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로 10살이 되는 두 묘르신을 모시고 있는 고양이 집사다. 원래는 한 마리만 키우려고 했다. 하지만 반년 만에 한 마리의 고양이를 더 입양했다.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미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몇 달의 고민 끝에 데려온 첫 번째 고양이는 겨우 4개월 정도 된 새끼 고양이였다. 오일장에서 어느 할머니가 팔던 이 작은 고양이에게 나는 ‘칠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때부터 칠봉이에게 나는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을 것이다. 기생충에 감염되고(데려올 땐 몰랐다) 너무 어려 목욕을 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 한동안 옷방으로 쓰던 작은 방에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따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동틀 무렵이 되면 그 조그만 고양이는 ‘미야아~’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를 계속 찾았다. 아마 어미 고양이를 찾는 것이었으리라. 그 소리에 깨어 작은방으로 건너가 고양이를 안고 함께 잠이 드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었다. 두세 달이 지났을까, 갑자기 일이 바빠져 야근하는 일이 많아졌다. 집에서 혼자 있을 녀석이 걱정되었지만, 고양이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 뿐, 어느 늦은 밤 집에 도착하니 칠봉이는 현관 앞 러그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다. 밖에서 사람이 지나가면 혹시 내가 온 것일까 왔다 갔다 하다 잠이 든 것인지, 하염없이 현관을 바라보다가 잠이 든 것일지, 아니면 그냥 거기서 잠이 든 것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날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더 입양하기로 했다. 그래도 둘이 있으면 심심할 땐 놀다가 의지하면서 함께 기다려줄 것이라는 생각에. 그래서 비슷한 연령대의 새끼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입양했고, 10년째 함께 살고 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 혼자 놔둬도 크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적어도 우리 집 고양이들은 아닌 것 같다. 두 마리의 고양이는 데면데면하다가도 어느 날은 죽고 못 사는 사이처럼 붙어 있기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둘이 함께한 이후로는 현관 앞에서 오매불망 집사만 기다리는 일이 없어졌다. 오히려 외출 후 집에 돌아오면 ‘집사야 왔어?’하는 느낌이다. 자기들의 편안한 위치에서 졸다가 거만한 표정으로 고개만 들어 맞이할 때도 있고 둘 다 깊은 잠에 빠져있어 오히려 내가 돌아왔다는 티를 내야 할 정도니까.
집사만 기다리며 외로워하던 고양이가 의지할 상대가 생겨 각자의 공간에서도 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불안했던 내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도 우리 집이라는 공간에서만큼은 고양이도 사람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