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난 남자들이 득실득실한 집의 남자 형제 가운데서 성장했다.
위로는 1살 많은 오빠가 있고, 아래로는 4살 어린 사촌 남동생이 있다.
사촌 남동생은 어린 시절 우리 집에서의 숙식을 같이 하며 자랐기에 거의 친남매이다.
우리 아버지는 3남 1녀의 장남이다.
우리 증조할아버지는 남자만 5형제다.
여동생이나 누나는 없다.
나는 딸 귀한 집에서 공주처럼은커녕 남자 형제들과 경쟁하며 자랐다.
엄마가 비엔나소시지를 해주는 날이면, 누가 하나라도 더 먹기 전에 밥을 빨리 먹어야 했다.
학교 가는 날 아침에도 주도권을 먼저 쥐어야 했다.
제일 빨리 일어나 화장실을 먼저 쓰고, 먼저 씻고, 먼저 학교 갈 채비를 해야 했다. 학교 성적도 남자 형제들보다 더 상위권에 진입해야 했고, 운동회 날 달리기도 1등 도장을 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춘기 시절은 또 어떠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오빠가 "아... 그만하라고" 하면서 벽으로 밀치며 목을 눌리면 눈물을 참고 나도 똑같이 주먹으로 오빠 눈을 때리고 벽으로 목을 밀치며 싸워야 했다.
뭐든 지고 싶지 않았다.
지고 나면 내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공대로 진학했다. 원래는 생물학과나 사범대로 가고 싶었다. 순수학문 쪽이 내 감수성에 더 걸맞다는 걸 여고를 나오면서 알았기 때문이다. 근데 공대로 갔다. 왜냐면 엄마가 오빠가 있는 학교로 가면 형제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졸업할 때까지 반값만 내면 된다고 꼬드겼기 때문이다.
공대에서 또 남자 학우들과 경쟁하며 지냈다.
학과 및 동아리 술자리에서도 술 먹는 걸로 지고 싶지 않았다.
웃긴걸로도 당연 내가 일등이어야 했다.
똘끼 충만도 내가 일등이어야 했다.
회사도 남자들만 이글거리는 배 제작 회사에서 근무했다. 나 빼고 전부 남자였다.
그러다 청운을 펼치기 위해 노르웨이 회사로 이직했다.
거기도 전부 다 노르웨이 남자들만 있었다.
남자. 남자. 남자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도 남자처럼 구는 선머슴이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업 취업을 준비했다. 전부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어가는 회사들이었다. 나는 경쟁이 익숙했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세우는 일도, 회사와 경쟁자들을 분석하고 그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 일도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싸움으로 점철된 인생이었다. 난 말 한마디도 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연애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책 잡힐 일을 만들면 뒤에서 희희낙락 대며 내 시세를 떨어뜨릴 것 같았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방어적으로 연인을 대해야 했다.
눈 뜨면 자동으로 시작되는 레이스였다. 멈춤 버튼 누르고 싶었다. 두 다리가 이제 그만하자고 쥐가 난다고 아우성쳤다. 그래도 레이스에서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아무랑도 깊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아무랑도 깊은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아무랑도 따뜻한 감정을 교류할 수 없는.
근데 그때 나랑 같이 뛰었던 페이스메이커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레이스에서 뛰고 있을까, 탈락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