가성비 좋은 와인과 고기를 마음껏 즐기던 '풍요로운 은퇴자'의 기분은 사라지고, 한국의 매정한 장바구니 물가 앞에 우리 부부의 어깨와 눈꼬리는 힘없이 처졌고, 손가락은 본능적으로 스마트폰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넉넉한 마음으로 고기를 고르던 여행자의 기분은 사라지고, 치열하게 단가를 따지는 '알뜰 생활자'로의 강제 복귀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기와지붕 아래 펼쳐진 '한국판 올드타운' 안착기

IE003599714_STD.jpg?20260330111905 ▲ 양평 시골길에서 마주한 우리의 새로운 올드타운.


마트에서 한가득 장을 본 뒤, 드디어 양평읍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는 깊숙한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굽이진 길을 지나자 멀리서 고즈넉한 기와가 얹어진 한옥이 우리를 반겼다. 울타리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담한 정원이 정겹게 다가왔다. 마당 여기저기에 놓인 벤치들은 마치 우리만을 위한 숲속 카페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IE003599715_STD.jpg?20260330111905 ▲ 복(福)을 담은 기와지붕 아래로 첫발을 내딛다


실내는 정성스러운 리모델링을 거쳐 전통의 미학에 현대적 편의를 정교하게 덧입힌 모습이었다. 천장에 늠름하게 가로놓인 서까래는 한옥 특유의 품격과 켜켜이 쌓인 세월의 깊이를 웅변하고 있었다. 특히 'ㄱ'자형으로 꺾인 실내 구조를 마주하는 순간, 어릴 적 함양 시골집에서 느꼈던 그 아련하고도 정겨운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한옥이 주는 따스한 질감이 8개월간 떠돌았던 우리 부부의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유럽에서 미니멀리즘을 강제당하며 살았던 터라 짐은 단출했지만, 한옥 특유의 부족한 수납공간이 문제였다. 아내는 짐을 풀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당근마켓'을 뒤지기 시작했다.


"오예~ 무료나눔으로 플라스틱 5단 장이 있어!"

"오~ 내가 원하던 화장대가 2만원이야!"

"이 책상이면 우리 컴퓨터 책상으로 딱이야!"


그렇게 며칠 동안 우리는 애마를 몰고 수도권 구석구석을 누비며 중고 가구들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비록 4개월 남짓 머물 단기 숙소였지만, 소소한 가구들을 직접 나르고 배치하는 수고가 전혀 고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만의 공간을 한 땀 한 땀 채워가는 그 과정은, 유럽의 이름난 명소를 구경하던 설렘만큼이나 짜릿하고 밀도 높은 즐거움이었다.


가성비 찾는 삶은 계속된다, 시골마을의 느린 시간


공간 세팅을 마무리한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양평 생존기'에 돌입했다. 해외 살이에서 몸에 익힌 '가성비 탐색 본능'은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숙소가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동선을 치밀하게 짜야 했다. 요일별 할인을 공략하는 대형 마트와 채소가 저렴한 로컬 마트를 번갈아 방문하며 최적의 장바구니 지도를 그려 나갔다. 조만간 열릴 양평 5일장은 우리에게 유럽의 '그린마트' 이상의 기대를 품게 한다.


구옥에서의 삶은 도시의 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른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남은 연료를 알 수 없는 기름보일러의 눈금을 수시로 체크하며 알뜰하게 난방을 조절하고, 마당 구석구석 고개를 내미는 풀들을 정리한다. 시골집의 불청객인 벌레들과의 전쟁도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IE003599716_STD.jpg?20260330111905 ▲ 미세먼지는 잿빛이어도, 마음만은 쾨청한 시골 산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기찻길이 보이는 마을 길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 되고,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로 정성껏 차린 한국 음식을 먹을 때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공기만 좀 더 맑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대신 우리는 한국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음식의 행복'과 '말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다.


앞으로 이 한옥에서 어떤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당분간은 이 느린 삶의 속도에 만족하며 적응해 보려 한다.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시작임을, 우리는 양평의 낡은 서까래 아래에서 다시 한번 배우고 있다.


- 낭만봉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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