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따라 북 큐레이션 by 리딩리딩
오랫동안 기다려온
여름휴가를
집에서만 보내야 한다면,
너무 아쉬워요.
아무 것도 안하면 억울하고,
휴가지에서처럼
유유자적한 기분은 느끼고 싶을 때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면서
휴식같은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이왕이면
'아름다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책과 좋은 사람들을 이어주는 리딩리딩이
추천하는
휴가 때 읽으면 좋을 책들.
**책 제목을 클릭하면 '리딩리딩' 큐레이션 서평으로 연결됩니다.
(리딩리딩 큐레이터 김민철 작가의 리뷰 전문을 게재합니다.^^)
처음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었을 때, 나는 내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이가 없어서.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아서. 그때 나는 나랑 동갑인 사람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26살밖에 안된 이 작가가 보여주는 그 섬세하고도 광활한, 발랄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세계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나랑 동갑이라고? 26살이라고? 그런데 이런 글을 쓴다고? 그러니 김애란 작가가 15년만에 처음 펴낸 이 산문집을 나는 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쩌면 이 속에 작가의 비밀 한 자락이 녹아있을 수도 있으니.
아는 이야기를 다 쓰면 그다음엔 어떤 글을 지어야 하나 근심한 적이 있다. 바보같이 몸도 글도 한결 같을 거라 생각하던 때의 일이다. 단어 하나가 몸을 완전히 통과한 후에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뜻이 된다는 걸 몰랐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작가의 몸을 통과한 어릴 적 풍경, 문학의 열망에 휩싸였던 대학시절들 등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작가 김애란이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해 약간이라도 짐작해볼 수 있는 내용이랄까? 개인적으로는 김애란 작가의 ‘칼자국’이라는 소설을 특히 편애하는데, 이 책에서는 20년 넘게 ‘맛나당’이라는 손칼국수집을 했던 어머니와 그 추억들에 대한 에세이도 실려 있어서 특히 반가웠다.
2부는 김애란 작가가 좋아하는 인물들에 대해 쓴 글들로 채워져있다. 김연수 작가, 편혜영 작가, 조연호 시인, 윤성희 작가 등이 등장한다. 그런데 김애란 작가가 어찌나 이들을 애정하는지, 단어 사이로, 문장 사이로, 문단 사이로 그 애정이 숨겨지지 않고 줄줄 흘러나온다. 마치 잘 익은 과일에서 과즙이 터져나오는 것처럼. 애정이 농익어 잘 익은 농담까지 촘촘히 새어나온다. 덕분에 김애란이란 작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독자들은 알아차릴 수밖에 없고.
3부에서는 문학에 관한 글과 그리고, 세월호가 있다. 어떻게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한 순간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매순간 분노로 우리를 몰아가는, 아픔의 바다에 밀어넣는 세월호가 있다.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공책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 뜨겁지 않게 이 글을 마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설명은 이 책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책은 수많은 장면들이, 사건들이, 사람들이, 단어들이 김애란이란 작가의 몸을 통과하는 과정을 찬찬히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광활한 세계에 대해 또렷한 언어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또 다른 광활한 기쁨의 영역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또렷한 언어’라는 나의 표현도 그녀의 글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문학에 대해 말을 할 때, 그때의 언어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 물론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가느다란 빛이 되어주는 그런 언어들이다. 그녀가 다른 작가들에 대해 말을 할 때, 그때의 언어는 따스한 온기가 퍼져나가며 입꼬리를 슬며시 밀어올리는 그런 언어들이다.
특히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의 부사 예찬이었다. 이건 스티븐 킹의 그 유명한 부사 혐오 명언,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뒤덮여 있다’라는 말에 대한 정면 승부였는데, 이 글에 나오는 문장과 표현과 섬세함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몇 번이고 이 글을 다시 읽어내려간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녀도 나도 좋아하는 부사를 써서 표현을 해보자면, 나는 김애란 작가를 ‘꽤’ 좋아하며, 실은 ‘아주’ 좋아한다. 15년 전에는 거의 질투에 가까운 감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작가를,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매우, 절대, 제일, 가장, 왠지, 퍽, 무척’ 좋아한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좀 더 그 모든 부사에 더 진심을 담아서 김애란 작가에 대한 애정을 말하게 되었다. 아마 오래도록 이 책을 곁에 두며 펼쳐보고 또 펼쳐 볼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잊고 싶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리딩리딩 큐레이터 민경락 기자의 리뷰 전문을 게재합니다.^^)
<'죽음'을 대하는 자세>
가끔 아이들의 호기심은 '죽음'을 향한다. "라면 많이 먹으면 몸에 안 좋아"라고 하면 "그럼 죽어?"라고 묻고, "미세먼지 때문에 죽겠네"라고 했더니 "진짜 죽어?"라고 껴든다. 가끔 잠자리에서 그날 주워들은 이런 '죽음의 위기(?)'들을 나열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당황스럽다. '내가 뭘 불안하게 한 게 있나' 하며 스스로 의심해보지만, 아침부터 '라면 타령'을 해대는 걸 보면 별일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그러던 와중 '긴긴밤'(문학동네/루리 글·그림)을 만났다. 흰코뿔소와 펭귄이 각자의 낙원을 향해 함께 길을 떠나는 이야기지만 내겐 '죽음'에 관한 동화로 읽혔다. 아마도 내가 평소 느낀 고민과도 무관치 않지 싶다.
슬픔을 부른 '죽음'과 희망을 향한 '죽음'
멸종 위기 흰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을 품는 펭귄 치쿠. 그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물원을 가까스로 빠져나와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할 곳(코뿔소에겐 초원, 펭귄에겐 바다)으로 향해 기약 없는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물 한방울 없이 계속된 강행군을 이기지 못한 치쿠는 알을 끝까지 돌보지 못하고 결국 하늘나라로 떠났고, 노든은 알에서 깨어난 아기 펭귄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선다.
아기 펭귄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가 마냥 궁금하고 설렐 뿐이다. 하지만 노든에겐 초원에 닿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건 아내와 딸을 죽인 인간에 대한 복수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친 노든은 잘려 나간 뿔처럼 무기력했고 결국 아기 펭귄은 동물구조센터에 노든을 둔 채 혼자 바다에 도착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로 따지자면 '로드무비'의 형식을 갖춘 '성장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니 흰코뿔소와 아기 펭귄의 '용감한 자아 찾기' 보다는 그들이 겪는 숱한 '죽음'의 흔적이 내겐 더 선명하게 남는다.
살아가는 건 결국 '우리'가 되는 것
인간의 이기심 탓에 아내와 딸, 동물원 친구 앙가부를 연거푸 떠나보낸 노든에게 '죽음'은 이별이자 더는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이고 복수를 부르는 분노다.
하지만 아기 펭귄의 탄생에 이르는 죽음에는 '슬픔'을 지우려는 작가의 안간힘이 역력하다. 슬픔보다는 묘한 희망의 기운이 묻어난다. 포격의 충격으로 동물원 철봉에 깔린 채 죽어가는 차쿠의 단짝 윔보의 눈빛, 죽음을 예감한 뒤 치쿠가 노든에게 건넨 쿨한 부탁은 대부분 어른들이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희망의 본능적인 변주다.
"혹시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알을 돌봐 주겠다고 약속해줘. 난 이제 너밖에 없잖아."(71p)
치쿠의 '죽음'과 아기 펭귄의 '탄생'이 포개지는 너무도 동화적인 이 순간에, 죽음의 슬픔은 생명의 경외로 치환돼 '어찌 됐든 우리는 살아간다'는 실존적인 명제로 달려간다. 이 책이 숱하게 말하듯이 살아감의 주체는 '우리'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름 따위는 없어도 금세 날 알아봐 줄 수 있는 '우리'가 있는 곳.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죽음이 향하는 바다와 초원이다.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125p)
우린 아이들에게 '죽음' 가르칠 수 있을까
'죽음'을 묻는 아이들이 낯선 건 '너무 슬프고 힘든 것'만 떠올리는 어른들의 한계 탓일지도 모르겠다. 정작 아이들은 별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어른들만 당황하는 것도 그래서일 수 있고. '곡소리' 나는 장례식장의 침울함과 화살표로 이어진 먹이사슬 도표의 건조함 사이에서 어른들은 '죽음'을 향한 아이들의 호기심에 적절하게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들에게서 또 '죽음'에 대한 질문을 받거든 이번에는 답 대신 이 책을 건네볼 생각이다. "이 책에 답이 있다고 들었어. 아빠도 진짜 몰라서 그래." 물론 책 한번 읽게 해보려는 아빠의 어설픈 계략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땐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는 걸로.
어쩌겠는가. 그렇다고 일곱살짜리 아들에게 "죽음이 다 슬프기만 한건 아냐"라는 불친절한 말을 건넬 순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에게 '죽음'의 숭고함을 이 책보다 쉽고 절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다.
그외 리딩리딩이 추천하는
휴가 때 읽으면 좋을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