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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Oct 05. 2020

고장 난 정수기

기술보다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다

아워스쿨에는 교직원만 마실 수 있는 작은 정수기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 고장이 나서 교직원은 물을 사서 마시고 학생들은 마실 물이 없었다. 학생들에게 마시는 물을 주기 위해 대형 정수시스템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학교 뒤에서 판 우물


먼저 학교 뒤에 웅덩이를 파서 커다란 우물을 만들었다.

우물에서 펌프로 물을 학교에 설치된 물탱크까지 끌어온다.

물탱크에 물을 정수기로 보내 마실 수 있는 물을 만들고,

정수된 물은 마실 수 있는 물로 분류해 다시 작은 물탱크에 모아 둔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학생들이 정수된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운동장 바로 옆에 정수 물탱크가 있어서 축구를 하고 나면 꼭 와서 물을 마시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정수기가 완전히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가 없게 된 것이 아닌가!!


학교 선생님들이 필터도 교체해 보았고, 전체 정수기 시스템을 새로 사서 설치해 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2~3주 사용하고 나면 고장이 나서 이제는 예전처럼 그냥 물을 사다가 먹는다고 했다.


고장이 나는 원인을 물어보니 녹조가 끼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직접 물이 오는 곳에서부터 정수된 물이 저장되는 곳까지 하나하나 모두 살펴보았다.

가장 큰 문제는 웅덩이에서 끌어오는 물속에 진흙이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정수 필터기에 잔뜩 끼여있는 진흙만 보아도 충분히 이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속에 침전물이 많은 경우 침전물을 제거하고 나서 정수를 해야 한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정수 시스템은 침전조와 정화조로 나눠진다. 침전조에서는 물을 가만히 둔 상태로 침전물을 가라 앉히고, 이후에 침전물이 없어진 물을 정화조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냥 침전물이 있는 상태로 물을 그냥 정수기로 흘려보낸 것이다.

침전조를 거쳐서 나온 물에도 어느 정도 침전물이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침전물을 걸러주는 정수 필터는 주기적으로 클리닝을 해 줄 필요가 있다.

정수 시스템도 설계가 잘 못 되었고, 침전물을 걸러주는 정수 필터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당연히 진흙이 정수 필터를 금세 막아버릴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조금만 복잡한 시스템이 되어버리면 금방 고장이 나고, 고장이 나면 그것을 해결할 만한 사람들이 없어서 그냥 버려지고 만다. 기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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